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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그물망(삼상19:1~20:42)

이희우 목사의 사무엘서 여행-20

사람은 누구나 관계의 그물망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그물망은 날로 더 촘촘해지는데 든든하면 건강하게 살지만 끊어지면 치명적인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본문에는 든든한 관계의 그물망으로 ‘어왕다’(어차피 왕이될 다윗)의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엉킨 그물망

다윗은 단 한 번도 자기가 왕이 되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출마한 적도 없다. 졸지에 기름 부음을 받기는 했지만 뜻밖의 일이라 긴가민가했을 것이다. 그리고 골리앗을 물리쳤던 것도 영웅 되려고 한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 심부름 갔다가 열받아 나섰는데 얼떨결에 영웅이 된 것, 그런데 이 일로 인해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진다.

 

국민들은 영웅 대접하는데 사울 왕은 자기를 대적자로 여긴다.

사울 왕과의 그물망이 걷잡을 수 없이 엉킨다. 여인들이 부른 노래 때문에 큰일했다고, 잘했다고 칭찬하던 사울 왕이 돌변한다. 이성을 잃은 것 같다. 불같은 질투심으로 그날부터 아예 죽이려 한다. 벽에 박아 버리겠다고 창을 던진다(18:11).

 

18장 10절에 보니 ‘그 이튿날’이라 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서 목숨 걸고 싸워 이기고 돌아온 바로 다음 날, 어제 그렇게 좋아하던 왕이 두 번씩이나 창을 던져 죽이려 했다는 것이다. 그뿐인가? “블레셋 사람들의 포피 백 개를 베어 오라”(18:25)고 한다.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죽게 하려는 계략이다.

 

19장에서도 왕의 위협은 계속된다.

다윗이 수금 탈 때 또 창을 던졌다 (10). 그리고 밤에 군사를 보내 지키다가 아침에 죽이려 한다. 다행히 다윗은 야반도주(夜半逃走)한다. 돈 떼먹고 도망한 게 아니다. 왕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기름 부음 받은 후 초지일관 목표를 향해 달려왔지만 이제는 그마저 한때의 아련한 추억 같다.

 

그런데 이 정도 되면 “이럴 거면 왜선택하셨냐”며 원망하거나, 그 날이 속히 오게 해달라는 기도가 있을 법한데 성경 어디에도 그런 내용은 없다.

 

또 다윗은 자신이 기름 부음 받았다는 사실을 은근히 내색할 만도 한데 단 한 번도 그러지 않는다.

19장과 20장에도 위협당하는 장면들만 이어진다. 어찌보면 다윗은 주어진 상황에 끌려다니는 듯하다. 야반도주 때도 수동적, 모든 작전을 미갈이 짰다. 또 왕궁을 빠져나와 어떤 큰 세력을 규합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는다.

 

그저 어쩔 수 없어 왕궁을 떠났고, 쫓기면서 자기도 모르게 사울 왕과의 그물망이 엉키고 말았다. 아이러니한 것은 사울이 괴롭게 하고 죽이려고 하면 할수록 다윗은 점점 더 거인으로 성장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게 고난이 주는 유익 아닐까? 그래서 일방적으로 당했다기보다 오히려 고난으로 연단받고 정금 같이 일어난다.

 

다윗은 지금 왕이 되어가고 있다.

하나님의 세우심, 하나님이 그렇게 이끌어 가신다. 은혜다. 그래서일까? 힘들면서도 차라리 목동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 한 마디 안한다. 다윗은 엉킨 그물망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든든한 관계의 그물망

이때 다윗을 돕겠다고 나선 사람이 있다. 요나단이다(2). 곤궁할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고 다윗과 요나단 사이에 든든한 그물망이 쳐진다. 혼자였다면 견디기 힘들었을 상황, 다윗의 위험을 자신의 위험처럼 걱정하는 친구가 생겼다. 이게 하나님의 돕는 방식이다.

 

다윗이 왕궁에 복귀했던 것도 요나단 덕분이었다. 사울이 요나단의 말을 듣고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한다(6). 물론 오래가지 못했다. 악령 들린 사울은 수금 타던 다윗을 향해 단창을 던졌고 다윗은 피하고 그 곳에서 달아났다.

 

사울은 달아난 다윗을 죽이려고 부하들을 보냈다. 이번에는 사울의 딸이자 다윗의 부인인 미갈이 돕는다. 미갈도 적극적, 밤에 다윗을 창에서 달아 내린다(11~12). 힘도 셌던 모양, 다윗을 자기 힘으로 달아 내렸다. 이어지는 장면은 좀 코믹하다. 미갈은 사울의 부하들을 속이기 위해 집안에 있는 우상을 침대에 누이고 염소털과 옷으로 위장하여 마치 다윗이 자고 있는 것처럼 꾸몄다. 다윗의 집에 우상이 있었다는 게 웃기지 않나? 또 그 우상이 한낱 인간의 위장용 소품으로 사용된 것도 마치 우상에 대한 조롱 같다.

