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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혼에 대한 기독교적 성찰-3

김종걸 교수
침신대 신학과(종교철학)

2) 신약의 성 이해
신약에 나타난 성 윤리의 가장 뚜렷한 점은 결혼이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속하며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수는 성 문제에 관해서 직접 언급한 일은 없지만 이혼 문제와 관련해서 이 점을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예수가 가나 잔치에서 포도주 기적을 베푸셨다는 이야기는 그가 결혼을 축하할만한 경사로 보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가 보여 주신 성 윤리는 순결이다. 그는 간음한 여인의 죄를 용서하셨고(요8:1~11), 성이 선하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마19:12). 그러나 여성에게 음욕을 품으면 이미 마음에 간음한 것(마5:28)이라고 한 해석은 어디까지나 성적 순결성을 지켜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사도 바울은 성을 육체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전인격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생각했다(고전6:9~10). 또한 성을 창조 본래의 선한 것으로 파악하면서도 외설행위 등에 대해 죄악시하고 경고했다.(롬1:24, 고후12:21, 갈5:19, 골3:5).


한편 결혼하는 것은 죄가 아니며 가능한 한 결혼하지 않고 천국 사업을 완성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고전7:24~6). 그러나 바울은 절제할 수 없는 자를 위하여 결혼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부언을 잊지 않았다(고전7:9). 신약성서에 나타난 성윤리의 규범들은 종교적이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와 믿는 자들의 공동체의 관점에서 성을 이해했으며, 바울은 독신과 종말론적 의식을 지닌 신자의 삶을 강조했다.


3) 성경이 말하는 결혼
급격한 사회 발전과 변화로 인해 오늘날 많은 사람은 자기중심적인 태도로 결혼을 생각한다. 그 결과 결혼에 대한 전통적 개념은 무너져 가고, 결혼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는 점점 그 구속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 결혼은 모든 사회가 인정하는 제도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고안물이 아닌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성경은 분명히 하고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지으셨으며 서로 구별되는 몸을 주셨다. 성경은 몸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몸은 주를 위하여 계신다고 말한다: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고전6:13).


현대인들은 육신이 가장 즐거운 방향으로 선택하고 추구하며 산다. 육신의 욕구를 마음대로 채우라는 외침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육신을 지으신 창조주로서 무엇이 가장 큰 기쁨을 주는지 정확히 알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육신의 욕구, 즐거움이 우선이 아니고 하나님이 제정하신 원리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동성 간의 결혼이 아닌 이성 간의 결혼만이 하나님에 의해 제도화된 것으로서 한 남자와 한 여자 간에 평생 유지되는 신비한 연합이며 배타적인 언약이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결혼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결혼은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하나님이 최초로 결혼을 계획하셨다. 복음주의 운동의 거장인 존 스토트(John Stott)는 결혼은 사회에서 인간의 제도로 인식되지만 그것은 인간이 창안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이디어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아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판단하셨고, 하나님이 최초의 신부 하와를 신랑에게 이끌어 오셨다. 결혼의 우선적 목적은 남녀 상호 간의 동반자 관계다. 하나님께서 여자를 남자의 갈비뼈로 지으신 것은 육체적 연합과 여자가 옆에서 동료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들이 모두 ‘좋았고’ 유일하게 ‘좋지 못한 것’이 사람의 독처하는 것(창2:18)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돕는 배필’을 만들어 주셨다. 이 표현은 사람은 서로에게 배필이 되어 상호 도움을 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는 함께 살면서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지원과 동지애와 우정을 서로에게 베푸는 반려자다. 결혼의 다른 목적은 건설적인 성의 실현이다. 하나님은 결혼을 육체적으로 ‘한 몸’을 이루는 연합으로 제정하셨다. 여기에는 아무런 부끄러움이 없다. 성경은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창2:25)고 말한다.


비록 결혼 언약이 정서적·정신적·영적 하나 됨을 포함하지만, 결혼은 남성과 여성이 함께하여 둘만의 성적 결합을 형성하는 행위를 수반한다. 성교는 성적 존재인 두 사람이 한 육체로 연합하는 행위와 관련된다. 비록 성이 신성한 것이기는 하나, 타락한 인간이 성욕을 절제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므로(고전7:9),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와 여자는 결혼하는 것이 좋다(고전7:2). 결혼은 인간의 성 충동을 실행할 수 있는 적합한 상황을 제공해 준다.


