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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당한 성경

2015626. 미국은 드디어 항복했다. 스스로 청교도 신앙 운운하며 기독교 정신 위에 세워진 나라라고 자랑하던 그들,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한 나라로 부러움을 샀던 그들이 스스로를 파멸의 길로 이끄는 동성 결혼 합법이라는 연방 대법원의 판결 방망이 소리가 전 세계로 울려 퍼졌다. 201336개 주에서 허용된 동성 결혼이 이제 미국 전체에서 허용된 것이다. 성소수자의 인권, 권리, 보호라는 그럴듯한 인본주의적 명분의 배후는 오직 사탄이다. 그래서 육적이기 보다 영적이다.


성경에서 분명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으로 언급된 것을 인권 또는 구원, 보호라는 이름하에 그들을 동정하는 교계의 여론들이 조금씩 의식의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일부 교단에서는 동성 결혼을 허용하고 목사가 그들의 결혼 주례를 서기까지 하였으니 오늘의 결정은 결코 우연이라 할 수 없다. 세속적, 육체적으로 오염된 미국의 기독교 사회는 성경책은 있으나 그 진리는 없는 집단으로 변질되어 왔다. 그러면서 수면 아래에서 소리 없이 움직이던 죄악의 소극적 행동들은 이제 수면 위로 당당히 나와 적극적으로 그들의 더러움을 노골화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기독교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시카고에 있는 그리스도 연합교회의 신학교(United Church of Christ, UCC)인 시카고 신학대학교(Chicago Theological Seminary)에서 지난 72015Wild Goose 페스티벌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동성애를 상징하는 무지개 색깔로 장식된 UCC 로고가 새겨진 콘돔이 들어있는 팩을 선물했다. 두 개의 콘돔이 들어있는 팩에는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Take Two (For the second coming!)”, 시카고 신학 대학교, 재림을 대비해서(두 번째 성관계를 대비해서) 두 개를 가져가라(포장했다!)”라는 문구를 새겨 넣음으로 두 명의 파트너와 성관계를 맺는 역겨운 상황을 예수님의 재림과 연관시킨 것이다. 주님의 재림을 동성애(gay sex)’로 신학교에서 비유하고 있으니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다. 아마도 그들은 이러한 행동들이 세상의 빛이 되는 길이라고 억지를 쓸지도 모른다. 이뿐이 아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민주당 의원들은 동성 결혼 합헌 결정 이후 남편아내라는 단어가 반동성애라는 이유로 금지하고 대신 배우자(spous)’, 또는 결혼한 커플(married couple)’이라는 중도적 용어를 사랑하자는 법안을 제출했다. 그들은 이미 2014년 자신의 속한 캘리포니아 주에서 동성 결혼에 맞추어 남편과 아내라는 용어를 없앤 전과를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이 법안은 그리 오래지 않아 통과 될 것이 분명하다. 인권, 특히 소수자의 인권, 그 중에서도 성소수자에 대한 인권이라는 탈을 쓴 사탄은 미국을 통째로 삼켰다. 이렇게 미국을 손에 쥔 사탄은 교회와 신학교 공격을 넘어 성경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39세의 한 동성애자가 최대 영문 성경 출판사인 ZondervanThomas Nelson사를 상대로 고린도전서 6:9의 말씀(“음란 하는 자나 우상숭배 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가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이 자기를 괴롭혀 왔으며 이로 인해 정신적 충격이 심각하다며 두 출판사에 각각 6천 달라와 천만 달러의 청구 소송을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고발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고 교만의 극치다. 노아시대처럼 죄악이 관영하여 하나님이 사람 지으심을 후회하시는 그 시대가 다시 도래 한 것이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소돔과 고모라가 다시 건설된 것이다.


한국의 상황도 위태롭다. 국민일보를 제외한 거의 모든 언론들의 지지를 받으며 아시아에서 가장 뜨겁게 성소수자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성소수자 퀴어 퍼레이드가 한국을 아시아 최초로 동성결혼 허락하는 나라로 삼길 원하였던 박원순 서울시장의 승인 하에 개막하였고, 같은 달 퀴어 문화축제(Queer Culture Festival)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은 메르스와 반대 속에서도 그들만의 집회와 퍼레이드를 미친 듯이 해 댔다. 전과 달리 그들은 숨어 있지 않았다. 부끄러워하며 죄의식을 갖거나 사람들의 눈을 더 이상 의식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의 권리(?)를 당당히 사회에 요구하고 나섰다. 74%가 동성애를 비정상적인 사랑이라고 말하여도 이제 그들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생각하든 개의치 아니하려 한다. 죄의식도 완전히 지워내고 도리어 자신들의 사랑할 권리를 인정해 달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여기에 일부 정치인들도 그들의 대열에 합류하여 소수자 차별 금지법이라는 그럴듯한 법안을 만들어 그들을 안전지대로 인도하려 한다.


그뿐이 아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나는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기독교인을 의식한 정치인다운 몸짓을 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차별 금지법이나 다름없는 동성애 합법화 추진과 더불어 타 종교를 믿으면 구원받지 못하고 오직 예수님만 믿어야 구원받는다는 설교를 할 경우 300만원의 벌금을 물리는 법안을 추진 중이라는 말도 떠돈다. 물론 단순히 침소붕대 내지 유언비어 일 수 있다.

