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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빠진 콜라의 대안 빈병



1. IS에 의해 발생한 지난 1113일 프랑스 파리의 테러는 전 세계를 슬픔과 분노 그리고 두려움에 떨게 했다. 세계는 테러가 발생할 때마다 테러 근절을 외쳤지만 결과는 늘 용두사미였다. 테러 방지를 위해 각 나라들이 대동단결하면 될 법도 한데 자국의 이익에 따라 대응하는 사분오열에 테러 수법들은 더 잔인해지고 있다. 이렇게 한 쪽에서는 테러를 자행하면서 한 쪽에서는 이슬람은 평화와 사랑의 종교라고 속삭이는 감언이설에 방심하는 사이 우리는 또 테러소식을 듣는 불행을 반복한다. 그러는 사이 한국에서는 소리 없이 이슬람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날로 늘어나는 모스크들과 외국인이 아닌 한국인 무슬림의 수는 어느 새 수만에 이르는 등 최근 5년 사이에 177%나 증가하였다.


특히 현 정부가 아랍에미리트와 MOU를 체결하여 익산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 짓기로 한 할랄푸드(Halal Food) 제조 및 수출 공장은 세계인구의 23.4%에 해당하는 16억의 모슬렘들이 먹는 음식으로 약 720조의 경제 효과를 기대한다고 하니 맘몬숭배 가치관이 지배하는 현대인들에게는 대단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타종교와는 다르게 기독교로서는 큰 위기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의 제거 대상 1위가 기독교이기 때문이다. 할랄 식품 제조 공장을 시작으로 무슬림을 위한 모스크, 무슬림 학교, 무슬림 병원, 무슬림 아파트 등이 주변에 들어선다고 하니 합법적으로 이슬람 성직자 이맘과 선교사들의 들어오게 되면서 선교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될 것은 불을 보듯 자명한 일이다.


문제는 다수의 국민들은 이런 엄청난 일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경제에 도움이 되고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만 있다면 그만이라는 물신숭배적 가치관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다수의 기독교인들까지 한국에서 이슬람의 번성에 대한 경계심이 별로 없으며 앞으로 도래할 기독교의 위기는 물론 국내에서 발생하게 될 그들로 인한 테러에 대한 책임도 지려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기독교 역시 부끄럽지만 세속화 즉, 자본주의화 되면서 맘몬의 통치 속에 갇혔기 때문이다. 세상을 사랑하신 주님처럼 세상을 복음으로 리드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종속되어 스스로 그 가치를 잃어가고 있어서다. 기독교다운 기독교가 아닌 김빠진 기독교로 색깔만 있을 뿐 코끝은 톡 쏘는 맛을 잃었다. 이제는 이슬람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더 문제다.


김빠지고 미지해진 맛으로 세상을 시원케 하겠다고 호언장담하지만 김빠진 콜라를 마시려하지 않듯이 오늘의 사람들은 기독교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그저 종교 중 하나로, 때로는 없었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하는 종교다. 이런 현상은 통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1995년을 정점으로 줄어들기 시작한 한국교회는 2010년 현재 40대 이상의 기성세대만이 전체 인구의 20%가 넘을 뿐 그 이하 30대는 10% 안팎, 203.7%, 104%(예장통합 총회정책협의회 발표 내용)50년 뒤에는 한국교회 90%가 문을 닫는 소수의 종교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는 불쾌한 전망이다.


빚더미 위에 세워진 대형교회들의 미래는 빛이 아니라 어둠이다. 세계 초대형 교회를 자랑하던 한국은 엉킨 거미줄과 쌓인 먼지로 더러워진 텅 비고 썰렁한 예배당을 보게 될 날도 현재의 추세로 본다면 그리 멀지 않다. 세상의 종말을 외치던 교회가 교회의 종말을 먼저 걱정해야 하는 젖은 낙엽 같은 초라한 신세가 된 것이다. 이때는 김만 빠진 것이 아닌 병마저 깨어져 버린, 그래서 사람들이 쓰레기 취급하는 죽은 종교가 될 것이다.

 

2. 한국교회는 가치관의 몰락을 경험하고 있다.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오늘의 사회 윤리는 여론을 등에 업고 불길처럼 번지고 있다. 얼마 전 있었던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 된 후보는 스스로를 레즈비언, 즉 여자 동성애자라고 밝히는 대담성을 보였다.