결혼의 또 다른 목적으로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것이 출산과 자녀양육이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창1:28)는 명령은 결혼을 전제한 것이다. ‘생육하라’란 명령은 기본적으로 ‘열매를 맺으라’란 뜻이다. 이 명령은 남녀에게 주어진 것으로서 이 명령이 성립하려면 남녀 간의 결합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성경은 자녀 출산을 하나님의 선물과 복으로 강조하며(시127:3~5), 하나님의 방법과 교훈으로 자녀를 훈육할 것을 가르친다(엡6:4). 따라서 결혼은 하나님을 통해 이뤄지는 일이다.


둘째, 결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다. 이는 에베소서에서 분명하게 표현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5:31~32). 그리스도는 스스로를 신부인 하나님의 참된 백성을 맞으러 오는 신랑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기 피로 교회(하나님의 백성)를 사시고 교회와 새 언약을 맺으신 것이다.
다시 말해 남녀의 결혼은 애초부터 이런 피로 사신 언약관계를 반영하고 드러내기 위해 계획됐다는 것이다.


셋째, 결혼은 네 가지 근본적인 원칙에 기초를 둔다. 1)한 남자와 한 여자를 결혼관계에서 제한하는 일부일처제의 원칙에 기초한다. 일부일처제는 창조론에 기초하고 있으며 인간의 성적인 사랑은 본질적으로 일원론적이다. 2)신약성경 속에서 결혼은 항구적인 기초 위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를 함께 결합시키는 것으로서 인식되고 있다. 그것은 죽음만이 갈라놓을 수 있는 전 생애적인 위임인 것이다. 3)결혼의 기초는 신실성이다. 신실성이 있을 때에 결혼이 성취될 수 있다. 4)결혼은 아가페 사랑을 기반으로 한다. 일반적인 에로스 사랑이 아닌 아가페 사랑은 호감 또는 감정적 충동 그 이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관심과 신뢰, 협동, 정의 그리고 용서의 태도로 표현되는 사랑이다.


성경은 결혼을 하나님의 창조질서 속에 놓인 것으로서 인간을 위해 제정한 제도로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결혼을 허락하셨다. 이 결혼은 남자와 여자 간에 성립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결혼을 통해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라는 문화적인 복을 주셨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의 명령과 율법을 거스리는 동성혼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창2:24; 레18:22).


우리는 결혼을 재정의하려는 움직임에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결혼의 붕괴는 미래의 붕괴를 의미한다. 결혼제도를 손대고 모성애와 부성애의 중요성을 경시하면 엄청난 사회적 결과가 초래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양성의 폐지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멸시하고 위협하는 포스트모던 인본주의의 다른 광경이라 볼 수 있다. 동성애, 트랜스젠더, 혼합성애, 양성애 등은 이성애의 변태적인 양상으로 비정상이다. 이는 타락의 결과로 비자연적이고 창조질서에 어긋난다.


4. 동성혼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한국교회의 과제
이제는 한국사회에서도 피할 수 없는 동성혼에 대해 한국교회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남녀가 차별 없는 교육의 기회, 취업의 기회, 의사표현의 기회, 가사와 양육의 분담을 하자는 양성평등의 개념은 우리 모두가 공감하고 발전시켜야 할 개념이다. 하지만 생물학적 성을 해체하고 가정을 해체하는 급진적인 성평등의 개념은 양성평등과 분명히 구분해서 사용해야 할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성경은 이 선포로 기독교신앙의 문을 열고 있다. 이 선포가 흔들리면 기독교 자체가 흔들린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 안에서만 그 목적과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안에는 창조주가 정하신 일정한 법칙과 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그리스도인들조차 성경적 진리관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이분법을 받아들이는 진리의 이층개념을 극복해야 한다. 이분법은 복음의 능력이 문화 전반에 영향을 주는 것을 방해하는 최대 걸림돌이다. 이와 같은 걸림돌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기독교 세계관을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사회의 뜨거운 감자가 된 동성혼 문제는 이제 방관하거나 정죄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동성혼에 대한 한국교회의 과제는 무엇일까? 혼란한 이 시대에 가장 설득력 있는 한국교회의 모습은 무엇일까? 이미 헌법도 여론도 문화도 동성혼을 받아들이려는 이 시점에 연구자는 동성혼 문제 해소를 위한 한국교회의 과제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