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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선생과 매화”

장희국 목사의 복음 이야기-29


? 두향이 선생의 안두에 가져 놓았던 매화는 오늘도 안동의 도산서원에서 마치 두행처럼 은은한 향기를 풍기고 있습니다.

퇴계와 두향의 사랑보다 더욱 애달픈 사랑이 있으니 네가 너라는 사실 때문에 너를 얼마나 사랑했으면 그 사랑 때문에 사랑하는 아들을, 사랑하는 너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

미투 사건을 접하면서 청순한 사랑을 노래해 봅니다.

 

이황(李滉) 퇴계(退溪) 선생께서 매화를 노래한 시는 백수가 넘습니다. 매화를 유별나게 사랑 하는 이유는 관기(官妓) 두향(杜香) 때문입니다.

퇴계 선생이 단양군수로 부임한 것은 48세 때였습니다. 두 향의 나이는 매화향이 솔솔 풍기는 방년 18, 두 향은 퇴계 선생에게 첫눈에 반했습 니다. 그러나 선생의 근엄한 자태는 항상 풀 먹인 안동포처럼 고고했습니다.

 

부인과 아들을 잇달아 잃은 퇴계 선생은, 텅 빈 가슴에 한 떨기 설중매(雪中梅) 두 향을 만남은 하늘이 맺어준 인연인가?

두향은 시, 서예, 가야금 뿐만 아니라 그림도 높은 경지에 올라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별나게 매화를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외로움에 잠 못 이루고 뒤척이던 퇴계 선생은 그윽하고 맑은 향기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찾아보니 삼척안두(鞍 頭)에 매화분이 놓여 있었습니다.

 

이 마음을 알고 누가 갖다 놓은 것이라 여겼는데 다름 아닌 관기 두향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매화로 인연이 되어 곧바로 그날 밤 연분으로 이어 졌고,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조용히 타올랐습니다. 뜨거운 열정이었습니다.

사람의 사랑이란 환희의 가장 높은 절정에 치솟았다가 슬픔의 가장 깊은 심연으로 떨어져야만 하는 비극적인 것이 사랑이던가? 한순간 불꽃 처럼 확 타오르는 그 뜨거움에 어쩔 줄 몰라 쩔쩔매고, 짧은 순간에 전 생애를 걸고 싶은 간절하고 아름다운 것이 사랑이런가? 사랑은 영원한 치정인가? 학습되지 않고 통제되지 않은 막무가내가 사랑이런가?

 

사람이 사랑의 성취에 이르는 길은 아득하고 멉니다. 그래도 사랑에 취해 덧없고 가여운 이승의 강을 허우적거리며 걸어갑니다.

황홀한 순간은 길지 않았습니다. 퇴계 선생이 경상도 풍기군수로 발령이 나자, 두 사람의 깊은 사랑은 겨우 9개월 만에 끝이 났습니다. 짧은 만남 뒤에 찾아온 갑작스런 이별, 두향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었습니다.

마지막 밤, 이별을 앞두고 두 사람은 오랫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한참을 지나자 퇴계 선생이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내일 떠난다. 기약이 없어 슬플 뿐이다.”

이에 두향은 조용히 붓을 들었습니다.

소저는 임 향기에 취해 넋을 잃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즐겼습니다. 그리하여 짧은 이 밤이 원망스럽습니다. 정녕 가시렵니까? 가신다면 가셔야지요, 그런데 어쩌지요? 꽃이 지고 새가 우는 이 봄날은 어이하나요?

짧은 밤이 지나자 긴 이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매화에 물을 주어라!” 단양을 떠날 때 퇴계 선생의 짐 속에는 사랑하는 두향이 넣어준 매화 화분이 있었습니다. 퇴계 선생은 평생 그 매화를 가까이 두고 두향을 대하듯 애지중지했습니다. 퇴계 선생은 평생 매화를 두향이로 알고 지냈습니다. 나이가 들어 퇴계 선생의 모습이 초췌해지자, 아름다운 매화에게 자기의 늙은 모습을 보일 수 없다면서 화분을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 했습니다.

 

한편, 두향은 정인과 자주 갔던 남한 강가에 움막을 치고 선생과의 아련한 추억을 반추(反芻)하며 외롭게 살았습니다. 퇴계 선생은 두향을 향한 애타는 사랑과 한없는 그리움으로 살아가다가 69세로 세상을 떠날 때 가슴 뭉클한 유언을 남겼습니다.

 

前身應是明月 幾生修到梅花” “전생은 하늘에 뜬 밝은 달이었지요. 몇 생을 닦아야 땅의 향기로운 매화가 될까요?”

 

두향은 먼발치에서 퇴계 선생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습니다. 상여꾼이 곡을 멈추고, 하관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단양으로 돌아온 두향은, 다음날 남한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습니다.

 

한 사람이 죽어서야 두 사람이 만날 수 있으련가? 두향이 선생의 안두에 가져 놓았던 매화는 오늘도 안동의 도산서원에서 마치 두행처럼 은은한 향기를 풍기고 있습니다. 퇴계와 두향의 사랑보다 더욱 애달픈 사랑이 있으니 네가 너라는 사실 때문에 너를 얼마나 사랑했으면 그 사랑 때문에 사랑하는 아들을, 사랑하는 너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10:9~10).

 

장희국 목사 / 문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