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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국 목사의 회상록> 축도(Bendediction)는 어떻게?

 

미국교회 성도들은 예배시간이 다 끝나가는데도 헐레벌떡 교회당으로 뛰어간다고 했는데, 마지막 예배순서인 목사님의 축도를 받기 위함이라 했다.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13:13). 세월이 흐르면서 22,000번의 설교를 했으니 축도도 교회를 위해 만 번은 했겠는데, 이 축도야말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가장 좋은 축복의 약속임을 깨닫고 이제는 나 자신이 축도를 받기를 갈망하게 되었다.

 

축도는 목사가 예배 끝 순서로 또는 결혼식과 장례식등의 의식 끝에 회중을 위해 축복하는 기도로 축복의 기도이다. 구약시대엔 모세를 통하여 제사장 아론의 축복기도로 시작하여 제사장들이 사용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찌니라 하라”(6:24~26)

 

또한 마틴 루터 이래 아론의 축도를 사용했으나 한국교회는 미국 선교사들을 따라 바울 사도의 축도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고후13:13)를 사용해 온다고 했다.

 

바울 사도의 서신 끝마다 축도가 나오지만 주 예수의 은혜를 많이 언급했고 가장 완벽한 내용은 지금 우리들이 사용하는 축도로 성부, 성자, 성령의 축복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축도할 때 보면 성경의 원문에다 굳은살을 이래저래 많이 붙여서 길게 하는데 민망스런때가 한두번일까? 왜 맘대로 원문을 바꿔서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님의 사랑과또는 성령의 교통을 바꾸어 성령의 역사하심, 축복하심, 또는 성령의 충만과 인도...”등등으로 하다가 끝에 생각이 났는지 교통을 넣기도 했다. 축도를 대충 자기 생각나는 대로 꾸며서 해서야 되겠는가?

 

한때 기독교 사상 잡지에서 끝매듭을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해서는 안된다고 해서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축원하나이다등으로 나왔으나 이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나왔으므로 이중 사용은 안된다고 해서 “oo교회와 함께, 이 자리에 모인 성도들과 함께 있을지어다”. 또는 첨부해서 함께 하시기를 축원하나이다로 끝매듭을 하기도 한다.

 

서울교회 퇴임후 선교목사로 7년간 국내외 600여 교회를 다녔다. 그런데 축도를 제대로 께끗하게 매듭짓는 내용뿐만 아니라 제사장은 손을 들어 축도”(9:22)기도를 했고, 예수님께서도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24:50)승천하셨는데, 손드는 모양도 천태만상이었다.

 

두 손을 하늘로 쳐드는 것과 양쪽으로 비스듬히 들거나, 똑바로 회중을 향해 내미든가, 좌우팔을 꼬부리든지제 맘대로 한다. 좋은 모양을 생각해봄직하다. 제 생각은 제사장이나 예수님은 손을 들어했으니 두 손을 앞으로 내밀고 어깨위로 40°높이에 좌우 20°정도 벌려서 하는 모습이 좋게 보였다. 왼손에 안수를 하던지 마이크를 잡았을 때는 오른손만 들어서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번은 이상한 교회가 있다고 안양중앙교회의 월남인교회(목사 바로이)에서 두 번째 설교후 교인들과 식사중에 들었다. 시간을 내어 주일예배에 찾아갔더니 인덕원 근처의 2층건물로 올라가 예배에 참석했다.

 

100여명이 모였는데 빙글빙글 돌아가며 기도가 끝나니 찬송을 몇장 하고 설교는 감동 되는대로 두 사람이 간단한 말씀 간증 후 헌금하고 예배 끝에 축도 없이 돌아가며 기도로 끝났다. 목사가 없는 형제교회라고 했고 종교개혁후 생겨나서 한국에도 23개 교회가 있다고 했다. “안티 파스터교회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니 이를 어쩜담!

 

춘천성당의 신부를 사권 것은 천주교를 알기 위함이었다. 67년 춘천군인센타 관장으로 근무할 때 담배피우는 신부를 만나 교제하고 성당예배에 참석했는데 여러 가지 순서로 체계적으로 진행됐다. 45년후에 또 윤영종 양로원장의 말씀초청으로 갔다가 양평성당에 들렀다.

 

준이층 찬양대석 옆에 앉았는데 옛날이나 변함없이 진행되었다. 신부는 31세로 집례가 좀 서툴렀다. “오늘 말씀은 수원교구에서 보내온 것입니다소개하고 그대로 읽어내려 갔다. 수원교구내의 성당설교는 똑같고 미사순서도 똑같으니 이 성당 저 성당 찾아다니며 말씀이 좋다 나쁘다고 평할 일이 없었다. 개신교회처럼 인기몰이 목회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축도는 원문대로 했다.

 

구세군 교회도 40여년만에 찾아가 봤고, 이단교회를 찾아 오후예배에 참석했었다. 교인들을 선동하고 후려잡는가 하면 교회를 떠나는 청년들을 저주하다싶게 소리치고 전횡적인 CEO사장님에 버금갔다. 한날은 호산나교회라고 이름도 좋고 종각대가 돋보여 주일예배에 약간 늦어 들렀다. 목사는 기도원에서 내려왔다며 저를 합해 4명 교인을 앉혀놓고 목쉰 소리로 고래고래 50분쯤 설교를 이었다.

 

또 기도원에 올라가면 두달 후에 내려오는데 부목사가 강단을 맞는다고 했다. 반주자는 딸이요 홀로 앉은 여인이 부목이면서 아내였고 저는 한번 출석교인이며 앞쪽에 앉아 고개 숙인 학생도 그날 처음 나왔는지? 여하튼 몇 사람을 앞에 앉혀 놓고 그렇게 땀흘리며 고함으로 토한 설교를 듣자하니 나도 난청자가 되었는지 설교내용은 기억에 남지 않았으나 그 열정은 결코 잊을 수 없다!?

 

한명국 목사

증경총회장 BWA전 부총재

예사랑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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