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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좀 하고 살아라

 

TV를 보면서 긴장을 푼다? TV를 보면서 긴장을 느낄 수는 있어도 긴장이 풀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오래 시청할수록 더더욱 그렇다. 에너지는 관심을 한 곳으로 모으거나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다시 충전되는 법이다.

 

TV를 보고 있으면 주의력이 먼 곳으로 즉 우리가 보고 있는 그 곳으로 달아나버린다. 그러니 정신 에너지가 흩어져 정신이 산만해지고 집중력도 약해진다.

 

살기도 바쁜데 인생의 의미는 무슨?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이런 질문들을 우리는 나중으로 미룬다. 이 것은 어디로 갈지 정하지도 않고 무조건 길을 떠난 여행자와 다르지 않다. 그러다 인생이 중반으로 접어들 무렵 갑자기 정신이 번쩍든다. 그리고 이런 의문이 든다.

 

나는 왜 살고 있을까?’ 죽을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하고 나서야, 퇴직을 하고 나서야 인생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인생의 의미를 묻는 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요즘 세상에 누가 도덕적 가치를 따져?

우리의 가치관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고 있다. 자신의 가치관을 거스르며 사는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긍정적 사고가 상황을 악화시킨다?

긍정적 사고는 사실을, 현실의 어려움을 대하는 자세의 변화다. 문제가 닥쳤을 때 긍정적인 기본 자세는 해결책을 좀더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배운 사람한테 종교가 왜 필요해? 물질적 세계관이 만연할수록 물질적 세상이 줄 수 없는 마음의 양식이 필요한 법이다.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시간 낭비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에너지를 재충전하고 휴식을 취하는 아주 집중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시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버리고 시공간을 떠나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보라. 그럼 우리 안에서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재미있게 놀아야 휴식이 되지..?

사람들은 시간이 없어서 죽겠다고 난리를 치면서 막상 시간이 주어지면 소일거리를 찾아 헤맨다. 컴퓨터 게임도 하고 잡담도 하고 잡지도 뒤적거리고 TV도 보고 차를 타고 드라이브도 한다.

하지만 이런 소일거리들이 휴식을 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려면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완전히 해방되어야 한다. 마사지를 받거나 사우나를 찾거나 명상을 하거나 숲 속에서 산책을 하는 등 오락거리가 없어도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방법은 수없이 많다.

 

문화생활은 TV로 즐기면 되지..?

집에서 즐기는 것이 더 편리할 수는 있지만 콘서트나 연극, 영화의 생생함은 아무리 값비싼 평면 TV로도 다 전달할 수 없다. TVTV일 뿐이며 결국 간접 체험이다.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억인가? 의미의 문제는 행동과 라이프 밸런스의 기초다. 비젼은 인생의 원동력이다. 미래에 대해 뚜렷한 이미지를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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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에도 우리의 기도는 멈추지 않는다”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는 충남 강경 옥녀봉에서 찬송과 기도의 부르짖음이 울려 퍼졌다. 114차 총회(총회장 이욥 목사)는 지난 5월 10일 강경 옥녀봉 ㄱ자 복원교회에서 신사참배거부 교단기념일 감사예배를 드렸다. 이날 예배는 81년 전, 1944년 5월 10일 일제총독부 함흥재판소에서 신사참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교단이 폐쇄된 날을 기리고 믿음의 선진들의 뜻을 되새기는 행사로 진행했다. 1부 감사예배는 총회 교육부장 김성렬 목사(만남의)의 사회로 평신도부장 김태욱 목사(두란노)가 대표로 기도했다. 이어 전국여성선교연합회 글로리아합창단이 찬양하고 총회 여성부장 하숙현 권사(범일)가 성경을 봉독한 뒤, 이욥 총회장이 “하나님 말씀 순종에 목숨 건 사람들”(렘 38:5~6)이란 제목으로 설교했다. 이욥 총회장은 설교를 통해, “예레미야는 제사장의 아들이자 선지자로 무너지는 유다 왕국의 마지막을 보며 애통한 선지자였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백성들의 불순종과 왕국의 멸망을 예언하며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선포했다”며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고난과 수난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교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