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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전신갑주를’


무교절이 지난 지 50일이 되는 날,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모여들고 있었다. 성경 말씀처럼 하나님의 선민처럼 경건하게 살아보려는 마음을 가진 경건한 유대인들로서 예루살렘이나 유대에 거주한 이들도 있었지만 외국에 사는 이들도 있었다.


외국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을 디아스포라라 하는데 그들은 오순절 규례를 지키기 위해 먼 거리를 여행해 예루살렘에 들어온 것이다. 그렇게 예루살렘 거주민과 유대 인근각처에서 모여든 순례 객과 천하 각국에서 온 유대인들 그리고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여들었다.


그렇게 순례객이 조용히 이동하고 있었는데 예루살렘 성 내 한 곳에서 갑자기 많은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소리가 나는 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는데 큰 무리가 모였다고 말한다. 모여든 무리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들의 말은 헛소리도 아니었고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소리도 아니었다.


오히려 갈릴리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어떤 일들의 대해 자랑하고 감사하며 찬양하고 있었다. 더 놀라운 일은 여러 종류의 외국어를 거침없이 말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 적어도 15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온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들을 수 있었다. 그 날의 소동은 바로 얼마 전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의 제자들에게서 나타난 것이다.


예수와 제자들은 3년 이상 뭇사람에게 무성한 평가를 받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따랐었다. 예수를 미워하는 자들도 많았지만 예수가 유대의 왕이 되어 로마의 학정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 모든 것이 성령이 임하는 것을 말한다. 예수가 그토록 성령을 보내시기를 원하셨던 모습들의 시작이었다. 예수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규율이 성령을 통해 다스려지며 하나님의 나라가 크게 확장되기를 원하셨다.


물론 예수와 성령은 따로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다. 삼위일체되신 하나님이시기에 예수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면서도 성령을 통해 자신의 백성들과 함께 있기를 원한다. 결국 예수는 성령을 통해 더 큰 일을 이루기를 원하고 계신다. 일의 시작이 오순절 성령감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성령 하나님은 마치 새가 알을 품고 있듯이 천지를 품어서 창조의 작업을 일선에서 도왔다.


또한 성령은 죄로 인하여 성품이나 심령이 어그러져 있는 사람들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상황을 변화시키며 그를 통해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한다. 또한 성령은 우리를 사랑하고, 도우며, 사명을 감당하도록 능력을 주시는 분이시니 성도들은 당연히 성령으로 살아야 한다. 그리고 성령 충만을 간구하고, 성령 충만해 맡은바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도 성령 충만 없이는 불가능하며,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도 성령 충만 없이는 불가능하다. 성도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 사방에서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악한 원수가 공격하고 있다. 때로는 유혹으로, 때로는 시험으로 공격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고사하고 자기 혼자 서는 것조차 버겁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전도할 수 있겠는가? 전도는 마귀의 소유를 빼내는 것인데 우리의 힘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성령 충만을 간구하며 날마다 성령으로 살아야만 한다.


그래야 살리는 사역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워주는 사역은 어떠한가? 자기 몸도 세우기 힘든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세워줄 수 있겠는가? 성도를 세워주려면 이해하고 용서하고 품고 사랑하고 필요를 채워주며 섬겨야 하는데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자기 성질에 넘어지고 지쳐서 감당할 수가 없다. 주의 몸 된 교회를 섬기고, 자신과 가정과 교회에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성도들은 꼭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야 한다. 오순절 성령강림을 위해 기도의 힘썼던 제자들처럼 온 교회 성도들 역시 그렇게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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