1871년부터 1900년까지 이 시기에 유럽 사회가 심각하게 직면한 문제는 기독교 역사 전통이 유럽의 주류 문화에서 소외되면서 생기는 문제들이었다.
즉 과학, 세속화, 공업화, 자유주의, 민족주의 국가, 마르크스주의에 의해서 기독교의 정신이 유럽 사회에 소수의 지식인들에게서 노골적으로 거부되기 시작했고, 대다수의 대중에게는 단지 기계적이고, 습관적인 기독교 관습만이 남아 있는 상황이 발생하게 됐다는 것이다.
19세기에 제일 먼저 기독교로부터 이탈한 자들을 세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첫째는 지식 계층으로서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분야의 대학교수들과 직업적 문인이고, 둘째는 의학, 법학, 저널리즘, 그리고 교육 분야에 전문가들과 도시 판매상과 상점의 주인과 같은 소부르주아들이며, 셋째는 농토에서 공장으로, 시골에서 도시로 대대적인 인구이동을 통해서 정통적인 생활 근거지를 떠나면서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전통과 관습에서 벗어났던 일부의 도시 노동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로부터 이탈한 이들은 마르크스 사회주의로, 실증주의자로서 휴머니스트로서, 또는 종교의 역할을 하는 국가주의자(민족주의자)로서, 일부는 막연한 범신론에서 나머지는 단순한 불가지론에서 도피처를 찾았다고 한다.
이와 같이 기독교 위기 상황에서 교회는 세 가지 방향으로 자신들을 방어했다. 첫째는 정통파 기독교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데, 이들은 정통적 기독교주의 믿음을 투철하게 지지해,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드리기를 주장하며, 다윈의 진화론과 그 이론을 따르는 모든 과학적 이론의 본질적 허위성을 강력히 반대했다. 오늘날 보수 정통 교회라고 불리는 노선으로써, 특별히 미국의 개신교가 취했던 입장이었으며, 오늘날 한국교회에 대다수가 이 노선 안에 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둘째는 실제 과학과 학문의 발전이 기독교와 전혀 갈등을 겪을 이유가 없으며, 성경은 과학 교과서가 아니며, 성경의 일부분은 문자 그대로의 해석도 가능하기도 하지만 때로 비유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즉 다윈의 진화론이 사실이라고 해도 이는 특정한 물질적인 국면만을 설명할 뿐, 인간의 영혼과 창조의 궁극적 이유는 설명할 수 없다는 요점이다. 이는 가톨릭교회의 교황이 채택했던 노선이었다고 한다.
셋째는 기독교를 현대과학에 맞추어 시대의 맞는 종교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즉 성경에 나오는 기적을 거부하고 , 예수의 강림과 부활 같은 근본적인 것조차 믿으려 하지 않았고, 기독교의 진리보다는 미를 강조하고, 성경을 순수한 문학으로써, 예수의 시적 이상주의자이거나 사회개혁자로 소중히 여겼고, 기독교 교리를 무시하고, 계시가 아니라 경험을 통해서 기독교 윤리의 근원을 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모더니스트(현대주의자)들로 부르고 있는데 오늘날 한국에서는 자유주의 신학이라고 알려져 있다.
또한 개신교 교회에서는 자유주의 신학(모더니즘)을 견제하고, 중심을 잡는 기관이 없었으므로 이것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신학교에서부터 성장해 나갔고, 기독교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에게까지 넓고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이렇게 퍼져간 모더니스트 신학(자우주의 신학)은 신앙에 대한 강조로부터 선행에 대한 강조로 옮겨졌고, 모더니스트 신교들에게는 신앙은 막연한 것이 되었고, 교리나 신학이란 단어들은 미신이란 단어와 마찬가지로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정도가 되었다.
이러한 자유주의 신학은 특별히 유럽의 개신교 교회에서 일어나고 퍼졌는데, 21세기에 들어서 유럽의 자유주의 개신교는 정통 보수주의 미국 교회와는 달리 마치 유행이 그렇듯이 거의 무너져 버린 상태인 것이다.
이와 같이 한국의 기독교가 진화론이나 모더니스트에 빠져 교회와 성도들을 영적 타락으로 몰고 가고 있다. 교회 지도자들과 신학자들은 성경적 보수신학과 신앙으로 다시 한국교회를 오직 말씀으로 되돌아갈 수 있어야 한국교회가 소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