 

사울은 병들어 누워 있다는 다윗을 침상째 들고 오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궁전에서 침상을 들췄는데 다윗은 없다. 드라마에서나 볼만한 코믹한 장면이다. 한술 더 떠 미갈은 다윗이 자기를 죽이겠다고 협박해 어쩔 수 없이 그랬다고 거짓말한다. 다윗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해학적 요소와 거짓말까지 총동원된 것이다. 이때의 심정이 드러난 것이 시편 59편이다.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16). 이젠 아내도 곁에 없다.

하나님만 나의 보호자, 의지의 대상이라 고백한 것이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보호해주신다. 다윗이 야반도주해 간 곳이 사무엘이 있는 라마 나욧, 라마는 사무엘의 고향이고, 라마 나욧은 아마 사무엘이 세운 선지 학교가 있는 곳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것도 누가 신고 해서 사울이 또 부하들을 보낸다. 문제는 부하들이 다윗을 잡아오지 않고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예언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희한한 일, 세 번 냈는데 다 똑같다. 분을 이기지 못한 사울 왕이 참다못해 직접 라마 나욧으로 가지만 사울 왕도 가는 길에 하나님의 영이 임한다. 왕이 걸어가며 예언을 하고,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하루 밤낮을 벗은 몸으로 누웠다(19:23~24).

 

속수무책, 완전 무력화됐다. 옷을 벗고 예언하고 벗은 몸으로 누웠다고 했다. 하나님의 영이 권력의 옷을 다 벗긴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세상 권력을 비웃는 방식이다. 다윗은 든든한 그물망 덕분에 지금 왕이 되어 가는 은혜를 누리고 있다.

 

망명길에 맺어지는 그물망

20장은 다윗이 사울 왕궁을 떠나는 마지막 장면, 다윗은 라마나욧에서 또도망하여 요나단을 찾는다. “사울이 나를 죽이려 한다”며 “나와 죽음의 사이는 한 걸음 뿐”(20:3), 절체절명의 위기라고 한다. 요나단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그래서 다윗과 죽이려는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을 하기로 한다. 초하루 월삭 잔치에 왕의 측근들이 모두 참석하는데 사울이 다윗을 찾거든 베들레헴에 있는 가족 제사에 간다기에 보냈다고 하기로 한다. 예상대로 사울 왕이 다윗을 찾았고 요나단은 다윗이 말한 대로 대답한다.

 

그런데 사울이 불같이 화를 내고 요나단에게 욕을 한다. “그 놈이 살아 있는 한 사울 왕조가 지속될 수 없다”며 “반드시 죽이겠다”고 한다. 그리고 요나단이 그건 아닌 것 같다고 하니 단창을 던져 요나단까지 죽이려 한다.

 

미쳤다. 요나단은 두 사람의 화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 식음을 전폐하며 다윗을 위해 슬퍼한다.

그러면서 이 끝없는 싸움의 승자는 다윗이 될 것으로 예감하며 하나님이 사울 왕을 쳐달라고 한다(20:16). 아무리 봐도 정당성이 없고, 아무 잘못도 일체 대적 행동도 하지 않은 다윗을 아버지가 한낱 질투심 때문에 죽이려고 하기 때문이다.

 

상황을 확인한 요나단은 다윗에게 피하라고 알린다. 그런데 들에 숨어 있다가 달아나야 할 다윗이 마지막임을 직감했던지 달아나지 않는다. 두 사람은 뜨겁게 포옹하고 그저 운다 (20:41). 그리고 서로의 집안을 지켜주 기로 맹세한 후 작별하는데(42절) 이게 마지막이다.

 

다윗은 정처없는 망명길에 오른다.

사무엘하로 넘어가 예루살렘에서 나라의 기초를 다지기까지 그의 망명 생활이 계속된다. 그 사이에 자신을 지탱해 주던 관계의 끈들이 하나씩 끊어진다. 삶이 다 무너지는 것 같지 않았을까? 그때의 심정이 잘 드러난 것이 시편 140편, 다윗은 “악인, 포악한 자에게서 건져달라”고 기도한다(1).

 

극한 감정을 참을 수 없다. 얼마나 분이 났는지 “뜨거운 숯불이 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한다(10). 물론 분노는 곧가라앉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생각을 가슴에 담는다. 마지막 기도는 “정직한 자가 주의 앞에서 산다”고 한다(13). 비록 지금 오해받고 인정받지 못하지만, 정직한 자신을 하나님 께서 인정해 주실 것이라는 고백이다.

 

주님의 신임을 받는 자가 주님 앞에 나아간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다윗은 왕궁에서나 바깥에서나 늘 혼자가 아니었다. 언제나 보호해주고 함께 해주는 사람들과의 그물망 속에서 지냈다. 그 그물망이 권력이고 다윗이 왕이 된 비결이다.

 

쫓기는 인생, 억울하고 불쌍한 인생 같아도 다윗은 지금 왕이 되고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관계의 그물망만 든든하다면 우린 결코 외롭지 않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참으로 도와 주리라” 하나님과 연결된 그물망이 가장 든든한 그물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