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우리 교회 성도들이 단체로 영화관에 몰려가 너무나 재밌게 보았던 ‘에반 올마이티’(Evan Almighty/2007년作). 그래서인지 6년이 지난 지금도 그 영화의 명대사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하나님께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면 용기를 주실까? 용기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실까? 사랑을 달라고 기도하면 사랑을 주실까?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실까? 세상을 바꾸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 세상을 바꾸게 해주실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주실까?”
영화 속 그 대사는 실로 충격이었다. 그것은 내게 더 좋은 기도, 더 좋은 응답에 대한 새로운 지평도 열어줬다. 역시 하나님의 응답은 우리의 기도보다 멋졌다.
그렇다면 난 이제 어떤 기도를 드려야할까? 무엇이 내겐 더 좋은 기도일까? 어떤 기도가 하나님의 더 좋은 응답을 부를까? 그래서 정리해봤다.
난 이제 더 높아지기보다 더 낮아지기를 기도해야겠다. 하나님의 은혜는 늘 아래로만 흐르니까. 내 생각이 더 복잡해지기보다 더 단순해지기를 기도해야겠다. 그래야 내 믿음이 더 깊어질 테니까.
난 더 부유해지기보다 더 가난해지도록 기도해야겠다. 그래야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감사하게 될 테니까. 나의 자랑거리를 찾기보다 부족한 것을 더 발견해야겠다. 그래야 더 배울 수 있으니까.
난 기쁨보다 슬픔을 더 사랑해야겠다. 그래야 내가 더 단단해질 테니까. 나를 사랑하는 사람보다 미워하는 이를 위해서도 더 기도해야겠다. 그게 주님을 닮는 길이니까.
난 지름길보다 돌아가는 길을 찾아야겠다. 그래야 하나님을 매순간 필요로 할 테니까. 푸른 초장보다 차라리 마른 광야를 더 걸어야겠다. 그래야 ‘미드바르’, 하나님의 음성을 더 또렷하게 들을 수 있을 테니까. 난 매력적인 사람보다 못난이가 되기를 기도해야겠다. 그래야 나의 시선이 사람을 향하지 않고 하나님만 향할 테니까. 가진 멋보다 풍기는 멋이 더 진해지기를 기도해야겠다. 그 멋이 훨씬 더 멀리 갈 테니까.
난 나에 대해 희망을 갖기보다 더 깊이 절망해야겠다. 그래야 그리스도가 내 삶의 주인될 테니까.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잘 말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해야겠다. 난 지식을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혜를 전하는 사람이니까.
난 낮보다 밤에 기도해야겠다. 그래야 주님께 더 집중할 테니까. 더 오래 살려하기보다 날마다 죽기를 기도해야겠다. 그래야 내 안에 예수가 살 테니까.
난 채움보다 여백이 있기를 기도해야겠다. 그래야 더 수용적인 사람이 될 테니까. ‘Best One’보다 ‘Only One’이 되기를 기도해야겠다. 난 세상에 딱 하나뿐인 존재니까.
난 디지털보다 아날로그의 美를 더 사랑해야겠다. 결과를 단번에 보는 편리함보다 과정을 통한 성취감을 더 경험하고 싶으니까. 내일 되어질 일을 미리 보여 달라고 기도하기보다 오늘 해야 할 일부터 바로 가르쳐달라고 기도해야겠다. 내일은 오늘의 결과일 뿐이니까.
난 내가 원하는 것(want)보다 내게 필요한 것(need)을 기도해야겠다. 그래야 더 좋은 것을 받게 될 테니까. 무엇보다 난 내가 정말 무엇을 기도해할지를 놓고 기도해야겠다. 여전히 난 최선을 모르는 무지함이 있으니까.
여러분도 이렇게 기도를 결심해보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생각이 더없이 평안해진다. 더 좋은 이 기도가 더 좋은 응답을 가져올 줄로 믿는다.
김종훈 목사 / 오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