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머나 먼 항해 끝에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기쁨은 얼마나 컸을까? 사과나무에서 사과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의 기쁨은 또 얼마나 컸을까? 밤잠을 설치며 고생한 노고를 다 잊게 만드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었을 것이다. 이로써 그 발견들은 발견자 자신과 그 발견의 가치를 나눈 온 인류의 기쁨이 됐다.
요즘 나도 그러하다. 성경을 그렇게 오랫동안 읽고 배웠고, 오랫동안 가르치기도 한 전문가이지만 그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지고의 가치를 발견한 나는 요즘 너무나 기쁘다. 그것은 바로 성경을 주신 하나님이 우리 인류에게 무엇을 그토록 주고 싶어 하셨는지를 발견한 기쁨이다.
어찌 이를 인디아나 존스가 십계명 든 잃어버린 성궤를 타니스 성에서 발견한 것에 비하랴. 신비의 돌을 중국 미궁의 사원에서 발견하고, 거룩한 성배를 요르단 페트라에서 발견하고, 크리스털 해골을 페루 마야문명 본산지에서 발견한 기쁨에 비하랴. 이 발견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인간이 알 수도 없는 하늘의 비밀에 관한 것이기에 비교도 할 수 없는 발견인 것이다.
그 첫째는 ‘행복’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시려고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작품 ‘에덴’은 행복동산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류가 만들어지기도 전부터 행복하셨다. 그의 만드신 것을 누릴 인간을 생각하니 상상만 해도 행복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계명을 주셨다면 그것도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다. 예수님을 보내신 것 역시 동일하다. 성령을 보내시고, 성경을 주신 것 역시 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난 목회자로서 그들에게 무엇을 줘야 하는가? 역시 행복이다. 난 성도들을 행복하게 해줄 의무가 있다. 그 사명을 받았다. 그 사명 주신 주님이 난 너무나 감사하고, 그 일을 할 수 있음에 요즘 난 너무나 행복하다.
둘째는 ‘동행’이다. 성경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부사는 “함께”이다. 에덴에서는 물론이고, 인류의 실낙원 이후에도 주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셨다. 우리가 넘어지고 실패할 때도 있었지만, 그것을 그냥 보고 계실 때도 있었지만 떠나신 적은 없으시다. 하나님은 “여호와 삼마”이시다. 예수님도 “임마누엘”로 오셨다. 승천하실 때도 “세상 끝 날까지 너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성령님 역시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됐다. 하나님은 우리와 언제나 동행해주신다. 이것이 성경의 핵심이다.
셋째는 ‘생명’이다. 하나님은 흙으로 된 우리 인간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생령이 되게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적인 생명을 갖게 됐다. 또한 예수님으로 인해 영원한 생명도 갖게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그 생명력으로 인생을 살기 원하신다. 그래서 예수님도 십자가에 죽으셨지만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른 뼈 같은 존재일지라도 에스겔의 말씀처럼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래야 성경은 복음이 된다.
넷째는 ‘천국=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은 천상의 나라를 지상에도 두기를 원하신다. 의와 평강과 기쁨의 나라를 이 땅에도 심기 원하신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을 선물하시려고 이 땅에 내려오셨다. 그러므로 천국은 우리의 궁극적 소망이기도 하지만, 현재도 누리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소망이다. 우리의 환경이 높은 산이나 거친 들이나 초막이라도 내 주 예수 모신 곳이면 그 어디나 하늘나라이기를 소망하신다.
이 사실을 다시 깨달은 요즘, 난 너무 기쁘다. 콜럼버스, 뉴턴, 인디아나 존스도 이만큼은 기쁘진 않았을 것이다. 고로 난 이제 이 기쁨만 전하길 원한다. 함께 나누길 원한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이 진정으로 행복하고, 주님과의 동행의 기쁨을 누리며, 생명력 넘치고, 천국을 누리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 이 한 몸 다 바쳐서라도 꼭 그렇게 해드리고 싶다.
김종훈 목사 / 오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