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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목사 변방에서 춤추다

우리들의 작은 천국 / 김선주 지음 / CBS북스 / 272쪽 / 13,000원


시골은 변방의 다른 이름이다. ‘시골이라는 말은 도시와 이분법적 대칭점에 있는, 소외된 상황을 내포하기도 한다. 저자는 오늘 변방에 있다. 그는 도시를 떠나 해발 500고지 백두대간의 심산유곡 시골인 충청북도 영동에서 목회하고 있다. 이곳에서 그는 신앙이 삶이 되고 삶이 신앙이 되는 사람들의 교회를 꿈꾸며 인문학과 신학이 통섭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촌스러운 추수감사절

농경문화가 사라진 시대에 농산물의 전시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저자인 시골 목사는 추수감사주일 전에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 가져오라고 했다. 추수감사주일 강단은 흙, 들기름, 김치, 배추 무와 푸성귀, 대파, 돌사과 냄새로 주변에 출렁인다. 그것들은 맨몸으로, 비료포대, 검은 비닐봉지, 플라스틱 소쿠리, 보자기에 담겨 가장 소중한 예물로 올려졌다. 교인들도 고운 옷으로, 아끼느라 낡고 허름한, 대충 세수하고 등의 차림새를 갖추고 피차 다른 생김새, 성격과 각기 하나님을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지만 모두 하나의 공간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렸다. 그들이 추수감사절에 드린 예물처럼.

 

화요일의 떡이 금요일엔 돌떡으로

교회 최고령자 최인자 할머니(94)는 한 해 가운데 최고로 음식준비에 신경 쓰는 때가 있다. 속회예배를 드리러 오는 목회자는 가장 어려운 손님이다. 시골 목사는 다과를 준비하지 말라고 누누이 말했지만 나이 드신 분들의 생각과 습관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목사는 정성껏 준비한 그들의 마음을 받아주는 것도 사명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가끔 손을 대기 어려운 것도 있다. 딴에는 좋은 것이라고 아끼고 아껴서 보관해 놓은 향기로운 예물들이 상하거나 곰팡이가 핀다. 노안과 후각, 미각이 둔해진 나이 드신 분들은 당신의 마음이 거기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상태와 무관하게 최고의 선물이자 예물이다. 대접을 위해 일주일에 한번 마을로 오는 작은 트럭을 통해 구입한 최고의 상품인 감자떡은 삼일 뒤, 돌떡이 돼버린다. 이 메뉴에 질릴 때도, 바꿀 때도 됐는데 바꿀 수가 없다. 세상에는 개인의 의지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다.

 

! 사랑하는 나의 아가씨

마을에 아흔한 살, 아흔 살, 여든 다섯 살의 나이가 고만고만한 아가씨 셋이 산다. 언제나 동지섣달에 달에 꽃을 본 듯이 나이 어린 목사를 향해 다정하고 환하게 웃는다. 어디서든 아가씨들을 만나면 시골 장터에서 시집간 딸을 만난 것처럼 펄쩍 뛴다. 그들은 명랑한 재잘거림, 바람에 나부끼는 붉은 댕기,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연인의 아련함을 곁눈질로 훔쳐보고 싶은 신비로운 느낌이 풍기는 아가씨들이다. 이들은 서로의 운명을 공유하듯 헤어질 때마다 손을 잡고 흔들며 애잔하게 인사한다. “잘 먹어야 해요, 아프지 말아야 해요, 사랑해요.” 일주일에 단 두 번 만나서 생사를 확인하는 이들의 만남을 지켜볼 때마다 얼음장에 금이 가듯 목사의 마음은 찡하고 금이 간다.

 

이 책은 어느새 하늘을 미세먼지 가려져 색이 희미하고 각종 소음과 바쁨, 겉치레 인사말로 오가는 도시의 삶을 벗어나 함께 변방에서 춤추고 싶어진다. 시골 목사가 초대하는 별과 들풀과 산짐승들, 고독한 시간들과 따뜻하고 순박한, 가난하지만 인정 많은 이웃들이 있는 천국으로 잠시 떠나보길 권한다


/ 이한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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