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교단과 개교회가 처한 여러 가지 직면한 문제 가운데에서 재정적인 문제가 교단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 여기에 총회와 기관, 그리고 개교회와의 소통이나 협력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답답함을 느낀다. 총회와 개교회, 기관과 개교회간 주요사업과 정책을 놓고 총회 대의원들끼리 의견대립과 충돌로 인해 교단이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다.
‘주님께서원하는것이무엇인가?’‘, 침례교회가 ‘소금과빛’으로 세상에 바로 세워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순위로 두고 얼마나 제대로 협동사업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정말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우리교단 및 총회 산하 주요 기관들은 현재 재정적인 어려움과 크고 작은 소송 사건 등으로 조용한 날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다보니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것도 자칫 협력이 아닌 분열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사업총회나 교단의 주요 정책을 집행하고자 할 때 협력이 아닌 내말이 더 옳고 상대는 무조건 틀리다며 비판의 칼날을 무참히 들이대고 있다. 이러한 영향을 받아서인지 개교회 목회자들 및 총회나 기관의 실무자들은 협력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걱정과 두려움이 앞선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돌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교단에 쌓인 산적한 문제를 처리함에 있어 협력 사업은 갈수록 어려워지는데다 순수한 마음으로 헌신하고 순종하기도 힘들게 돼 가고 있다.
교리적인 측면을 고려해 볼 때 우리 침례교회는 성경의 말씀을 따르고, 그 밖의 특별한 신조나 교파신학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이유로 침례교회는 성경에 대한 교단의 권위 있는 해석보다 개개인의 자유로운 해석을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입장은 침례교회가 영적 개인주의와 양심의 자유, 그리고 영혼의 자유와 개인의 책임을 다른 어느 교파보다도 강조하여 모든 성도들이 똑같이 제사장의 지위를 지닌다는 전 신자 제사장(만인사제)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회중교회, 개교회주의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우리 침례교회는 협동총회, 협력 사업이라는 좋은 전통을 잘 계승해 오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전통이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마저 들고 있다.
예를 들어 성경에 나오는“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보듯 무엇인가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이웃을 섬길 때 역사가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이 선한 한 사마리아인으로 인해 강도를 만난 이웃이 바로 주안에서 한 가족이 됐다. 우리 침례교회는‘이웃’이 아닌 한 가족이다.
우리교단이 협력 사업을 제대로 하려면 협동사업비를 늘려야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총회와 기관, 개교회 모두가 불신이 자리 잡고 있는데다 학연, 혈연 지연 등으로 인한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있어 어떤 사업도 한목소리로 진행하기가 쉽지 않은 형국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일수록 총회는 침례교 모든 구성원들이 협동사업비를 왜 내야하며 우리교단이 앞으로 나가야 할 올바른 새 방향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우리교단의 총회와 기관, 그리고 모든 개교회들은 사업총회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스스로 반문할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 모든 침례교 공동체 구성원들이 지혜와 힘을 모아 총회와 기관, 그리고 개교회가 필요한 것들을 서로서로 채워주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우리 침례교회는 교회 안에서의 신앙생활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침례교회의 목적사업을 강화할 수 있는 협력 사업을 한층 강화할 시점에서 있다. 특별히 우리교단 총회와 기관, 그리고 개교회가 필요로 하는 협동사업을 위한 섬김 사역을 시작할 때, 모든 침례교 구성원들의 관심과 헌신을 높이는 선순환 작용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