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인공지능(AI) 설교자

계인철 목사 광천중앙교회

좀 식은 감이 있지만 여전히 진행형이다. 우리의 천성에 가까운 냄비근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총선을 앞든 정치적 이유로 잠시 우리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을 뿐, 수면 아래에서 진화를 끊임없이 거듭하고 있다. 곧 우리에게 현실이 될 미래를 향해서 말이다. 이제 그 기억에 다시 불을 지펴 보자. 약 한달 전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와의 세기적인 대결이 있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전 세계의 눈을 순식간에 대한민국으로 끌어당긴 놀라운 대 사건이었다.


바둑과 알파고 그리고 이세돌의 홍보 효과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지만 동시에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도 계산 불가능한 홍보효과를 거두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5번의 대국이 열리는 동안 우리의 혼을 쏙 빼놓은 사건은 오늘만의 것으로 한정되기에는 그 폭발력이 너무 컸다. 그것은 장차 우리가 맞게 될 미래의 현실이 될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 보다는 두려운 충격으로 다가 온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이때 비로소 ‘알파고’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고, AI(Artificial Intelligence), 즉 인공지능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큰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스마트 폰과 함께 AI는 상당부분 우리의 일상에 이미 근접해 와 있었음에도 우리는 그것의 접근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인지하고 있었겠지만 일반국민은 갑자기 알게 된 지식과 현실로 자신도 모른채 인공지능 시대를 살고 있었던 것이다. 20수를 내다보는 바둑신(神) 이세돌 9단에게 단 1패만을 내어 준 알파고는 단순한 컴퓨터가 아닌 좀 더 조직화 된 컴퓨터였다. 헤아릴 수 없는 경우의 수를 활용하는 능력을 가진 것은 물론 57%의 인간 수준의 수를 넘어 스스로 공부하는 43%의 인공지능을 가진 가공할 힘을 가진 위협적 존재였다. 1,202개 중앙처리장치(CPU)를 가지고 초당 수만 번의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말 그대로 별에서 온 존재나 다름없었다. 그래서인지 이세돌의 3패 후 1승은 너무도 큰 감동과 위안이 되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이미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활동되어지고 있는 AI를 앞으로 어떻게 대처하며 감당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물론 흑백TV에서 칼라TV를 보듯이 많은 기능으로 탑재 된 스마트폰을 그냥 송수신이나 문자 등을 활용하며 검색이나 하듯이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아주 쉽게 생각하면 될 법도 하지만 미래에 우리가 직면하게 될 실재적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이미 AI는 우리의 모든 생활 영역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실수를 틈타 그 자리를 AI가 대신하면서 긍정적 효력을 발생시키고 있다. 의사보다 더 정확하게 문진을 하고, 약사보다 더 정확하게 조제를 하고, 자동차, 비행기의 정비를 정비사보다 더 잘 진단하고 처방해 사고율을 제로에 가깝게 하고, 자녀의 학습은 물론,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대행해 줄 수 있는 현재의 수준에 이르러 있다. 이러다보니 앞으로가 걱정인 것이다. 긍정이 긍정을 계속 발전시킬 수도 있지만 인간사란 늘 긍정이 부정으로 뒤바뀌어 발전하곤 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히브리대 역사학과 교수인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앞으로 30년 안에 현존하는 직업의 50%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이로 인한 높은 실업률은 사람의 삶 자체를 황폐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무인 자동차의 상용화로 택시나 버스 기사가 필요 없게 되고, 의학과 나노의 발전으로 정확한 문진과 처방, 시술을 하는 AI의사로 인해 사람 의사가 설 곳이 없어진다고 그는 말한다. 이러한 예측은 학습과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고 가르치는 AI선생으로 교사도 필요없게 되는 현실이 될 것이다. 그래서 하라리는 2050년에는 70억 명이 밥만 축낼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인간이 세상을 위해 더 이상 쓸모없는 불필요한 존재로 그저 밥벌레에 불과한 미래가 몇 백 년 후가 아닌 고작 몇 십 년 후에 닥치게 될 인류의 미래라는 것이다. 하라리는 한 걸음 더 나가 ‘앞으로 2100년 내 현생 인류는 사라질 것이다’라는 불길한 전망을 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 된 사람이 더 이상 불필요한 시대가 된다는 불행의 시대 도래를 예고한다. 실제로 ‘유엔 미래 보고서 2050’은 스티븐 호킹(S. Hawking)을 비롯한 인공지능 전문가들의 의견을 인용해 인공지능을 넘어 자아를 가진 강인공지능(super intelligence)의 시대가 되어 인간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며 경고하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위협적이고 유쾌하지 않은 전망은 교회에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현실이 된다는 것이다. 현재도 각종 미디어를 통해 집에서 설교를 들으며 교회에 굳이 나와서 담임목사의 설교를 듣지 않아도 나름대로의 영적인 충족을 한다. 물론 이것은 기형적이지만 편리성을 추구하는 시대의 사람들은 비정상적 행동에 그리 죄의식을 갖지 않는다. 절대적 신앙의 시대가 지고 상대적 신앙의 시대가 된 오늘은 교회 생활 자체가 몸이라기보다는 몸에 걸치는 액세서리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기독교는 그만큼 약화됐다. 갈수록 진보하는 AI의 모습으로 볼 때 다른 어떤 분야보다 기독교는 위기 중 위기를 맞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신학교를 나와 훈련된 설교자가 아닌 AI가 설교하는 날도 올 수 있기 때문이다. AI에게 신구약 성경과 각종 주석과 원어 등 신학과 신앙서적들을 입력하고 고금을 망라한 전 세계 유명한 설교들을 입력해 놓으면 AI가 교인들이 듣고 싶은들 최고(?)의 설교를 하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목사보다 비록 영감은 없지만 성경적 해석과 이론을 논리적으로 더 정확하게 설교할 것이다. 그러면 성도들은 감동 보다는 성경에 대한 정확한 지식에 근거한 AI의 설교에 희열을 느끼며 자기만족을 채울 것이다. 교회는 이제 더 이상 목사로 인해 걱정하거나 분쟁하거나 할 필요가 없다.


