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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복의 통로 … 삶터에서 거룩한 복 누리기

           


너는 복이 될지라 / 김양재 지음 / 두란도 / 368/ 15,000

지금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기도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십중팔구 하나님의 을 받기 위해서라는 대답할 것이다. 내 자녀가 서울대 들어가는 것이 나은가? 성령을 받는 것이 나은가? 이에 대한 대답으로는 성령을 받았으니 서울대 가는 게 좋겠다부터 서울대 친구라도 사귈 수 있도록 하숙집 운영을 하고 싶다까지 다양할 것이다. 우리는 대개 자녀가 세상에서 잘 되는 것을 이라고 생각한다. ‘복되다라는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교회 직분자라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그들이 말하는 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돈이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일부 전문가는 기독교인의 70%가 샤머니즘으로 흐를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신약시대 당시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많은 사람이 예수님이 좋아서라기보다 기적과 복이 좋아서 따랐던 것은 아닐까? 현재도 은혜를 받는 것이 직접적인 복이라고 믿고 산다. 복의 진행형은 계속 되기를 바라고 있다

 

저자는 창세기 12장에서 15장까지를 통해 을 다루고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후 아브람이 고향을 떠나 가나안에 정착해 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창세기 12장에서는 떠나야 할 곳과 가야할 곳에 대한 아브람의 결단을 보여준다. 먼저 아브람을 부르시는 하나님 즉 를 부르시는 하나님을 만난다. 인생의 목적은 거룩이다. 그 거룩을 위해 부르시고 썩어질 정욕을 위해 떠나라고 명하신다. 아브람에게 고향을 떠나게 하신 것처럼 우리는 이 세상으로부터분리되는 적용을 해야 한다. 십일조를 구분하고 시간과 달란트를 드려야 하는 것처럼. ‘친척과 아비를 떠나’(12:1)라는 말씀처럼 혈과 육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믿기 어렵다면 부모로부터 떠나야 한다. 내가 붙들고 있는 상처와 안주하고 싶은 곳에서 떠나야 회복이 있고서 성숙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땅으로 가야한다. 세상사에 시달리다 보면 삶의 적용이 잘 안 된다. 보여주실 땅으로 간다는 것이 어렵다. 게다가 아브람이 믿음이 너무 좋아서 떠났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금세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아브람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을 아는 믿음으로 나아갔다. 하나님은 700년 뒤에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나안을 허락하신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멀리보고 크게 계획하신다. 후손의 후손에까지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한다.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 아닌 거룩을 쫓아가는 크리스천의 삶 가운데에도 전쟁이 있다. 입시도 취업도 승진을 위한 전쟁을 피할 수 없다. 특히 가족공동체의 부부간의 다툼(?)이 가장 잦은 전쟁일 것이다. 각자가 너무 잘나고 교양이 있어서 상대를 구원해 줄 필요를 못 느낀다. 누군가 그릇된 사람이 있는 게 축복이다. 그릇된 사람이 있어서 그 덕에 생명과 구원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런 가치관을 가지고 전쟁을 치러야 승리할 수 있다.


너는 복이 될지라너는 복이 되어라란 뜻이다. 다시 말해 타인에게 복이 되는 삶을 살라는 의미다. 복이 되려면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집 안의 맏며느리가 희생하면 온 가족이 편안하듯이 복이 되는 삶은 세상의 잣대로 보면 참으로 고달픈 인생일지 모른다.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이 땅에서 누리는 축복이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고난이 계기가 되어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경배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바라크’(barak·히브리어로 신의 축복이라는 뜻)가 최고의 복이다. 우리 각자가 바라크의 삶을 누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배우자, 자녀, 직장, 학교에서 사랑으로 섬길 때 거룩의 복과 세상의 복도 함께 주어질 것이다. 특별히 인간의 끊임없는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얼마나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지, 약속을 얼마나 신실하게 지켜 가시는지를 경험하게 할 것이다.

/ 이한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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