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1517년 독일의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된 비텐베르크 성당에 면죄부에 대한 95개조 반박문을 붙인 그해로부터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오랜 시간 독서를 다양하게 해 왔지만 사실 종교개혁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마르틴 루터에 대하여 잘 알지 못했다. 종교개혁의 혜택을 지금도 받고 있는 한 명의 목사(필자, 독서가)에게는 항상 불안한 요소였다.
누가 “루터”에 대해 질문이라도 하면 벙어리가 돼야할 판이다. 그래서 마음은 늘 막연하게 ‘언제 한번 루터의 삶에 관한 책을 읽겠지’라고 생각해 왔는데 올해가 지나면 의미부여가 될 것 같지 않아 초조했다. 때마침 대전침례교목사독서학교 회원들과 2017년 전반기를 갈무리하면서 “마르틴 루터”(롤런드 H 베인턴, 생명의말씀사)를 3주 동안 함께 읽었고 다 읽고 책을 내려놓으며, 부담감에서 조금은 해방됐다. 필자처럼 종교개혁의 의미를 조금 더 진지하게 알기 원하는 독서하는 침례교목회자들에게 먼저 읽은 독자의 감상을 적어본다.
1.죄 해결과 참된 구원에 대한 깊은 생각이 루터를 이끌었다.
루터는 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죄 문제 해결을 위해어린 시절부터 로마서를 통한 은혜의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늘 두려움을 가지고 살았다. 루터가 신부가 되려고 했던 동기는 나름 죄에 대한 심적인 고통을 줄여 보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루터는 많은 비가 내릴 때 천둥과 번개가 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자신에게 임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궁극적으로 어떻게 죄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고 성서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기 전까지 분초마다 고민했다. 이런 과정이 결국 종교개혁자의 길로 나서는 원초적 용기와 뿌리를 제공한 것이다.
2. 중세시대 보통 사람들은 성경 읽을 수가 없어서 내용을 정확히 몰랐다.
16세기 루터가 살던 시대에는 아직도 성서가 루터의 모국어인, 독일어로 성서 전체가 번역되지 않았다. 루터가 신부가 돼서야 라틴어 성경을 그것도 조금씩 읽으면서 구원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알기 시작했다.
고대 신화적 세계 속에서 살고 있던 중세인들은 마녀, 귀신, 유물숭배등을 일상생활에서 의식(경험)했고, 성당의 성화를 보고 희미하게나마 구원의 이미지를 배워가고 있었다.
다행히 중교개혁이 일어나고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교회 밖의 일반 시민들에게도 르네상스(인문혁명)의 결과물들이 인쇄술의 발달로 책으로, 문서로 만들어져 퍼져나가면서 사상적으로 강력하고, 지리적으로 넓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그 당시 독일은 수십 개의 영지로 나눠져 있었고 유럽의 중심이 아니라 변방의 힘없는 나라였다. 그러나 인간이 생각할 수 있다는 사물에 대한 관찰과 의문을 가지면서 나름 신화적 사고가 깨져가며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방법들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이때 루터는 종교개혁 과정 중 천주교에 쫓기며 한 성에 숨어들었고, 지방영주의 보호가운데 이때 독일어 성서 번역을 시작했고, 인쇄기술의 발달로 독일어 성서가 로마가톨릭에 반항하는 영주를 중심으로 대량으로 중세 지식인들에게 보급됐다.
<계속>
조성배 목사 / 반석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