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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지옥이 아니라 천국에 가는 것이다

 

 

믿지 않아도 지옥에만 가지 않는다면 예수를 믿지 않겠다.”

 

필자는 이십대 중반인 초신자 때 같은 교회의 어느 집사님으로부터 이런 내용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차분한 성격에 몸가짐도 단정한 집사님이었으나 필자는 그 말에 공감이 되지 않았다. 믿는 게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리 말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예수를 믿는 것 자체가 아니라 믿음의 생활이 힘들어서 그런 말을 했을 것을 것이다. 성경에 따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려고 노력을 해도 잘 되지 않으니 괴로운 마음에 그리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건 바른 생각은 아니다. 예수께서는 우리 믿는 사람들을 향하여 두려워하지 마라라. 적은 무리여, 너희 아버지께서 그의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12:32)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집사님이 한 그런 고뇌가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 양약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지속적으로 오래 품고 있으면 독약이 된다. 우리 믿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죄를 죄 된 줄도 모르고 짓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믿음의 인격체로 변화되려는 노력 없이 타성에 젖어 살면서 신앙생활이라고 하고 있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잘못된 성격이나 습관을 고쳐 보고자 각고의 노력을 했는데도 무위로 돌아갔을 때에 하게 된 고뇌를 어찌 값없는 것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을 도약의 발판으로 한다면 양약 중에서도 양약이 될 것이다. 문제는 그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허우적거린다는 데에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성격이나 습관을 포함한 인격의 변화란 그리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각오와 결단을 새롭게 함으로 정렬을 불태우며 끊임없이 달려가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고뇌가 찾아오거든 되도록 빨리 떨쳐 버리고 앞을 보고 달리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인간이란 그리 쉽게 변화되는 존재가 아니다. 나쁜 방향으로의 변질은 한 순간에도 가능하지만, 아름다움으로의 변화는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여도 그 결과가 미미하기만 한 것이 보통이다. 그러므로 이를 인식하고 끊임없는 기도로 노력을 뒷받침해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와 같은 기도와 노력을 하는 것만으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변화된 것으로 인정해 주신다는 것이다. 그럴 리 없지만 설혹 기도하며 노력하는 것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방치한 것의 성과가 똑같이 도래미타불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고 전자를 높이 사신다는 말이다.

 

우리는 변화를 위하여 기도하며 노력하지만 결과는 하나님의 몫이다. 그렇다고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하라는 것은 아니다. 성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기도하는 가운데 방법상의 잘못을 찾아 고쳐 가며 달려가는 것이 중요하니 고뇌와 고통으로 자신을 너무 괴롭히지 말라는 말이다. 예수는 지옥에 가지 않으려 믿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를 소망하여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에는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고 가슴 설렘이 있다. 고뇌와 고통이 찾아온다면 그것을 잠깐으로 끝내지 않으면 안 된다. 세상에는 하늘나라에 가는 것을 무지하게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예수만 믿는다면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지옥에 가는 것보다 쉬운 일이다. 물론 믿는다는 것은 형식적으로 교회에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말하는 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여 그의 뜻에 따르려는 의지를 가지고 사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두 눈을 부릅뜨고 무엇인가의 조그마한 꼬투리라도 찾아 당신의 자녀들을 구원의 길로부터 탈락시키고자 하는 그런 분이 아니시다.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구원의 근거가 될 만한 것이 없나 하여 눈을 크게 뜨고 찾으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찾으시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도록 은총을 베푸시는 분이시다. 다시 말하지만, 그분께서는 사람들이 지옥에 떨어지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하늘나라의 백성이 되기를 바라신다.

 

그러니 혹 하늘나라에 가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 같은 것은 조금도 할 필요가 없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며 노력할 일이다.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구원은 확실하게 나의 것이 된다. 믿음은 교양을 위한 것도 아니고 수양을 위한 것도 아니다. 교제를 위한 것 또한 아니다. 천지를 지으시고 운행하시는 절대자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이고 영혼의 구원을 위한 일이다.

 

여기에서 노파심 때문에 한 마디 부언코자 하는데, 그것은 믿는 사람들이 교제하며 유기적으로 관계를 가지면 거기에 교회가 생기는 것은 사실이나, 교제를 위해 믿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교제는 믿음으로써 하는 것이고, 믿음은 바른 교제에 의해 성장하는 것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믿음은 절대자의 뜻에 따르는 것이고 영혼을 구원받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보다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이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걸어도 아까울 것이 없고, 필요하다면 생명까지 내놓아도 자신에게 이익일 뿐이다. 믿음만큼 가치 있는 일은 없다는 말이다.

 

인간은 가치를 따라 일한다. 그 기준은 사람에 따라 다를지라도 가치 없는 일에 애를 쓰는 사람은 없다. 가치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는 말도 된다. 그러니 가치를 창출하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고 더 큰 행복도 없다. 따라서 믿는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다.

 

행복, 이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가치이고, 믿는 우리에게는 하늘나라에 버금가는 가치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행복에도 질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나의 행복이 이웃의 그것에 도움이 되면 양질의 행복이고, 나의 행복이 다른 사람의 그것에 저해가 되면 저질의 행복이다.

 

사람들은 흔히 물질이나 명예, 사회적 지위 같은 것이 인간을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것들, 특히 물질이 자신의 행복을 보장해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그렇게 하여 바라던 물질을 손에 넣었는데도 역시 행복은 자신에게로 다가와 주지 않는다. 물론 그리하여 행복을 누리는 사람도 없지는 않지만, 그것은 살진 돼지를 보고 행복하다고 하는 것과도 같은 그런 행복이다. 우리는 살진 돼지를 보고 행복하다 해선 안 되고 그런 행복을 추구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행복은 소유한 물질의 다과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가진 것으로 만족하며 감사함으로 청지기로서의 경제생활을 한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 가며 살아간다면 행복은 오지 말래도 와서 나의 품에 안기게 된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무소유로 팔레스타인 땅을 누비며 최고의 가치를 이루어 내었다. 그리고 예수 그는 필경 자기의 몸까지도 온 인류를 위해 내어 주었다. 그 덕택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은 천국의 백성이 되어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기쁘고 행복하다면 나는 좋은 믿음의 사람이다. 살진 돼지의 행복이 아닌 양질의 행복을 누리고 있다면 나는 하나님의 뜻에 맞춰 가며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괴롭고 불행하다면 그것은 신앙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물질이나 명예, 사회적 지위 같은 것은 물론 나쁜 것일 수 없다. 좋은 것이다. 좋은 것이로되 하나님의 방법에 의하지 않고 세상적인 방법이나 욕심에 의해 얻으려 하기 때문에 나쁜 것이다. 자신의 안일과 안락만을 위해 얻으려 하기 때문에 나쁜 것이다.

 

사실을 말하면 우리의 진정한 소유는 아무 것도 없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청지기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 손 안에 있다 할지라도 물질과 명예와 지위 같은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위임해 주신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청지기의 자세로 이런 것들을 관리한다면 행복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그렇게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그것을 지향점으로 하여 달려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이미 하늘나라의 백성이고 지옥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임 종 석 목사

우리집교회 협동목사

충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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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다시 사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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