실제로 서울시는 이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답하였다고 하니 솔직히 그 말을 믿어보고 싶다. 그런데도 그동안 서울시장의 동성애와 관련된 언행들을 보면 그들 말대로 유언비어에 불과할지라도 의심을 품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이렇게 한국에서도 교회는 강단마저 위협을 당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비록 서울시가 앞에서 언급한 법안을 만들지 않아도 차별금지법안이 정치적으로 통과된다면 당장 교회는 위기를 맞게 된다. 성소수자들의 동성 결혼에 대한 반대 설교나 비난을 하게 되면 이는 이미 미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차별 금지법 위반으로 고발을 당하게 될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대 사회적 위기의 한국교회는 또 다른 도전 앞에 무장해제 되는 막다른 골목으로 향하고 있다. 결국에는 미국에서처럼 한국에서도 성경을 고발하는 사람들이 등장 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사회적 상황을 보면 한국도 미국처럼 성소수자에 대한 인권 운운하며 차별금지법안이 통과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리 오래지 않아 이 법안은 국회를 거처 한국교회로 비수가 되어 날아들 것이다. 그리고 차별 금지 법안이 통과 된 후 기독교가 역차별을 당하는 영국과 같이 될 것이 뻔하다.


법으로 인한 합법적 역차별을 당하는 한국교회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한국교회의 대안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교회는 곧 다가올 거의 재앙 같은 악한 일에 대항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법적으로는 역차별을 당하는 것 외에는 별 대안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두려운 것이 아니다. 법에 의해 차별을 당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교회 내부적으로 스스로를 견고히 할 수 있는 힘이 있는지 하는 의구심이다. 차별금지법이든, 동성 결혼 합법이든 이것에 대한 성도의 바른 관점을 가진 성도가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것과 바르게 가르칠 목회자는 또 얼마나 되는가이다. 무조건 반대와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동성 결혼이 왜 문제이고 성경의 대답은 무엇인지를 성도는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하며 그러한 미혹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내적 강함을 이루어야 한다. 어느 정도 세속화 된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의 말씀을 위해 과거의 그리스도인들처럼 순교할 신앙이 없다. 동성애가 가져오는 질병, 즉 아직도 백신이 개발되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늘어나는 에이즈라는 무서운 질병과 그것에 대한 치료비가 1인당 년 간 약6천 여 만원의 국민세금이 들어간다는 것 보다는 인권이라는 측면을 더 중시하는 풍조에 사람들은 동성애의 후유증 자체가 미치는 사회적, 도덕적, 종교적 영향을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이는 그들의 고도의 전술인데도 말이다. 뱀에게 속은 하와처럼 지금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세상의 논리에 삼켜지고 있다.


그저 시대적인 현상이니 어쩔 수 없다고 남의 일처럼 생각할 것이 아니다. 이제는 감정보다는 냉철한 이성으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이러한 현실을 만드는데 직간접적으로 일조한 우리의 비 그리스도인적 삶을 회개하고 십자가의 복음, 부활의 복음, 재림의 복음으로 재무장하여야 한다. 더 나가 그들에 대한 비난, 비판만 일삼지 말고, 그들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헤아리며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그들로 하여금 진정한 인권은 동성애에서 벗어나는 것임을 깨닫게 하여 그 삶에서 돌이키게 하여야 한다.

실제로 그러한 삶에서 돌이킨 사람들이 많이 있다.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교회는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그들을 복음으로의 길로 이끄는 일에 도전해야 한다. 비록 그들이 불순종의 아들들로 죄악의 길에서 살고 있지만 교회가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고 그들에게 다가 간다면 그들은 새로운 삶을 신앙 안에서 시작할 수 있다. 실제로 동성애자의 삶을 벗어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는 신앙을 통해 그 길에서 돌이켜 새로운 삶인 빛 가운데로 나온 사람들도 있다.


한 예로 약할 때 강함 주시고라는 CCM으로 유명한 데니스 저니건’(Dennis Jernigan)도 그랬다. 그는 주님의 은혜로 그 길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었고, 주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CCM 가수가 되어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고 있다. 그들에게 진정한 인권은 복음을 통한 영혼의 구원과 그 삶으로부터의 구원이다. 창조된 사람의 참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의 충만한 복음으로 다시 무장하여야 한다. 더 이상 무력한 모습과 비난으로만 대 사회적으로 반응하지 말고,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으로 성령의 충만한 가운데 당당히 그들을 맞섬과 동시에 그들을 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품고 그들을 그러한 삶에서 돌이킬 수 있도록 최선의 수고를 하는 것이다. 동시에 법을 이용하여 역차별, 즉 박해를 하려 한다면 담대히 고난, 고통을 선택하여야 한다.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이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다. 목회자 성도 모두 일사의 각오로 초대교회 성도들, 로마시대 성도들처럼 칼이든, 굶주린 사자든 숭고한 마음으로 감당하는 말씀과 성령 충만함으로 내적 능력을 이루어야 한다. 그래야 비록 성경책을 찢기더라도 진리는 찢기지 않게 되며, 거센 세파의 도전에서도 십자가를 지고 가는 교회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동성애자들을 그 죄악의 삶에서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곳, 동성애자들이 자유를 얻어 새로운 삶을 출발할 수 있는 거룩한 곳이 될 것이다. 교회도 복음의 반석 위에서 성소수자를 포함한 소수자들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가져야 한다. 십자가 복음, 부활의 복음을 가진 교회는 그들을 섬길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회만이 소수자들의 진정한 안식처가 될 수 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진다면.

계인철 목사 / 광천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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