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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은혜인줄

고성우 목사
반조원교회

30년 전 내가 군목으로 사역하던 부대는 1개 대대가 대략 6개월씩 교대하면서 인천 해안경비를 맡고 있었는데 여러 부두와 해안을 따라 아홉 개의 소초와 3개의 중대본부로 운용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내가 그 부대 병사들 주일예배를 인도할 수 없었고 그래서 신자인 병사들은 지휘관의 재량으로 소초 근처 민간인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곤 했다.


그런데 새로 부임한 대대장이 맡은 대대로 부대가 교체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대대장이 내게 이런 요청을 했다. 병사들이 주일마다 부대를 떠나 자기들끼리 민간인 교회를 오고가는 것이 지휘관으로서 너무 부담이 되니 나보고 와서 예배를 인도해달라는 것이었다. 항구 여러 부두에 흩어져 있는 소초의 신자들을 자기가 주일마다 차를 보내서 한 곳으로 모아줄 테니 수고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사실 그 때 나는 이미 주일 아침 9시 부평에 있는 부대에서 첫 예배를 드리면 부천, 김포공항, 송도를 거쳐 다시 부평으로 100km가 넘는 길을 돌며 저녁때까지 하루 다섯 번 예배를 인도하고 있었다.


대대장이 부탁을 하는데다가 병사들을 모아준다는 중대본부는 내 이동 경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시간도 1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기에 그러마고 했다. 주일이 되어 약속한 부대로 갔더니 예상대로 사병식당에 형제들이 모여 있었다. 갔더니 취사장에서 사병들이 덜그럭거리며 일하는 소리가 크게 들렸고 게다가 모여 있는 숫자를 보니 짜증스러운 마음이 확 들었다. 민간인 교회로 나갈 때에 비하면 삼분의 일도 안 되는 숫자인 열댓 명 정도였는데 내가 예배를 인도하고 있던 다른 부대에 비해도 너무 적은 수였기 때문이었다. 그 때 야전 강대상을 꾸미고 있던 내게 이런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네가 만약 제대를 하고 교회를 개척해서 20대 남자청년이 지금 여기 모인 만큼 있다면 어떨 것 같니? 별 걸 다 할 수 있지 않겠어?’ 입대 전 30여 명의 교사들과 200여 명의 학생들로 이뤄진 고등부를 맡아 7년간 사역했고 일꾼의 부족함을 모르며 연대 군목을 하던 내게 그 말은 아주 실감나게 다가온 것은 아니지만 ‘정말 그럴 수 있겠네. 열댓 명이 결코 적은 수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다 집고 예배를 드렸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지역 면 전체에 실제 거주하고 있는(주소지가 아닌) 20대 청년은 남녀를 다 합해도 10명이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마을에도 집에 내려와 잠시 머물다가는 사람을 제외하면 한 명도 없다. 우리 교회도 2003년 수련회가 청년부 마지막 행사였고 현재는 가까운 읍에서 우리 교회로 나오는 가정의 대학생 자매 한 명과 잠시 집에 내려와 있는 딸아이 뿐이다.


농촌인 우리 마을에서 농사짓는 이들 중 36세에서 55세까지의 남성이 한 명도 없다. 교회도 그렇다. 20대 청년 열다섯 명이 우리 예배당에 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뛸 것 같다. 나는 그 때 그 사병 식당에 모인 십여 명의 형제들이 얼마나 가슴 벅찬 존재들인 지 알지 못했다. 물론 지금의 교회에서 성도들과 함께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주님의 은혜인 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때 20대 청년들과 함께 주님을 섬기는 것이 그 때 누릴 수 있는 주님의 은혜임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군목 사역이 즐겁고 보람 있었지만 매 순간순간 가슴 벅찬 은혜의 감격을 누리지는 못했다.


얼마 전 오랜만에 장거리 해외여행을 하게 됐다. 장시간 비행기를 타야하고 또 오랜만에 하는 먼 나라 여행이기에 설레는 마음도 있어서 내가 타고 갈 비행기의 탑승후기를 찾아보았다. 많은 것을 읽은 것은 아니고 앞쪽에 있는 것들 몇 개를 보았는데 한 결 같이 갈 때 비행기와 올 때 비행기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갈 때 비행기는 헌 것이고 올 때 비행기는 새 것이었다며 헌 비행기에 대한 불만들을 풀어 놓았다. 1년 전 같은 노선 비행기를 탔던 큰 아이도 같은 말을 했다.


어쨌든 출국일 되어 새 비행기에 대한 기대는 일단 접어두고 귀국할 때 누리기로 하고 비행기를 탔다. 장시간 타다 보니 엉덩이도 아프고 몸도 뒤틀리는 것 같고 그러니 왠지 의자도 조금 불편한 것 같고 화장실도 왠지 깨끗한 것 같지도 않고 여하튼 유쾌하지 않은 마음을 여행지에 대한 설렘으로 달래며 무사히 도착했다.
여행을 마치고 드디어 귀국하는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를 타 좌석을 찾아 앉으며 나는 “어!”하는 탄식어린 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지금 탄 귀국 비행기가 헌 것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앞 의자에 붙은 모니터가 더 작았던 것이다. 갈 때 나는 내내 헌 비행기를 탄 것이다.


새 비행기를 타 놓고도 헌 비행기라 생각했기에 마음이 불편하니 몸도 불편해 하며 간 것이다. 항공사 사장도 좋아한다는 새 비행기를 타고도 그것을 누리며 기분 좋게 간 것이 아니라 불편해하며 간 것이다. 오는 비행기에서 나는 ‘이 비행기도 괜찮네. 헌 비행기라더니 별 차이도 없네.’하며 스스로를 위로 하며 와야만 했다. 신기한 것은 갈 때 엉덩이가 그렇게 아프더니 올 때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은혜를 은혜인줄 알지 못하면 당연히 감사하지 않는다. 감사가 없으니 기쁨도 생기지 않는다. 그러니 충성도 기쁜 마음으로 하지 못하고 의무감으로 마지못해서 하게 된다. 예수 믿는 것이 무미건조하고 힘들게 된다.
은혜를 은혜인줄 알지 못할 때 일어나는 또 하나의 비극적인 문제는 은혜를 받고도 그 은혜를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은혜를 누리지 못한다는 것은 주님이 주시는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은혜를 은혜인 줄 알지 못하면 행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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