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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보면 역시

한명국 목사의 회상록

한명국 목사
예사랑교회

주일 설교 준비와 침례교전국사모회의 설교준비도 마치고 모처럼 뒷산을 올랐다. 작년에도 한번 만나 인사한 공 목사님과 한 시간 넘게 교제의 시간을 가졌다.
그는 통합측 교단의 목사로 은퇴하고 2년 후에 마지막 때의 사명으로 이스라엘 선교사로 나가려고 준비하는 동안 여유있는 직장에서 히브리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성경공부도 새롭게 열중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젊어서 목회할 때 두 번의 입신의 체험을 했는데, 그 놀라운 경험은 완전한 변화의 계기가 됐으며 찬란한 천상세계와 지옥의 참경험은 정반대의 경험으로 주님 앞에 신실하고 충성스런 목회의 계기가 됐다고 했다.


그는 나의 십자가의 은총과 서울교회 목회 중 참담했던 유치원 화재로 욥이 겪은 원수 악마의 혹독한 시련과 같은 환란을 극복한 “주님의 합력선”의 역사를 듣고 공감하면서 그도 아래와 같이 간증했다.
그가 2000여명의 교회에서 목회할 때 오직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사역했는데 장로 피택 문제로 고민에 빠졌다.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었다. 그 장로 후보자는 많은 친족이 있었고 교회와 다른 장로들에게도 영향력 있는 자로 결국 장로회에서 만장일치로 추대된 상태였다.


그가 장로 장립을 허락하면서 대신 목사인 그가 사임을 하겠다고 통보하니 교회는 매우 뒤숭숭했지만 한 달 후인 연말까지 목회하고 뒤돌아보지 않고 은퇴했다.
새로운 목사가 부임한지 몇 개월 후에 신임 장로와 수석 장로들과 함께 목사님의 운전으로 야외를 나가던 중 삼중 교통사고로 목사님은 부상하고 살아났으나 다른 장로들은 생명을 잃었다. 주님께서 어쩌면 그를 사망의 골짜기에서 살려주신 것에 감사하면서도 그 참화는 잊을 수 없으며 다른 여러 아픈 사연이 마음에 떠올라 괴로울 때가 있다고 했다.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하므로 말세에 이스라엘 선교를 마지막으로 그곳에서 순교하겠다고 결심한대로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한국교회의 현실과 종말적 세상에 대해 심도있게 대화하고 복음전도로 구령의 사명을 다하는 동역자로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눴다. 혼자 내려오면서 소년시절의 절규로 평생 잊을 수 없는 사실로 주님께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던 적이 별로 없으며 바다의 높은 풍랑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인생의 유라굴로가 있다.
한국전쟁 휴전 다음 해인 1954년 2월 나는 28시간 동안 동해 바다 위에서 폭풍으로 휴전선을 드나들면서 작은 배 속에서 선원과 선객 10여 명과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포항에서 울릉도까지 주로 화물을 싣고 다니는 배인데, 오징어잡이 통통배보다는 큰 “신생호”라는 배였다.
바쁜 손님들을 선원실에 10여 명 싣고 대신 승선비를 받아 선원들과 선장이 챙기는 모양이었다. 그것도 오후 1시에 돈을 주고 겨우 탔는데 통구미를 돌아서 얼마간 잘 가더니 저녁이 되니 정말 유라굴로 같은 태풍이 몰아쳤다. 배는 회향도 못하고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밀려갔다.” 후에 들으니 폭풍에 밀려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밀려 속초 앞에서 휴전선을 넘나들었다고 했다.


배안의 선원실의 혼탁한 공기에 구역질나는 이상한 냄새와 기름 냄새에 승객 모두는 멀미를 견딜 수가 없었다. 보통 배는 좌우로 90도 이상 흔들려 90도가 넘으면 뒤집힌다고 들어왔는데, 좌로 40도에 우로도 40도 가량 흔들리니 모두 구토해 구토물이 옷에나 머리, 바닥에 뒹굴어 서로가 뒤집어쓰고 이리저리 좌우로 휩쓸리니 남녀노소할 것 없이 뒤범벅이 됐고, 인격도 체면도 없고 신음소리로 죽는 판에 정신도 아무것도 없었다.
나도 그들처럼 토할 것이 없으니 전날 먹은 똥물이 창자로부터 계속 올라왔다.


예수님을 믿은 지 3년 밖에 안 되었으나 나는 정말 “하나님, 날 좀 살려주시이소!”라고 신음소리와 함께 그렇게 절박한 사경에서 간절히 기도한 적이 없었다. 불교인이나 무종교인도 너무 다급하니 모두 하나님을 찾지 부처님이나 신령님을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드디어 태풍이 그치면서 우리는 이튿날 낮 속초 앞에서 동해안을 따라 출항한 지 28시간 후 어두운 저녁 5시경에 포항 학산 부두에 내렸다. 장시간 동안 사망의 골짜기에서 나온 가련한 몰골이었다. 남녀 모두가 머리는 파마를 했는데, 미장원에서 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토한 오물을 뒤집어쓰고 마구 비벼서 마음대로 구겨지고 흐트러진 머리요, 옷은 구토물로 얼룩졌으며, 들고 다니던 가방에도 구토물이 묻었다.


내가 입은 교복 오른쪽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누구의 것인지 몰라도 손에 물컹거리는 구토물이 채워져 있었다.  사람이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군대 귀신 들린 사람의 몰골이요, 사경을 헤매며 얼마나 혼이 났는지 제 정신을 차리고 배에서 내린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영혼이 죽을 판에 혼쭐이 나니 그제야 영혼의 주관자이신 주님을 찾게 되었다. 나는 위기상황, 사망의 그늘에서 혼쭐이 날 때만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늘 함께하시는 주님께 감사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보았다.


환란 날에 주님께 부르짖어 구원을 받은 그 경험은 그 후 외지에서 어렵게 공부할 때나, 64년 3월 8일 이후 지난 수 십년간 목회 중에서나, 긴급 조치하에 투옥생활 8개월 중에서나, 지난 138회 해외선교여행으로 80여개국의 곤고 중에서도 늘 가까이 하신 주님의 십자가 은총과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에 감사 찬송을 올려드리며 남은 여생 천국 갈 때까지 건강하게 복음으로 살 동안 늘 보호 인도해 주실 것을 기도하고 믿는다. 아멘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