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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탈진에 대하여-2

변상규 교수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상담심리학)

한국의 목회자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설교와 가장 많은 예배 인도, 가장 많은 업무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필자가 학창 시절 부흥회를 다닐 적에 한 목사님이 그렇게 말한 것을 기억한다. “나는 제단에서 기도하다 죽는 게 소원입니다.”


그리고 그 분이 제일 사랑한 말씀은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였다. 그런데 그렇게 살다 죽은 목회자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 문제는 가정이다. 가정이 없었다면 영광스러운 순교일 수도 있겠으나 그렇게 아직도 한참 일할 나이에 과로로 죽게 되면 아내와 아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무리 하나님의 사람이라지만 육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사람은 자동차와 같다. 장거리를 뛴 자동차는 한 번 점검을 받을 필요가 있다. 점검은 고사하고 계속 매일 장거리를 뛰다 보면 갑자기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운전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고장이나 사고로 큰 위험을 당하게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물론 과거 목회자들에 비해 요즘 목회자들은 건강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건강을 위해 건강보조식품 복용이나 등산 및 운동을 정기적으로 하는 것으로 안다. 그러니 사실 누구도 탈진을 원해서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다 보면” “하다 보니까” 탈진에 빠진 삶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누구도 예외가 없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안식년이지만, 교회 규모가 크지 않은 경우 마음 놓고 안식년을 다녀올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른 목회자들에게 한두 번도 아니고 50주 넘게 예배를 맡기는 일 역시 담임목회자로서 결코 편안하지 않은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안식년이 아니라 안식월을 만들어 쉬는 목회자들을 봤다. 좋은 아이디어이다. 그렇게라도 교회에서 배려해주시고 계획을 잡을 수 있다면 좋은 제도라 생각한다. 문제는 쉬어 본 적이 없는 목회자들은 쉬는 시간이 주어져도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나를 비롯해 많은 목회자들의 마음 안에는 우리나라가 근대화돼가는 과정에서 학습 받아온 이데올로기적 가치, 즉 일만 해야 한다는, 일이 최고라는 가치를 어릴 때부터 갖고 살아왔기에 쉬는 것에 대한 편안하지 못한 마음과 흔히 말하듯 “놀면 뭐해!”라는 생각이 뿌리 깊이 박혀있다. 그런 목회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는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일지도 모르겠다. “일하러 가세 일하러 가!” 그리고 쉰다고 해도 어디에 가서 며칠 여행하는 게 전부인 목회자들이 많다. 그래서 푹 자고 싶어도 알람을 하지 않아도 몸 알람(?)이 작동해 새벽 4시만 되면 벌떡 일어나는 목회자들도 많을 것이다. 한마디로 중장년의 목회자들은 어떻게 주의 일을 해야 할까는 엄청나게 연구해오고 노력해왔지만 그 누구도 어떻게 하면 잘 쉴까를 생각해 본 적이 없이 살아왔다는 것이다. “목회자는 왜 탈진을 할 수 밖에 없을까?”라는 책을 저술한 존 A. 샌포드에 의하면 목회자는 10가지 이유로 인해 탈진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첫째로 코로나 시대의 목회를 들 수 있다.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비대면 예배라는 신조어가 이제는 대세가 된 듯하다. 목회 자체가 사람을 만나야 가능한 일인데 만날 수 없다. 환자 심방도 함부로 갈 수 없다. 거기다 예배 시 마스크 쓴 교인들의 얼굴을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어쩌다 이리 됐을까? 중대형교회는 고정적 예배 인원과 고정 헌금이라도 있어 유지가 가능하지만 소형 교회들은 기약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목회자가 소상공인도 아닐테니 보상금 기대조차 못한다. 한 마디로 악 소리 한번 못하고 가슴앓이 해야만 하는 어려운 목회자들이 한 둘이 아니다. 세기말적 현상 앞에 우리의 목회가 어쩔 수 없이 흔들리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 누구도 예상 못했던 목회자 탈진과 우울의 1순위는 코로나 시대의 목회다.


둘째로 목회자의 일은 끝이 없다. 계속 반복되는 예배 인도 및 설교, 병자 심방(코로나 이전), 결혼식과 장례식 집례, 위기상황을 다루는 일, 교인들 간의 갈등 중재, 절기 행사 및 수련회, 행정적 업무 처리 등 그야말로 편히 쉰다는 자체가 불가능한 직업이 목회자의 사역이다.


셋째로 목회자는 그의 일에 항상 어떤 결과가 있을 것인지 말할 수 없다. 목회자는 마치 콩나물을 키우는 사람과 같은 심정이다. 물은 붓는데 이것이 언제 자랄지 알 수 없다. 한 사람을 제대로 된 사역자로 세우는데도 무수히 많은 우여곡절 및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결과는 더 알 수 없다. 교인들 중에는 목회자의 마음에 드는 고마운 교인들도 있다. 목회자도 사람이기에 이런 사람들에게 더 마음을 열게 되는데 어느 날 먼 곳으로 이사를 간다고 할 때 목회자의 마음 안에는 소외감과 미묘한 배신감마저 느껴진다. 그래서 그런 말이 나온 걸까. 사람이란 사랑해줘야 할 대상일 뿐 믿어야 할 대상은 아니라는 말 말이다.


넷째로 목회자의 일은 반복적이다. 절기 설교는 대표적인 예이다. 아무리 설교를 잘하는 목회자라 해도 매번 돌아오는 절기에 매번 다른 설교나 다른 예화만을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새 신자가 들어오면 같은 내용을 무한 반복해야 한다. 목회자야말로 무한도전자들이다.

변상규 교수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