요즘 성소수자 인권이 강조되면서 무력해진 기독교의 또 다른 위기와 실상을 보는듯하여 안타깝다.

우리 사회는 동성애가 죄라는 성경을 거부하고 성의 선택으로 보려한다. 하지만 동성애는 단순히 성의 문제를 넘어 가치, 즉 진리의 문제이다. 유일한 진리인 말씀은 시대, 세대를 불문한 진리다. 사람은 이 진리를 따라 살 때 진정한 가치적 존재가 된다. 지금 세상은 진정한 가치 대신 무가치한 것에 말도 안 되는 가치를 부여하는 죄를 거리낌 없이 범한다.


동성애는 분명 창조 주 하나님이 정하신 결혼과 가정의 원리와 정결함에서 벗어난다. 때문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한 것이라 할지라도 동성애가 정당화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동성애자를 비롯한 인권숭배자들은 진리를 거부하며 진리의 말씀을 귀찮은 물건쯤으로 여긴다. 그들에게는 김빠진 말씀인 것이다.

문제는 김빠진 기독교가 이렇게 무너진 가치의 둑을 막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현재까지 보여준 기독교의 모습으로 볼 때는 불가능해 보인다. 김빠진 콜라 된지 오래인데도 여전히 기독교만이 유일한 홈런 타자라고 큰 소리만 쳐댔지 정작 타석에서는 병살타만 계속 쳐댔기 때문이다. 색깔만 있고 맛은 잃은 김빠진 콜라는 있으나마나 하다는 것을 아직 모르는 듯 하여 답답하다.

 

3. 12월의 인사는 메리 크리스마스. 그런데 예수 없는 성탄절이 미국에서 시작됐다. ‘금년에는 크리스마스를 축하하지 않기로 했다는 스타벅스로 시작해서 사람들이 서로 나누는 인사말을메리 크리스마스대신 즐거운 휴일(Happy Holidays)’이나새해 복 많이(Season’s Greetings)’로 바꿔 불러야 한다며 미 플로리다 주 국회는 기독교만이 아닌 다양한 종교 장식물들을 함께 전시하겠다며 사탄 교회에서 기부한 입체 전시물도 포함한다고 발표했다.


기독교는 지금 이렇게 쓰러져 가고 있다. 잊을만하면 터지는 교회의 비리와 목사들의 비행들은 정말 김빠진 콜라다. 아니라고 강한 부정을 하고 싶지만 오늘의 기독교는 김빠진 콜라다.

복음인 예수 없는 강단의 설교들이 무당의 휘두르는 칼춤처럼 추워대고, 날마다 성도의 구원을 이루는(2:12) 말씀대로의 변화된 삶들이라곤 찾을 수 없는 성도들의 모습이 사데교회와(3:1) 다르지 않다. 제 맛을 잃어버린 콜라처럼 지금 한국교회는 세상이 마시고 싶지 않은 김다 빠진 콜라다.


김빠진 콜라를 마셔 보겠다고 냉장고에 넣었다 꺼내도 콜라의 톡 쏘는 맛은 돌아오지 않는다. 물론 미지함에서 시원함으로의 변화는 분명 있지만 콜라 본래의 맛은 결코 아니다. 지금까지 한국 교회가 수없이 외쳐댔던 개혁들은 냉장고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에 불과했다.


본질적 변화가 아닌 온도의 변화만을 세상에 보여 주었다. 그래서 세상은 더 이상 기독교가 따라 주는 콜라를 마시려 하지 않는다. 어찌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교회는 다시 복음인 예수의 참맛으로 충만하여 세상으로 다시 마시게 할 수 있을까? 공병, 즉 빈병으로 다시 수거되어 공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깨끗이 세척 된 후 톡 쏘는 청량감 넘치는 본래의 콜라를 다시 채워 소비자에게로 새롭게 나아가야 한다.


뚜껑이 열려 본래의 맛과 향이 날아간 맛 잃은 나를 완전히 비워내고, 다시 예수께로,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의 자아가 아닌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주의 말씀으로 나를 정결케 하고 오직 예수로 다시 채워져 세상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세상은 다시 교회라는 컵에 채워진 예수를 시원하게 마실 것이고 세상의 이손 저손에 들고 행복하게 웃고 또 웃지 않겠는가? 냉장고가 아니고 빈병이 되면.

계인철 목사 / 광천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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