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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 신뢰감 (basic trust)

상담 & 치유

어제는 광주광역시의 한 등산로에서 한 남성이 아무 이유없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등산객 한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범인은 전날부터 흉기를 들고 등산로와 인근 지역을 배회한 것으로 조사되었고 전날에도 칼을 들고 대학을 전전했으나 자신보다 젊고 월등히 힘이 센 대학생들을 위해하지 못하고 결국 등산로에서 만난 힘없는 노인을 상대로 분풀이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조사결과 가해자는 30년 동안 신경안정제를 복용한 것으로 드러났고 기자들의 질문에 횡설수설하는 모습도 방송되었는데 피해자가 자신을 고발하려 전화해서 죽였다고 합니다. 편집증적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 앞에서 전화한 것이 이런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편집증적 성격장애(Paranoid)는 의심을 잘하고 오해를 잘하며 투사를 잘하는 성격입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해치려 하고 자신에 대한 음모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정신적 질환입니다. 이런 분들은 자신의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습니다. 네가 잘못해서 내가 힘들다고 상대를 비난합니다. 그러다 보니 누구도 믿지 못합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늘 불안해하고 초조해 합니다.

이런 성격은 하나님도 잘 믿지를 못합니다. 언제나 자기 속마음은 철저히 숨기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늘 싸움을 겁니다. 모두 적들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아군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언제나 의심하고 동료 사이를 이간질하고 오해를 잘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의처증, 의부증이 옵니다. 이런 성격은 할 수만 있다면 안경에 백미러라도 달고 싶어합니다. 왜냐하면 뒤에서 자신을 공격할까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항상 누군가가 자신을 해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의심합니다. 최근의 묻지마 살인사건도 이런 편집증적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의 범행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마음놓고 산책할 수 없을만큼 깊이 병들어 가는 사회가 된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런 사람이 교회 안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편집증적 성격장애를 가진 분이 장로가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 회원들이 나를 쫓아내려고 한다며 끊임없이 의심해서 오히려 당회를 이간질하고 분열시킵니다.


예컨대 편집증 장로가 김 장로를 식사에 초대합니다. 그리고 식사하면서 김 장로, 이 장로가 그러는데 김 장로가 돈을 그렇게 좋아한다며? 교회 재정도 얼마만큼 떼어 먹었다며?” 그러면 김 장로가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아니, 이 장로가 그런 소리를 했습니까?” 그러면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 걱정마. 나는 이 장로 말 안 믿어. 우리 교회에 김 장로 같은 분이 어디 있어. 정직하고 꼭 필요한 분이지. 나는 김 장로가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해.” 그러면 김 장로는 이 편집증 장로하고 친해지고 이 장로 하고는 적이 됩니다. ‘네가 나를 모함했어? 어디 두고보자!’ 하며 이를 갈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 편집증 장로가 이 장로에게 접근합니다. “이 장로 저녁이나 같이 해.” 하고는 김 장로가 그러는데 이 장로가 여자관계가 복잡하다며?”, “아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니, 괜찮아, 나도 김 장로 말 안 믿어. 이 장로같이 순결한 분이 또 어디 있다고. 나는 이 장로만 믿어.” 그러면 당회 안에서 이 장로와 김 장로는 서로 적대적이 됩니다. 그 후에 김 장로는 이 장로의 모든 정보를 가져다 편집증 장로에게 주고 이 장로는 김 장로의 모든 정보를 가져다 편집증 장로에게 줍니다. 그러면 화목했던 당회가 전쟁터가 되는 것입니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해도 반대부터 하는 것입니다. 편집증 장로 하나가 들어오면 당회는 어떠한 사소한 안건 하나만 나와도 서로 공격하고 비난하고 아주 시끄러운 당회가 되고 맙니다. 그러니 장로는 잘 뽑아야 합니다. 그래서 선출할 때는 심리검사나 성격검사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런 검사를 안해도 이 분의 성격을 잘 아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이 분의 살아오신 인생사와 가족관계를 보는 것입니다. 이 분이 어떤 식으로 살아왔는가? 대인관계가 어떤 분이신가? 가족들에게는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들로 이 분의 면면을 알 수 있습니다.


편집증적 성격은 영적으로도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자신도, 남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이 사람은 기본적 신뢰가 깨져 있는 사람입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목사님에 대해서도 언젠가는 나를 버리고 곤경에 빠트릴 것이다. 나를 이용해 먹기만 할 꺼야라는 식으로 생각합니다.

목사님들이 이런 편집증적 성격을 가진 사람을 대할 때는 한 가지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도로 사랑하는 관계라고 해서 너무 속을 보이면 안됩니다. 편집증적 성격들은 어느 시점에서 교묘하게 그것을 약점으로 이용합니다. 나중에 결국 전모가 드러나도 결코 잘못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운전 중에 전화받다가 사고가 나면 전화한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합니다.


이런 성격 중에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려서부터 자신은 적에게 포위당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 필사적이었지요. 그래서 성공한 삶은 살지만 삶은 아주 불행합니다. 정치가나 독재자들 중에 이런 성격이 많습니다. 편집증적 성격은 무의식에 의심많은 아이가 살고 있습니다. 위기감을 느끼는 아이입니다. 아무도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적들에게 포위당한 아이입니다. 그래서 의심하고 경계하며 초조하게 살아갑니다.


어린 시절 아이들은 엄마가 절대입니다. 지켜주고, 먹여주고, 추위는 막아주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는 대상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을 기본적 신뢰감(basic trust) 이라고 합니다. 모든 인간에게 기본이 되는 신뢰감입니다. 이 신뢰감이 없으면 아무도 믿을 수가 없게 됩니다. 엄마가 아이를 사랑해 주지 않고 방치하거나 학대할 때 아이의 신뢰가 깨집니다. 엄마를 믿을 수 없게 되면 세상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되지요. 무의식에 불신이 자리잡게 되는 것입니다. 편집증은 이렇게 어린 시절 엄마와의 관계에서 만들어 집니다.


이 세상 엄마들에게 고합니다.

한번만 더 자녀를 안아 주십시오.

한번만 더 자녀에게 웃어 주십시오.

한번만 더 자녀를 칭찬해 주십시오.

그리고 자신이 화났다고 자녀를 학대하지 마십시오.

돈벌이 때문에 자녀를 방치하지 마십시오.

엄마와의 기본적 신뢰가 깨진 아이가 장차 묻지마 살인의 가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본 글은 성격, 아는만큼 자유로워진다’(이무석)을 참고했습니다)

 

/ 이희범 목사 지구촌가정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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