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은 책이다. 그러나 반드시 읽어야할 책이 있다. 특별히 다 읽고 나면 며칠씩 혹은 몇 달씩 생각하도록 흥분과 도전을 주는 책을 만날 때가 년 중 한 두 권 있다. 이 책은 침례교목회자들이 꼭 사서 밑줄 팍팍 치면서 고민하며 읽었으면 해서 소개한다.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 가는가’( 파울 페르하에허 지음/ 2015년 반비 출간) 이 책을 필자가 인도하는 한 독서모임에서 읽고 토론했다. 참여회원들과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 가는가’ 독서 후기를 나누어보자고 이야기 했더니 한결같이 분명 할 이야기가 있는데, 많은데 딱 집어서 말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알 것만 같은데 막상 자신의 말로 이야기 하려니 ‘신자유주의’ 란 단어에서부터 막힌다고 한다.
저자 파울은 벨기에 헌트 대학의 정신분석학교수이다. 신자유주의란 말은 정치, 경제학 단어이다. 파울 교수는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 질서를 신자유주의라고 딱 잘라 말한다. 다른 시장경제 시스템은 없다고 한다. 누구든지 현대인간은 신자유주의안에서 산다고 정의한다. 한국에서의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는 1997년 IMF 체제이후 세계에 시장을 완전히 개방했다. 다국적기업을 중심으로 국가도 이제는 거대기업을 어찌 할 수 없는 정도다. 한 예를 들어 최근에 환기 가습제를 만드는 ‘옥시’란 회사가 한국사회안에서 극단의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100명에 이르는 사람을 고의로 죽였다는 증거(?)가 명백한데도 당당히 생산, 판매를 하고 있다. 어떤 국가고위공무원도, 어떤 정당의 국회의원도 회사 문을 닫아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체제 이전 같으면 그 기업은 정부에 의해서 공장을 폐쇄하고 시장에서도 퇴출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국가가 하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은 정반대다. 국가도 어찌할 수가 없다.
세계시장안에서 국가는 한 기업에 불과하다. 돈으로 해결하면 되고 담당자 몇 명 법의 심판을 받으면 된다. 결국 거대기업은 살아남고 언제 그랬냐? 생각할 정도로 더욱 신제품을 열정적으로 쏟아 놓는다. 신자유주의 이전에 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는 국가란 기구는 강력한 지역, 문화, 사회 공동체의 마지막 규범(방어, 보호구역)이었다. 그러나 이제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경제적 이익이 모든 것을 결정하기에 지역 국가란 세계경제의 질서 안에서 한 기업으로 취급받는다.
이제 다국적 기업이 한국정부를 향해 줄 소송을 걸 날이 멀지 않았다. 그래서 돈이 규범이고 무한 경쟁의 기본적인 배경 안에서 살아남는 개인이란 인격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자신이 자신을 세계시장안에서 지켜야 한다. 더 이상 국가는 허구이다. 살아나는 자만이 인격으로 대우받는다. 살아남지 못하면 퇴출된다.
퇴출된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 루저(Loser, 실패자)이다. 그래서 경제, 선,후배관계, 직장, 교육, 심지어 가정과 신앙(종교)에까지 탈락하지 않으려고 엄청난 분노를 참으며 인고의 세월로 죽음까지 가야한다. 이것이 현대인의 일상이다. 신자유주의체제는 전혀 인식되지 않으면서 이런 과정을 통해 개인을 서서히 죽여 간다.
6월 24일 금요일 전 세계 금융자본시장 즉 주식시장은 초토화되었다. 단 한 가지 이유에서이다. 영국이 43년 만에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하겠다는 국민투표(영국(Britain)과 탈퇴(Exit) 줄 인말, 브렉시트 Brexit)가 탈퇴로 결정되었다.
신자유주의는 한 국가를 한 기업으로 보기에 유럽연합에 가입한 국가들은 그간 화폐를 유로화로 통합했고, FTA (Free Trade Agreement , 자유무역협정)에서 빈곤국가들이 큰 혜택을 보았다.
그러나 한국과 비슷하게 외국노동자들의 급격한 유입은 청년실업율이 급격히 늘어났고, 이민자들의 무차별 유입으로 전통문화와 다문화가정들과의 대치와 갈등이 지속되었다. 영국은 브렉시트 찬성으로 외국이민자를 막고 유럽연합에 해마다 내는 수조원의 분담을 자국발전에 쓰겠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한국경제를 세계경제 안에 편입시키면서 새로운 인간성을 창출했다. 좋은 말로는 세계화였지만 결국 종속적으로 변하도록 유도했고, 작은 한류바람을 일으켰지만 결국 세계의 문화를 이끌지는 못했다.
당장 이익과 손해를 숫자로 표시했다면 이익으로 귀결되지만 부가적인 다양한 상황들을 조사한다면 장래 분명 손해가 클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 가는가’안에 한국교회 역시 포함된다. ‘우리’란 단어를 ‘한국교회’란 단어로 바꾸어도 별 차이가 없다. 한국교회 역시 한국사회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오날 한국교회는 지난 10년 전부터 극렬하게 이단과 대치하고 있다.
이제 정통경쟁을 뛰어넘는 생존경쟁을 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교회 밖의 사람들은 이단이나 정통교회가 그저 기업의 무한 ‘경쟁’의 한 방편처럼 인식한다. 성서의 근거를 따지기보다 개인에게 당장 눈앞의 이익을 누가 주느냐에 신앙(교회)을 결정한다. 일반인들이 소기업,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을 좋아하고 대기업을 비판하면서도 자식은 대기업에 취직되길 부모들은 바란다. 이제 다국적기업을 더 좋아할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그 속에 있으면 돈 많이 주고 안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래서 더 빈곤해지고 더 스트레스 받는다. 교회는 다른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교회 안에 이제 ‘공동체’ ‘연대’ 란 단어는 찾아보기 힘들다. 신자유주의 특징이 개인이다. 모든 것이 개인으로 귀결된다. 교회는 공동체이다. 성경을 중심으로 모이는 공동체다. 예수의 삶을 따르겠다고 고백하는 공동체이다. 교회공동체가 신자유주의의 문제점들을 해결해야 한다. 시대적 소명을 발휘해야 한다.
21세기 자본주의의 방향은 분명히 신자유주의이다. 세계는 신자유주의 질서가 지배한다. 신자유주의를 구별하고 장, 단점을 알기도 쉽지 않다. 그리고 그 체제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개별정체성 파악은 더욱 어렵다. 그러나 분명 신자유주의는 반(反)성서적이다. 무한경쟁은 모두다 패자를 만드는 것이다.
반드시 신자유주의는 인간을 노예화하고 계층화하며 생명을 경시하고 (교회)공동체를 파괴한다. 지금이라도 주변을 돌아보라! 외형은 웃지만 속은 극심한 불안으로 분노하고 인격이 파괴되어가는 힘없는 신자유주의의 희생자, 대중들이 즐비하다. 교회는 진실을 알려야 한다. 목회자는 미래를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반성경적 질서에 대항해야 한다. 연대해야 한다.
조성배 목사 / 반석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