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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의 침례

침례교 역사-2

김용국 교수
침신대 신학과(교회사)

 

침례교회가 다른 교단과 구분되어 독자적인 교단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침례교회만이 믿고 있는 독특한 신앙교리 때문이다. 기독교회가 같은 성경을 믿으면서 여러 교단으로 나누어지는 것은 성경 해석의 차이에 기인한다. 교리와 신학은 성경 해석의 기준이 되며, 따라서 교단의 나누어짐은 교리의 차이로 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 내에서 교리의 차이는 크고 본질적인 경우도 있고, 미세하고 비본질적인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개신교회는 로마가톨릭이나 정교회와는 상당히 다른 교리를 믿고 있으나, 개신교단들 간에는 교리적 차이가 크지 않은 편이다. 침례교회는 개신교회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한 하나님이요 유일한 구원자이며,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하나님임을 믿는다. 또한 성경의 권위, 유일한 중보자 예수님,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됨 등의 교리를 믿는다.

 

침례교회는 이처럼 개신교단의 일원으로서 다른 개신교회들과 공통적인 신앙교리를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침례교회는 다른 교단과 구별되는 독특한 신앙적 특성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특성은 침례교 정체성의 핵심이며, 침례교회로 하여금 독립된 교단으로 남아 있게 하는 이유가 된다. 그것은 성경중심주의와 신약성경적 교회관이다. 이번에는 신약성경적 교회관 중에서 신자의 침례 부분을 살펴보려 한다.

 

침례교회가 독자적인 교단이 된 이유는 신약성경적 교회관 때문이었다. 구약의 이스라엘 공동체를 교회의 원형으로 보았던 장로교회나, 영국국교회의 감독제를 교회 체제의 모델로 삼은 감리교회와 달리, 침례교회는 신약성경에서 교회의 모범을 찾아 야 한다고 믿었다. 침례교인들은 신약교회를 가장 순수하고 이상적인 교회로 보아, 교회의 구조와 체계, 직분을 신약교회의 모범을 따라 조직하려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침례교인들은 신약교회가 가지고 있던 여러 특성을 발견하고 복원하려 했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신자의 침례였다.

침례교 창설자들은 신약성경의 교회들은 신앙을 고백한 자에게 침례를 베풀었지, 부모의 신앙에 근거해 아이에게 세례를 베풀거나, 혹은 부모의 신앙과 관계없이 일괄적으로 아이들에게 세례를 주는 경우는 없었음을 발견했다. 이에 따라 그들은 유아세례를 폐지하고, 성경적 근거가 확실한 신자의 침례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침례교인들은 신약성서에 따르면, 죄 용서와 구원은 오직 회개와 믿음으로 받는 것이며, 침례는 죄 용서와 아무런 직접적인 관련이 없고 다만 구원 받았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의식이라고 했다. 그들은 유아세례는 원죄를 사한다는 로마가톨릭의 성례주의와 부모의 신앙이 유아세례의 근거라는 개혁주의 언약신학은 성경적 근거가 없음을 강조했다.

 

침례교회가 출현할 당시 유아세례는 국가교회체제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었다. 17세기 침례교가 출현할 당시 유아세례는 유럽에서 1000년 이상 시행되어 오고 있었고, 유아세례 반대자들은 이단이요 분파주의자라는 인식이 1000년 이상 공유되어 왔었다. 가톨릭교회는 유아세례는 원죄를 사하여 주기 때문에 유아세례를 부인하면 원죄를 부인할 뿐만 아니라, 성례를 통해 죄를 사할 수 있는 교회의 권세를 부인하는 이단사설이 된다고 하였다.

 

성공회, 루터교회, 개혁교회 등은 유아세례가 원죄를 사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나 그것을 하나님이 제정한 성례로 믿었다. 여러 교단들이 유아세례의 정당성을 주장한 이유는 국가교회체제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침례교회가 출현할 당시 유럽은 1,000년의 중세시대 동안 교구제도를 시행해 오고 있었다. 교구는 주교의 관할 구역으로, 국가 교회체제 하에서 종교와 행정의 기본 단위였다. 국가교회체제에서는 국민이 되려면 교인이 돼야 했다. 교인은 교구 단위로 관리됐는데, 교구 교인으로 등록하는 첫 절차가 유아세례 받는 것이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유아세례를 반대하면 종교적, 행정적 기본질서를 부인하는 것으로 인식됐다.

 

17세기 영국 침례교인들은 이단이요 반정부주의자라는 오해와 수많은 박해에도 불구하고, 유아세례를 반대하며 신자의 침례를 주장했다. 이렇듯 신자의 침례는 침례교회를 규정하는 핵심적인 가시적 표지였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까지 침례교 정체성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초창기 침례교인들은 얼마 동안 관수(물을 붓는)의 방식으로 침례를 행했으나, 1630년대 후반에 침수가 성서적인 침례 방식임을 발견하고, 그때부터 침수침례를 시행했다. 이와 같이 신자의 침례는 침례교 정체성을 이루는 핵심적 특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