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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지역의 덕스러운 복음전도의 기수 이덕여 목사(4)

김대응 목사 예수향기교회
한국침례교회역사연구회 회장

대화회(오늘의 총회) 풍경
매년 개최되는 대화회는 교단의 큰 행사였다. 전도인 직분을 받은 교인들은 거의 빠짐없이 참석했다. 이들은 전도활동에 대한 체험담을 듣게 되고 또한 세워진 교회들에 대해서도 서로 간증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므로 대화회는 지금의 정기총회와는 사뭇 다른 성격을 띠고 있었다. 대화회에 참석하는 교인들은 모두 큰 은혜를 받았다. 더구나 대화회 기간에는 사경회도 함께 실시함으로 인해 모든 참석자들이 교회에서 숙식을 같이하며 며칠 동안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은혜에 빠지는 시간이었다.


회원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임으로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서로 아름다운 친목의 시간도 됐으며, 개회 예배시 성만찬 예배를 드릴 때는 거룩하고 엄숙하며 감사함으로 눈물을 흘리는 성도들이 많았다.
임원선거를 통해 새로운 임원들을 선출했는데 정말 모든 참가자들이 기도하는 심정으로 임원을 선출했다. 이때는 임원이 되는 것은 일제의 표적이 되기 때문에 목숨을 내놓아야만 감당할 수 있는 직책이었으므로 임원에 선출된 직분자들은 숙연한 자세로 받아들였다.


이덕여 목사의 인품
매년 한차례씩 개최되는 대화회(총회)에는 전도인 이상이면 모두 참석하는 교단의 큰 행사였는데 이덕여 감노는 대화회 때면 회중에게 인상을 깊게 남기는 분이었다. 대화회가 열릴 때는 이덕여 감노의 인품이 잘 드러나곤 했다. 덩치가 큰 이덕여 감노는 모든 사람에게 잘 알려져 있었다. 유난스럽게 큰 체구에서 풍겨 나오는 순수함이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줬다. 더구나 회의 도중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꼭 발언을 했는데 건설적이며 정의감이 투철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신뢰하게 됐다.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발언하였음으로 어려운 논제가 무난히 해결되곤 했다. 교단 내에서 이 감노의 주장에 동의했고, 그의 인격적이며 지적인 분위기를 사랑했다.


일제의 탄압과 교단 해체령과 이덕여 감노
이덕여 감노는 ‘생위사고(生慰死苦)’를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나 지켜 그의 굳센 신앙의 지조를 지키시다가 32인이 옥고를 치를 때에도 피하지 않고 고난을 당했다. 그는 32명의 교단 지도자들과 함께 원산헌병대 유치장에 구금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1942년 6월 10일 이종근 감목을 구속하는 것으로 부터 시작되어 6월 11일 전치규 안사, 김영관 목사를 구속했다. 일제에 의한 원산 침례교단에 대한 탄압은 해방되기 직전에 행해졌던 중대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침례교단의 모든 교회들에게 해체령이 내려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수가 없었다. 모든 교회는 문이 굳게 닫혔고, 교인들은 뿔뿔이 흩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 가운데도 아주 몇몇은 마을의 어느 집에서 몰래 모여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1942년 9월 4일에 충남 강경에서 사역하던 김용해 목사(전북 익산)가 원산 구치소에 제일 먼저 구속되고, 9월 5일에는 노재천 목사(경북 상주), 9월 6일에는 박기양 목사(경북 점촌), 신성균 목사(경북 점촌), 이덕상 교사(경북 점촌), 김주언 감노(경북 점촌), 이덕여 감노(충남 예산), 9월 7일에는 이상필 감노(전북 용안), 장석천 목사(충남 임천), 김만근 감노(충남 임천), 9월 8일에는 백남조 목사(경북 광천), 정효준 감노(경북 영양), 박병식 감노(경북 조사리), 박두하 감노(경북 영양), 9월 10일에는 김해용 감노(경북 울도), 문규석 목사(경북 울진), 전병무 감노(경북 울진), 문재무 감노(경북 울진), 안영태 감노(강원 구산), 남규백 감노(경북 울진), 9월 11일에는 방사현 목사(평북 자성), 한기훈 감노(함북 경흥), 위춘혁 교사(평북 자성), 박성은 감노(함북 경흥), 박성도 목사(함북 경흥), 한병학 감노(함북 나진), 박성홍 감노(함북 경흥), 김재형 목사(한남 원산), 강주수 선생(한남 원산) 등 모두 32명의 교단 지도자들이 원산헌병대 유치장에 수감됐다.


이 감노 역시 교단의 교역자 32명의 임원들이 검거될 때에 함께 유치장으로 끌려갔다. 이틀 후인 9월 6일 원산 형무소에 구속되던 날 구속 3일째로 박기양 목사, 신성균 목사, 이덕상 교사, 김주언 감노에 이어 이 감노도 감옥에 갇히게 됐다. 매일 심문이 계속됐고, 괴로운 고통의 시간은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었다. 죽음의 문턱에 이르는 일이 매일 반복되었고, 춥고 캄캄한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세상 삶에 대한 소망은 끊어지고 오직 주님을 향한 믿음의 문만이 하얗게 영혼을 비추고 있었다. 고문은 견딜 수 있었으며, 죽음을 각오하고 신앙을 지키기로 매일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이 감노는 유달리 큰 체구였기에 콩깻묵에 멀건 된장 국물에 죽같이 멀건 음식을 조금씩 주는 것을 먹고 견디기 어려웠다. 마침 친형제들이 감옥 근처에 숙박을 하면서 별식을 넣어 주어 고단한 옥에서의 생활이었지만 지탱할 수가 있었다고 후에 간증했다. 1943년 5월 1일에 함흥형무소로 이감됐고, 14일 만에 석방이 됐다.
1944년 해방을 1년 앞두고 함흥재판소 법정에서는 본 교단에 대해 해체령을 선고함으로 동아기독교라는 교단이 폐쇄됐다. 이에 따라 각 지방의 교회들은 일경들에 의해 집회 금지를 당하고, 교회 재산은 강제로 빼앗겼다. 교회 입구는 큰 널빤지로 가로질러 못이 박혔다. 출입구를 봉쇄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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