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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언의 부패왕국의 허무한 몰락이 주는 교훈


지난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청해진해운의 실질적 소유주 유병언 목사612일 백골화된 시체로 발견됨으로써 지난 3개월 동안 전 국민을 수사탐정으로 만들었던 사건은 일단락됐다. 국과수는 이것이 유병언의 시신이 100% 맞다고 확인해 줬는데도 국민의 60% 정도가 이를 그대로 믿지 않고 갖가지 음모론을 거론하고 있다.


77년 구원파를 탈출한 이래 지난 40년 동안 유병언에게 14차례나 피소되어 그와 악연을 맺어온 나도 그의 사체에 대한 보도를 들었을 때 언뜻 이를 믿을 수가 없었다. 저것은 유병언답지 않다. 유 사장이 저렇게 죽었을 리가 없다는 것이 나의 일차적 반응이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지 않아 나도 구원파 교인들과 함께 그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게 됐다.


유병언 사장이 즐겨 읽던 전도서의 말씀이 스쳐지나 갔다.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음으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모든 사람의 결국이 일반인 그것은 해 아래서 모든 일 중에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여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후에는 죽은 자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저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고 얻은 것을 아무 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이것도 폐단이라. 어떻게 왔든지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가 저에게 무엇이 유익하랴”(8:10: 9:3; 5:15~16).


유병언이라는 한 사람의 잘못된 신학과 그릇된 가치관, 사기성 인격과 탐심이 32명의 생명을 앗아간 오대양 사건과 13명이 실종된 한강 유람선 충돌사건에 이어 300명 이상을 수장하는 참극을 빚어냈음이 드러났다. 뉴욕타임스는 유 사장의 사망을 보도하면서 부패위에 건설한 제국의 비극적 몰락이라는 말로 세월호 참사와 유병언 사망을 보도했다.

 

구원파의 약사

유병언 회장이 처음 복음전도를 시작하던 1960년대만 해도 그는 겸손한 형제였다. 사람들은 그를 유 형제라고 불렀다. 사람을 만날 때 무릎을 꿇고 대화했으며 식사 때나 모임을 인도할 때 기도를 했던 사람이다. 필자가 1976년 영국에서 만난 교회사학자가 어느 집단의 이단성이 드러나는 데는 15년이 걸린다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내가 군인으로서 대구로 배치되어 대구 칠성예배당으로 찾아갔을 때만 해도 유병언과 권신찬의 이단적 본색은 아직 드러나기 전이었다.


공업고등학교 출신으로 신학공부를 한 적이 없는 유병언은 1973년 자체적으로 목사안수를 받아 목사가 됐다. 극동방송에서 설교하던 권신찬 목사의 사위 유병언 목사가 방송부국장에 오르면서 1970년 초 그들의 이단성은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정통교회의 제도(장로, 집사)와 예배형식, 주일성수, 십일조, 금식, 새벽기도, 통성기도, 철야기도, 주기도, 축도를 비방하는 설교로 청취자들을 경악하게 했다. 정통교회에서 행하는 모든 것을 율법과 종교로 규정하고 율법과 종교에서 해방 받는 것이 구원이라고 가르쳤다. 당시 방송국을 운영하던 팀선교부에서는 이들의 이단성을 뒤 늦게 확인하고 12명의 구원파 교인을 일시에 해고했다.


이때부터 유병언은 모임의 구심점이 없어졌다며 교인들의 헌금으로 삼우트레이딩을 인수해 봉제산업에 손을 대기 시작해, 낮는 임금과 공격적 수출실적으로 금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5공 정권의 전경환과 전두환을 가까이 하면서 그는 1980년대에 들어서며 유람선 사업, 스쿠알렌을 비롯한 제약사업, 유기농 식품, 자동차 부품, 페인트, 컴퓨터 모니터, 최근에는 영상 미디어 산업, 문진 미디어, 자연보호를 빙자한 녹색회, 엄청난 양의 부동산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1997()세모는 부도가 났으나 1996종교를 빙자한 상습사기범으로 4년을 복역하고 나온 후 그는 정관계 로비와 노동착취, 그리고 그의 사기성 있는 사업수완으로 50개가 넘는 계열회사를 거느린 5,000억대 재벌이 됐다.


이 사람은 하나님으로 자기 힘을 삼지 아니하고 오직 그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제 악으로 스스로 든든케 하던 자라 하리로다”(52:7). 유 사장의 삶을 한 마디로 요약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당장 무책임한 선장과 배에 탄 사람들을 구조할 생각을 하지 않고 제일 먼저 빠져나온 구원파 선원들의 행동에 분노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참극은 한 사람 유병언 회장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평소 하나님의 사업을 의논하는 것이 바로 기도이며 예배라고 가르쳤다. “(구원파)교회로 말미암지 않고는 구원받을 수 없다.” “빌리 그래함이나 한경직 목사는 구원받지 못했다.” “구원은 개인이 받지만 신앙생활은 교회가 한다.” “일단 죄사함을 받으면 어떻게 살든 천국에 간다.” “구원파 안에 붙어있는 자만 예수 재림 시에 들림을 받는다는 전혀 비성경적인 교리로 교인들의 충성심을 유도하여 1만여 구원파 신도들의 차명대출을 통해 5000억원의 재산을 증식할 수 있었다.


사람은 믿는 대로 행동하게 된다. 바울이 초대교회 목회자 디도에게 썼던 편지가 생각난다. “저희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고 마땅치 아니한 것을 가르쳐 가정들을 온통 엎드러치는도다”(1:11).


정동섭 목사

전 침신대 상담심리학 교수

사이비종교피해대책연맹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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