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서울교회 유치원화재 20주년을 맞아 7명의 화상원아 중에 홀로 남자였던 박호용군을 데리고 기독교 TV CTS의 ‘내가 매일 기쁘게’프로에 대담했을 때 진행자 정애리 자매는 자주 눈물을 닦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지난주 박효용군의 예사랑교회에서 간증한 내용을 요약해 본다.
“저는 여섯 살 때 그러니까 지금부터 24년 전 서울교회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유치원화재로 병원에 입원하였고 너무 아팠던 기억이 제일 많이 남았습니다. 한 목사님의 활동으로 미국 화상병원에 치료받는 일로 비행기를 탔던 것 ...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엔 놀림거리와 소외 그리고 사춘기 시절엔 깊은 좌절에 빠졌습니다.
교회 다니시는 분들이 하나님께서 얼마나 큰일을 시키려고 저런 아픈 시련을 주셨나? 라고 하는 얘기를 들었을 때 저는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나서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뜻이 천지차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개미가 있고 건물이 있다면 개미는 건물의 생각을 알 수가 없지요.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그렇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왜’(WHY)라는 의문은 과거로 잊어버리고 오늘과 내일의 소망으로 한양대 공대 전자공학과를 마치고 네이버에서 4년을 근무 후 지금은 다음(포털사이트)에서 프로그래머로 직장생활을 잘하고 있습니다.
한 목사님은 해마다 우리 화상원아 가족들을 초청해 대접해 주셨고, 언젠가 신앙생활을 권유하여 지금까지 교회에 나가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불속에서 구원해 주셨고 앞으로 더욱 깊은 신앙으로 밝은 내일을 바라보며 승리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이런 좋은 시간을 주신 주님과 목사님께 감사합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김민숙 양이 2005년 6월 4일 서울교회에서 간증한 내용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민숙입니다. 저를 여기에 오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께서 어떻게 저의 인생에 일하셨는지를 얘기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1989년 다섯 살 때 제 동생과 같이 여기 있는 유치원에 다녔습니다. 저희 친할아버지는 목사님이셨습니다. 또 저의 가족은 교회에 다녔습니다.
첫 번째 유치원은 불교를 믿는 곳이었습니다. 부모님은 알지 못하셨습니다. 한날 저녁 먹기 전에 저하고 제 동생이 부처한데 기도했습니다. 깜짝 놀란 부모님은 서둘러 우리를 다른 유치원으로 보냈습니다. 저희는 9월에 서울침례교회 유치원으로 왔습니다. 10월의 어느 바람 부는 날, 저와 제 동생은 유치원에 가기 싫었습니다. 그렇지만 부모님이 유치원에 가면 재밌고 또 친구들도 만날 거라고 해서 유치원에 갔습니다.
제 동생은 1층에 있었고, 저는 2층에 있었습니다. 그날 저의 유치원 담임선생님은 아파서 못 오셨습니다. 그래서 다른 젊은 선생님이 저의 반에 계셨습니다. 동생 반은 나가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저의 반은 안에서 먹었습니다. 밥을 먹고 있는데, 어떤 오빠가 저의 반에 와서 선생님에게 유치원에 불이 났다고 얘기했습니다. 무서워서 선생님은 문과 창문을 다 닫았습니다.
그리고 저의 반 아이들에게 다 앉아 있으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한테 가만히 있으면, 선생님이 도우러 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창문으로 뛰어 도망갔습니다. 다른 반 아이들은 다 위험을 피해 다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의 반은 13명중 7명만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저는 다른 애보다 더 화상을 입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저는 3일 동안 기절해 있었습니다. 한국 의사님들은 저의 부모님께 제가 죽는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3일째 되는 날에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기억은 안 나지만, 깨어나자마자 엄마에게 ‘하나님이 엄마, 아빠 더 기도와 찬양을 하시라고 얘기하라’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부터 많은 치료를 받았습니다. 한국 의사님들은 화상치료를 잘 몰라, 오히려 저에게는 더 피해가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다친 애들을 모두 미국에 있는 좋은 병원에 보내 주었습니다. 그 병원은 화상전문 병원이었습니다. 이름은 미국 텍사스 주 갤베스톤에 있는 슐라이너스 화상병원(Shriner`a Burns Hospital, Galveston, Texas)입니다. 거기에 계신 미국 의사님들은 저를 보시더니 많이 화를 내셨습니다. 한국 의사님들이 해준 치료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다시 다 치료를 했습니다. 엄마와 저만 미국에 몇 개월 있다가 먼저 한국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1학년을 6개월간 다녔습니다.
그때에 저의 부모님과 목사님이신 친할아버지께서는 교회에서 보상비도 받지 말자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고 또 불이 난 건 교회 탓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의 부모님은 한명국 목사님께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습니다.
한 목사님께서 미국에 있는 슐라이너스 병원을 소개해 주셨고 또 이민할 수 있도록 재민 한인 목사님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의 가족은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미국에 가서 화상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저를 위해 미국에 가셨고, 또 저의 동생도 함께 따라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믿고 미국으로 갔습니다.
미국 땅에 와서 아빠는 술, 담배를 끊으셨고 또 우리가족은 매주 토요일 가족예배를 했습니다. 병원이 있는 갤베스톤(Galveston)에 1년 정도 있다가 우리는 휴스턴(Houston)으로 갔습니다. 왜냐하면 부모님들이 일을 하고 싶으셨기 때문에 이사한 것이었습니다. 많은 고생을 하면서 저의가족은 미국 사회에 어렵게 적응하면서 살았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매일 아침 예배하고 기도하십니다. 꼭 아침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집에서나 학교, 교회 또 일터에서 저의 가족은 그리스도를 위해 삽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파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우수학생으로 표창도 받고 공부를 다 마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저는 와코에 있는 베일러 대학교(Waco, Baylor University)를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가을에는 워싱턴에 있는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University)대학원에 장학생으로 들어갑니다. 대학원에서 전공할 분야는 우리말로 재활상담(Rehabilitation Counseling)입니다. 졸업하고 미국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공무원이 되어서 저와 같은 사람들을 도와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여러분 하나님만 의지하세요.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대한민국이란 이름을 드높여서 한국에서 이민 오시는 분들이 미국에서 잘 살 수 있도록, 또 제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할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1: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