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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상황에도 하나님의 뜻을 이룬 ‘충만한교회’

“늦은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교회를 개척했지만 또 다른 부르심에 침례교회 최남단 서귀포에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이 불가능한 사역의 연속이었지만 오직 말씀을 붙들고 가면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합니다.”

 

 

제주도에 여러 침례교회 중에 가장 남쪽에 위치해 있는 충만한교회(정윤봉 목사. 구 서귀포침례교회)는 여느 침례교회와 비슷한 상황에서 말씀과 복음을 사모하며 한 길만을 걸어온 교회이다.


1991년부터 교회를 맡아 섬기고 있는 정윤봉 목사는 교회 건축과 성장이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계획하심 속에 충만한교회를 지키고 있다. 정윤봉 목사가 충만한교회로 오게 된 것은 하나님의 강권하심으로 이뤄졌다.


평신도로 신탄진침례교회를 섬겨왔던 정 목사는 1987년에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신학교에 입학해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됐다. 


신학교 졸업을 앞둔 정 전도사는 주님의 음성에 따라 대전에서 교회를 개척했다. 당시 교회를 정하지 못한 예비 목회자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었던 정 전도사에게 제주도 서귀포침례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박주현 목사가 찾아왔다. 그리고 박 목사를 통해 서귀포침례교회 청빙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대전에 이미 교회를 개척했고 이제 막 사역을 시작한 상황에서 서귀포교회 부임은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응답과 인도하심이 없이 낯선 제주로 내려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당시 여러 일들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주님의 음성을 간구했다”고 정 목사는 회고했다.

 


이는 사실상 제주로 내려가는 것을 염두해 두지 않았던 정윤봉 목사의 다짐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제주로 향하고 있었다. 자신의 모든 문제들이 일사천리로 해결되자 정 목사는 결국 서귀포침례교회의 부임을 결정하고 1991년 9월 낯선 땅 제주로 내려가게 됐다.


정윤봉 목사가 부임한 서귀포침례교회의 상황은 한 마디로 ‘아이고’였다. 교회와 사택은 일제 강점기 때에 요정 술집을 하던 건물이었는데 오래된 단층 슬라브 건물로서 천장도 없어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덥다 못해 답답했으며, 사택도 아궁이나 난방설비가 아예 없었다. 화장실도 구석에 재래식이었다. 여기에 교회 구성원도 최악이었다. 성도들은 하나되지 못하고 지역에 따라 서로 나눠져 깊은 감정의 골을 가지고 있었고 헌금을 많이 드리는 성도가 교회의 주인인양 모든 것을 주무르고 있었다. 이제 갓 부임한 정윤봉 목사는 이 모든 문제를 다 끌어안으며 목회에 임해야 했다.


정윤봉 목사는 ‘하나님 나라인 교회 공동체는 서로 화합하고 연합하며 하나가 돼야 했는데 당시 교회 성도들은 너무나 거리가 먼 양들이었다’며 ‘이들을 다시 말씀으로 세우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주님의 참 일꾼으로 세우는 일이 먼저였다.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우리교회의 총체적인 난국을 해결하는 과제였다’고 설명했다.

 


정윤봉 목사의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결국 적잖은 인원들이 이탈했다. 예배당 임대료 조차 낼 수 없는 열악한 상황이 벌어지면서 갖은 수모와 어려움을 겪었지만 정윤봉 목사의 특별한 섬김과 낮아짐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갔다. 약 1년여 동안의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교회가 차츰 안정을 찾기 시작할 때, 뜻하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바로 여의도교회의 작은교회 건축지원사업이었다.
‘88서울올림픽’ 준비위원장이었던 박세직 장로는 여의도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한기만 목사와 올림픽 성공개최를 위해 전국을 돌며 기도운동을 준비했는데 그 첫 번째 교회로 제주도 최남단에 있는 바로 서귀포침례교회에서 첫 기도회를 가졌다. 


정윤봉 목사는 “당시 우리교회가 여의도교회의 기도회를 유치할 수 있는 상황이나 수준, 여건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여의도교회 한기만 목사님이 내려오셔서 직접 우리 교회를 보시니 적잖은 충격을 받으셨고 교회 건축을 위한 지원을 생각하신 것으로 전해 들었다”면서 “하지만 우리교회는 교회 임대료도 제대로 납부하기 힘든 상황에서 교회를 지을 땅도 예비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지원받는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께서 이 교회가 장차 대지를 구입하고 교회건축도 하게 하실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기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심을 서귀포침례교회를 통해 이뤄내셨다. 서귀포시가 택지개발을 전개하게 됐고 당시 서귀포시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회 청년을 통해 1억 6천만원 상당의 200평 부지를 분양받을 수 있었다. 교회에 준비된 재정은 단돈 100만원. 여기에 제주온누리교회 한태희 목사가 나중에 형편이 되는대로 상환하라며 빌려준 1000만원을 보태 부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1994년 11월 24일 여의도교회와 국내선교회의 지원으로 교회 건축 기공예배를 드리고 1995년 8월 교회 건축을 완공했다. 허허벌판 택지 지구에 공공기관 다음으로 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30명도 안 되는 성도들이 가진 것도 내놓을 것도 없이 이같은 예배당을 세우고 지은 일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욱이 제주도에 침례교회를 세운다는 것 또한 어려운 현실이었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고 역사하심이었다.

 


교회를 건축하고 교회의 여러 사역을 전개할 때, 이단사이비단체가 서귀포침례교회라는 이름을 쓰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정윤봉 목사는 성도들과 함께 차라리 교회명을 바꾸는 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논의해 충만한교회로 이름을 바꾸고 30여년을 이 교회를 지키며 국내 최남단 침례교회의 사명을 다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교회도 타격을 입고 어려움을 겪었지만 정윤봉 목사는 인내와 수고를 묵상하며 성도들과 한마음으로 이 위기를 극복해 내고 있다. 매일 말씀 묵상과 나눔을 통해 성도들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고 대면예배의 소중함과 예배당의 귀함을 함께 나누고 있다.


정윤봉 목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과 맡은 사역들을 생각하며 성도들과 한 마음으로 교회를 지키고 초대교회의 공동체를 세워나가는 일에 역점을 두고 있다”며 “인원이 적다고 교회 건물이 낡고 오래됐다고 우리는 이것에 불평하지 않으며 불만을 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주심에 더 큰 감사와 감격이 예배 안에 이뤄지고 있음을 경험하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 목사는 무엇보다 충만한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함을 강조했다. 화려한 목회보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령의 일꾼으로 세워지는 것에 감사하며 기뻐하는 정윤봉 목사. 복음에 대한 강직함과 확고한 신념으로 오늘의 충만한교회를 세워나간 그의 인내와 소망은 서귀포에 자랑스러운 침례교회로 하나님께 칭찬받는 교회임이 분명하다.

제주=이송우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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