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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 마음

김종훈 목사의 목회이야기-92


김종훈 목사
오산교회

권사님 한 분이 주일예배를 드리고 나오시면서 내게 여쭙는다. “목사님, 시간 되시면 우리 장로님 심방 한 번 부탁드려요. 요새 더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서요.” 그 말씀에 아차 싶어 ‘그러겠노라’ 말씀드리고는 얼른 지난 수요일에 다녀왔다.
가뵈니, 생각보단 괜찮아 보이셔서 마음은 놓였다. 하지만 그분의 153감사대행진 일기장을 펼쳐 읽는 순간, 장로님 마음은 확실히 전보단 약해지셨음을 느꼈다. 다음은 장로님 쓰신 6월 26일자 감사일기 내용. “요즈음 건강이 많이 안 좋아서 나도 모르게 실의에 빠지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박차고 나가야 승리자가 되겠는데…. 힘과 지혜를 주시옵소서. 아멘.”


오죽하면 감사일기까지 그리 쓰셨을까? 하기야 벌써 병원 생활도 4년이나 되셨으니 젊은 사람이라도 그럴게다. 그래서인지 그 일기장 문구는 지금도 마음에 남아 나의 기도가 된다.
그러고 보니 최근 우리 권사님들 중에도 몸과 마음이 많이 약해진 분들이 계셔서 안타깝다. 누구보다도 교회 위해, 날 위해 기도 많이 해주시는 분들이신데 점점 더 쇠약해지시는 걸 뵈니 마음이 무겁다. 물론 그분들이야 “천국이 더 좋다”시겠지만, 그래도 아직은 아니 될 말씀이다. 어차피 가실 천국, 좀 천천히 가시면 어떠리. 그러니 부디 건강들 하셨으면 좋겠다.


그런데 장로님 심방을 마치고 나오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도 스친다. 목회자로서 느끼는 이 안타까움은 무엇과 같을까? 그런 부모를 지켜보는 자식과 같은 마음일까? 그런 자식을 지켜보는 부모와 같은 마음일까?
물론 그분들과의 나이 차이만 생각하면 당연히 자식 같은 마음일 거라 나조차도 생각했지만, 생각해보니 놀랍게도 내 마음은 부모의 마음과 더 닮아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자식에 대한 부모 마음은 부모에 대한 자식 마음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예컨대 내게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겼다 하자. 그러면 누가 더 기뻐할까? 내 어머니일까? 내 자식일까? 단연코 내 어머니다. 반대로 내가 어디 좀 아프기라도 하자. 그러면 누가 더 걱정할까? 내 어머니일까? 내 자식일까? 단연코 내 어머니다. 성도를 향한 내 마음도 같다. 날 향한 그들 마음보다, 그들 향한 내 마음이 더 크다. 아비 마음이다. 그래서 누구라도 좋은 일 생겼다고 알려주면 그렇게 기쁘고, 누구라도 잘 안되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그렇게 눈물 날 수가 없다. 꼭 아비 마음이다.


지난 주일 오후, 아장아장 걷는 한 아기를 보았다. 그 아빠와 엄마는 우리 교회에서 자라 교회 커플로 결혼한 부부인데, 난 그 친구들을 고등학생 때부터 봐왔다. 그런데 어느새 청년들이 되더니 서로 결혼했다.
물론 내가 주례했고, 그 뒤 임신했고, 아기가 태어났고, 내가 헌아식도 집례했다. 그리곤 얼마간 그들 품에 있는가 싶더니, 세상에 벌써 아장아장 걷고 있는 게 아닌가. 어찌나 이쁘고 신기하고 감사하던지. 그 또한 오산교회 15년 목회 열매라 생각하니 기분이 너무나 좋더라. 내 아이도 아닐진대, 아비 된 마음으로 바라보니 그렇게 기쁘더라.


그런가하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날 가슴 아프게 하고 교회를 떠난 분이 있다. 도통 연락이 없다가 얼마 전 이런저런 일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너무 하고는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으셨단다. 그러면서 “너무 죄송하다”고. 그런데 놀랍게도 그 전화 한 방에 10년 묵은 내 마음이 그만 다 녹아내렸다. 웬일인지 모르겠다.
“그때 왜 그러셨냐”고 묻고픈 마음이 정말 요만큼도 없더라. 그냥 그 전화 한 통에 다 지워져버렸다.
도대체 이 마음은 뭘까? 왜 나는 그에게 그 무엇도 따지지 않았던 걸까?
 이 역시 아비 마음이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바로 그 아버지 마음. 다시 돌아와 준 것만으로도 충분해 그 무엇 하나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그냥 품어버리는 마음. 그래서일까? 어느덧 흐른 세월동안 이 아비 같은 마음이 내게도 생겼음에 너무 감사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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