어디 그뿐인가? 굳이 목사를 교회가 두지 않아도 된다. 행정과 재정관리 그리고 설교는 AI가 하면 되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사람을 찾는다면 AI에 그때그때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집어넣어 주는 사람만 있으면 된다. 이런 ‘휴머노이드’(humanoid)들이 활개 치는 시대에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의 영역에 도전한 인간의 창조물에 진정한 신의 영역인 교회와 말씀이 무력해져야 하겠는가? 대안 없는 일방통행뿐인가? 설사 그렇다할지라도 교회는 길을 찾아야 한다. 찾지 못하면 만들어야 한다. 무엇일까, 무엇으로 가능할까?


현재와 미래에도 여전히 복음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갈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거룩과 영성이다. 갈수록 더 거룩해진 영성만이 쇳덩어리 속에서 욕망을 드러내는 AI를 대항해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감당할 수 있으며 AI로 피폐되어진 인간들을 진정으로 구원할 수 있다. 영성, 그것을 위해서는 당연히 성령으로, 오직 성령으로만 충만해야 한다. 그것만이 승리의 길이고, 끝까지 본질적 존재의 비결이다. 현재의 교회는 상당부분 시대화 되어 있다. 시대라는 관점에서 교회를 설명하려 한다. 하나님의 형상,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교회가 아닌 시대를 닮은 교회를 보여주려 한다.


결국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이미 뒷골목 교회로 전락하는 교회는 AI의 등장과 발전, 실용되어지면서 없어지게 될 다양한 분야와 업종들 중의 하나가 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다윗의 언약만 외치며 그 시대에 외치시던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닫았던 선지자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영적이 귀가 닫히고 영적인 가슴이 멈추면 그 다음에 오는 것은 교회의 종말이다. 이제부터라도 교회는 정신을 차리고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비록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소리를 들을 지라도 교회의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복음이고 그리스도다. 성경이다. 그것을 위해 나의 세속화 된 인간을 내려놓고 거듭난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돌아가야 한다.


거룩과 영성은 그것을 유지시키고 강하게 만든다. 다시 교회는 복음으로 돌아가 그리스도를 살아야 하고 말씀과 기도로 거룩함을 이루며 성령의 충만한 가운데 복음의 영성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이것만이 앞으로 다가올 어둠의 때에도 흔들림 없는 참된 교회로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가서 하면 된다는 느슨한 생각과 태도는 스스로 자멸하는 길을 택한 삶이다.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언약은 내일을 위해 오늘 주어진 말씀이다. 오늘 시작해야 한다.


복음으로 더욱 온전하며 진정한 주님이 원하시는 예배를 회복하고 말씀 중심의 설교와 말씀에 의한 기도를 회복해야 한다. 청바지 입고 강단에서 소위 열린 예배라는 족보도 없는 예배 같은 것이 아닌 거룩한 믿음의 예배, 오직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 주의 계시가 있는 예배로의 회복을 해야 하며, 오직 복음으로 예루살렘을 변화시키고, 로마를 변화시키듯이 다시 오직 복음으로 이 시대와 다가올 가공할 시대에 저항하며 굴복하지 않고 복음으로 정복하고 지배하며 이끌어가는 복음으로 합당한 교회를 지금부터라도 다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영원하나 교회는 영원하지 않을 수 있다.


말씀은 끝 날까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나 변질된 교회는 없어진다. 깊은 어둠 속에도 태양은 떠 있듯이 AI등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존재들로 교회가 위협을 당하는 때에도 하나님은 살아계시듯이 교회도 거룩한 성령과 그 역사 가운데 복음으로 살아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교회와 성도는 거룩함과 영성으로 충만하여야 한다.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해야 한다. 예배를 회복하며 기도하며 말씀을 살아내는 진정으로 그리스도화 된 심령과 삶으로 철저하게 자기 갱신과 회복의 영성을 이루며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교회는 지금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주님의 간절함이 아닌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시간은 결코 교회의 편이 아니다.



총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