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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살아야 교회가 산다-4

나이 50이 넘었지만 청년대학생 사역을 아직도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졸업시즌을 맞이하면 종종 대학 캠퍼스에서 섬기던 여러 영혼들로부터 선물을 받는다. 즉 공부를 다 마치고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캠퍼스를 떠나는 자들로부터 받은 감사의 메시지들을 읽는 축복이다.


올 해는 약 4년 전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지 못한 상태에서 처음 만났으나, 사역하던 대학교회에서 세례를 직접주고, 여러 번 성경공부 과정을 섬기고, 결혼 주례까지 섰던 한 형제로부터 그 선물을 받았다. 졸업식을 수일 앞두고 그 형제의 아내가 남편의 박사논문에 실린 감사의 글 일부를 카톡으로 보내왔다.


“주례를 서 주신 석종준 목사님 내외분께서 아직도 저희 멘토로 있으시고 때로는 직접 찾아와 주시고 심방으로 섬겨주시니 감사합니다. … 서울대학교회를 통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인생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했습니다. 대학생활 동안 많은 불가능한 것들이 가능했습니다. 석종준 목사님의 성경공부 및 기도 주말 목장모임을 통해 신앙이 튼튼해졌습니다.”


형제는 몇 차례 함께 성경공부과정을 마치고 부목자로 섬기던 중 제자훈련으로 유명한 어느 교회 목자였던 옆 연구실의 한 신실한 자매와 교제를 시작했다. 나는 이들의 연애시절 둘 다 박사과정 전공이 화학임을 알고 퀴리 커플이라는 별명을 붙여 축복했었다.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은 주님과 캠퍼스 형제, 자매들의 축복 속에서 가정을 세웠다. 가정을 세운 후에는 또 얼마나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며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예쁜 사랑을 하고 또 신실한 가정을 세워 가고 있던지,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 가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하고 은혜가 되는 축복의 통로가 됐다.


상상을 해 보시라. 남편을 진심으로 존경한다는 아내와 예쁜 아들 아기와 함께 행복해 하는 모습을 숨기지 못해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 있는 형제는 스스로 이렇게 고백한다. “저는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모든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목사님.” 올해 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또 다른 한 형제는 자신의 학위 논문과 함께 이러한 편지를 전해왔다. “목사님 사랑하고 감사드려요. 늘 목사님을 편하게만 생각해서 좋은 일, 힘든 일 있을 때 항상 제 위주로 목사님을 대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늘 안아주시고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해요.”


이 형제는 학위 과정 중에 몸과 정신이 모두 연약해져서 참으로 여러 번 고비를 넘겼던 영혼이다. 그러나 그가 마침내 공부를 무사히 마쳤다. 마쳤을 뿐 아니라 내년에는 미국의 저명한 한 연구소로 떠나게 될 예정이다. 다만 올 한 해 기독대학원 학생회 후배들을 뒤에서 섬기기 위해 헌신했고, 날마다 찬양과 기도로 캠퍼스 복음화를 위한 자신의 분깃을 감당하고 있다.


청년 사역의 보람과 가치는 어려운 때에 맡겨주신 영혼들과 함께 하며, 그들의 연약함과 아픔을 동여매는데 힘을 보테면, 그들이 주 안에서 다시 영육이 회복되어 서게 되는 날, 반드시 자신이 받은 것 이상의 몫을 다른 영혼들을 위해 베푸는 자들이 된다는 것이다.  


내가 청년대학생 사역자로 처음 발을 내딛은 것은 1992년 침신대 신대원 1학년 때였다. 선교단체 출신이라는 것이 처음 계기가 됐고, 전국 방방곡곡의 여러 교회, 여러 캠퍼스를 섬기며 나름 재미도 있었으며, 소명으로 받아들인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새 섬기는 영혼들은 동생 같은 나이에서 자녀 같은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나는 결코 대학생 자녀를 둘이나 둔 50이 넘은 현재까지 청년대학생 사역을 계속하고 있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데 이제는 도저히 이 사역을 떠날 수가 없다. 다음세대를 위한 한 영혼을 세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지난 금요일 저녁 캠퍼스에서 사역을 마치고 돌아오니 밤 9시였다. 누적된 피곤 탓인지 몸살기가 일고 정상이 아니었다. 이럴 때 습관적으로 행하는 버릇이 있다. 청년 때에 복음을 전하러 우리 땅을 밟은 선교사의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주 만난 이는 서서평(Elisabeth Shepping, 1880~1934) 선교사.

그녀는 32세에 한국에 와서 오직 문둥병자와 버림받은 여인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다 54세에 영양실조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의 좌우명이 나를 다시 일으켰다. No success, but service!


석종준 목사
서울대 캠퍼스 선교사
상대원교회 협동
침신대 학부 신대원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