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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계시는 하나님

인디언들은 아들이 열세 살이 되면 아주 독특한 성인식을 한다고 한다. 우선 아들이 열세 살이 되어 가면 사냥하는 법, 정찰하는 법, 칼 쓰는 법, 낚시하는 법 등을 가르친다. 그리고 열세 살 생일 저녁, 아버지는 지금까지 한 번도 가족을 떠났던 일이 없던 아들의 눈을 가리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산으로 간다. 그리고 숲 속에 아들을 홀로 두고 나온다.


그리고는 아버지와 약속한 일정한 시간이 지나간 후에 소년은 눈가리개를 풀고는 울창한 숲속에 홀로 버려진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제부터 그 소년은 공포의 밤을 홀로 지새워야 한다. 나뭇가지의 움직이는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어디선가 뛰쳐나올지도 모를 짐승들을 생각하며 몸을 움츠릴 것이다. 동물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금방이라도 늑대가 뛰쳐나올 것만 같은 긴장을 느끼면서 그 밤을 버티고 견디어 낸다.


그렇게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았던 무서운 긴긴 밤이 지나고 희미하게 새벽 여명을 알리는 빛줄기가 비치면 그제야 없어졌던 길들이 보이고, 나뭇가지가 보이고, 꽃들이 보인다. 그렇게 주위를 돌아보다가 소년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저 건너편 나무 뒤에서 자기를 향해 화살을 겨누고 있는 사람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소년의 아버지였다. 그 소년은 그 두려웠던 그 긴 밤을 홀로 보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은 몰랐지만,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그 밤을 지냈던 것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긴 밤을 경험하기 마련이다. 그 밤은 이 세상의 어느 밤보다 길고 춥다. 다른 사람들이 겪은 긴 밤도 있겠지만, 내가 겪고 있는 밤이 가장 길다. 왜냐하면, 홀로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홀로 있었다고 생각한 그 밤이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와 함께 있었지만, 너무나 외로워서 보이질 않았을 뿐이다. 그 소년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어린 시절 나의 어머니는 늘 바쁘셨다. 해가 뜨면 들에 나갔고 해가 지면 들어오셨다. 그리고 저녁밥을 지으셨고, 밥상을 물리고 나면 희미한 등잔불 밑에서 헤어진 옷감들을 꺼내어 꿰매셨다. 그리고는 이내 골아 떨어지셨다.


내 기억 속에는 어머니의 품에 있었던 기억은 없는 것 같다. 갓난 아이 시절이 아니고는 품에 안길 겨를도 없었을 테니까. 그렇게 어머니의 품이 그리웠고, 사랑을 받고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바쁜 어머니이지만 열 일 제쳐 놓고 아들에게 달려오는 때가 있었다.


어느 날인가 고열로 신음하고 있을 때였다. 꿈결에 볏단이 날아다니는데 그걸 피하려고 몸부림을 쳤다. 그때였다. 누군가의 손이 이마를 만지자 볏단들이 제자리로 돌아갔고 이내 평화가 임했다. 어머니의 손이었다. 다른 건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마에 얹어진 어머니의 손만큼은 아직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얼마나 따스하고 부드럽던지! 논밭에서 일하던 손이 얼마나 거칠겠는가마는, 사랑에 그리운 아들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손이었다. 그랬다. 그 뒤로도 가끔은 고열이 생겼으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더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랬다.


늘 바쁘신 어머니는 아들 곁에서 놀아줄 수는 없었지만, 아파서 견딜 수 없을 때는 늘 곁에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네 삶이 그런 것 같다. 늘 바쁘고 힘들어서 옆을 돌아볼 겨를도 없어, 하나님이 거기 계셨는데도 불구하고 몰랐던 것 같다. 그러다가 아프고 힘들면 비로소 그분이 보인다. 언제나 거기 계시는 하나님이! 어느 가스펠송의 가사처럼, 평안히 길을 갈 땐 보이지 않아도, 지치고 곤하여 쓰러질 때면 다가와 손 내미신다.

엘리 위젤의 작품 가운데 <, Night>이란 작품이있다. 그는 1944년 나치 독일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었고, 그의 작품 <>은 나치 수용소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하고 있다.


어느 날, 경호원들이 두 명의 유대인과 한 어린 소년을 포로들이 보는 앞에서 교수형에 처했다. 두 명의 유대인은 빨리 숨이 끊어졌지만, 그 어린 소년은 숨이 쉽사리 끊어지지 않아 고통스럽게 매달려 있었다.

이때 엘리 위젤의 뒤에서 자그마한 소리가 들렸다.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도대체 하나님이 계시기는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가엾은 저 소년을 왜그대로 두시는가?”그런 와중에도 소년이 매달린 밧줄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게 밝게 보이는 그 소년은 아직 살아 있었다.


한 시간 반 이상이나 그는 생사에서 번민하면서 우리들의 눈앞에서 차츰 차츰 깊어가는 고통으로 죽어가면서 교수대에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얼굴을 완전히 바라볼 수 있었다. 엘리 위젤의 뒤에서 동일한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다시 들을 수 있었다. “지금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그리고 그는 그 속에서 내게 응답하는 음성을 들었다.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고? 하나님은 여기에 계신다. 지금 이 교수대에 매달려 있다.”


하나님은 거기 계셨다. 우리의 고난의 현장에, 눈물의 현장에,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곳에! 1979년 서울에서 열린 <국제가요제>에서 윤복희 권사는여러분을 불러 대상의 명예를 거머쥐었다. 1절은 한국어로, 2절은 영어로 불렀는데, 이 노래는 힘들어하는 동생을 위해 윤항기 목사가 만든 곡이라고 한다. 영어 가사를 보면 이렇게 되어 있다.


앞이 안 보이고 캄캄하니? 그분이 말했죠. 내가 너의 지팡이니까 나만 잡고 따라와. 네가 사랑이 필요하지 않니? 그분이 말했죠. 내가 너의 사랑이야. 그러니까 웃고 나를 봐! 누구나 이 길을 걸어간단다. 그러니까 나를 믿고 어깨를 펴! 여기서 멈출 순 없잖아. 지금이 시작이고, 이 길이고, 이 길 하나뿐이야. 우리 함께 이 험하고 아픈 세상을 같이 걸어가자.”


이 길 하나뿐이라고, 그리고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고, 그분이 말씀하신다. 그리고 손 잡아줄테니 이 험하고 아픈 세상을 함께 걸어가자고 그분이 말씀하신다. 언제나 거기 계시는 하나님이!

조범준 목사 / 영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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