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대한민국 국민의 1/4을 관객으로 끌어 모은 영화 ‘광해’ 이야기다. 이 영화는 조선의 15대왕 광해군 8년, 임진왜란 이후 나라를 다시 세워보려는 그의 의지에 대해 대신들의 왕권 견제가 극심하던 때를 배경으로 한다.
심지어 반대파들은 중전의 오빠도 역적으로 몰고, 왕의 목숨까지도 노린다. 이에 극도의 위기를 느낀 왕은 어느 날 야밤 도주를 결심하고 자기가 없는 동안 잠깐이라도 자신을 대신해 줄 똑 닮은 한 사람을 수배하여 자기 자리에 앉힌다. 그로부터 이 영화의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는 전개된다.
이에 광해는 그날 밤 자신이 좋아하는 기생을 찾아 급히 몸을 숨기지만 그만 암살자에 의한 독극물 중독으로 사경을 헤맨다. 그래서 졸지에 그 가짜 왕의 왕 노릇은 잠깐이 아닌 15일 동안이나 계속된다. 이에 광해의 최측근인 도승지 허균과 조 내관은 그 가짜 왕이 가짜임이 들통 나지 않도록 왕실 교육을 철저히 시키며 하루하루의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해 나간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이 벌어진다. 가짜 왕으로 앉은 이 ‘하선’이라는 기방의 광대가 처음엔 얼굴과 목소리만 흉내 내는 차원이었지만, 점점 나라 돌아가는 것을 눈에 넣게 되면서 정치, 경제, 외교 전반에 걸친 부조리에 의분을 갖게 된 것이다. 백성의 눈으로 조정을 보니 나라꼴이 너무 한심하고 답답했던 것이다.
그래서 진짜 광해도 못했던 대동법과 호패법도 과감히 실시하고, 명나라에 굽신거리기만 했던 외교관행의 주권도 다시 되찾아온다. 게다가 궁 안의 중전이나 하인들에게까지도 진짜 왕이 평소에 보여주었던 날카롭고 사나운 모습이 아닌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고, 유머 있고, 의리 있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달라진 왕의 모습 앞에 모든 궁 안의 사람들도 감동하게 된다. 심지어 그 가짜를 누구보다 잘 아는 도승지 허균과 내시 조 내관까지도 그 인간미에 감복하여 점점 그를 진짜 왕인양 따른다.
물론 15일후 진짜 광해는 병세를 회복하여 궁으로 다시 돌아온다. 하지만 15일간 가짜 왕을 섬기며 행복했던 그들은 그 가짜를 잊지 못한다. 도승지는 그의 마지막 가는 길에 진짜 신하처럼 예의를 표하고, 도부장은 자기 생명을 바쳐서 그 가짜의 도피로를 지켜준다. 영화는 그렇게 막을 내린다. 참으로 눈물나는 재밌는 영화다.
그런데 이상하게 영화관을 나오는 내 발걸음은 무겁다. 재미가 걱정으로 바뀐다. 문득 이 땅의 밤을 밝히는 빨간 십자가 네온이 눈에 들어온다.
교회 십자가는 밝지만 여전히 어두운 이 사회가 보인다. 십자가 앞세운 진짜인 교회가 힘 잃고 방황하는 사이, 가짜가 판을 치며 그것에 춤추는 이 사회가 보인다. 진리를 소유했다고 자부는 하지만 가짜에 더 열광하는 이 세상을 바로 잡지 못하는 나약함이 반성된다.
“성경만이 진짜”라고 밤낮 외치지만 가짜에 더 감동하는 세상의 마음을 돌려놓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책임감으로 밀려온다. 진짜가 힘을 잃은 그 틈을 타고 세상은 가짜에 더 열광하는데, 가짜인 이단에 열광하고, 가짜인 세상 문화에 열광하고, 아침 안개처럼 쉬이 사라질 가짜 물질과 명예와 권세에 열광하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그 가짜에 열광하는 그 백성들의 어리석음만을 나무랄 것인가? 언제까지 우리는 ‘우리가 진짜’라는 사실만을 가지고 안주할 것인가?
다시 각성해야 한다. 정신 차려야 한다. 진짜다운 진짜는 내용도 사실도 진짜이어야 하지만 태도와 마음도 진짜다워야 한다. ‘사랑 없는 진짜’만으로는 ‘사랑 많은 가짜’를 이길 수 없다. ‘복음이 진짜’라면 ‘사랑도 진짜’이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은 그 진짜를 정말 진짜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오늘 난 그 ‘광해 앞에서’ 나를 본다. 그리고 교회를 본다.
김종훈 목사 / 오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