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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인구조사(삼하24:1~25)

이희우 목사의 사무엘서 여행-46

잠언서에는 하나님의 징계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과 같다”(잠3:12)고 했고, 히브리서 기자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고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 친아들이 아니라”(히12:8)고 했다. 하나님의 징계가 축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본문은 다윗도 징계를 받았다고 한다. 왜 징계받았는지 또 어떻게 벌 받고 용서받았는지를 보며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하나님의 지시인가? 사탄의 충동인가? 
다윗이 말년에 이스라엘 전국에 인구조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이 일로 사흘간 역병이 돌았고, 다윗이 아라우나 타작마당에서 제자를 드림으로 재앙이 멈췄다. 그런데 24장 말씀이 시작부터 혼란스럽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1) 다윗이 인구조사 후 징계를 받았는데 이 일이 하나님의 지시였다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죄를 짓게 만들어놓고 징계하셨다는 말이 된다. 이해가 되나?


그리고 근 150년 후에 기록된 역대기를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역대기 기자는 “사탄이…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대상21:1) 인구조사가 사탄이 충동해서 한 일이라 했다. 도대체 어떤 말씀이 맞을까? 아마 하나님이 사탄에게 이 일을 하도록 허락하셨다는 뜻인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스라엘의 징계와 하나님이 무관하지 않다는 것, 하나님은 왜 사탄의 충동을 허락하셨을까? 또 왜 죄를 만들어놓고 그 죄에 대해 심판하셨을까?


언뜻 하나님의 불합리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피조물인 우리가 감히 하나님의 불합리를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세상은 코로나 팬데믹 같은 것을 ‘운명’이라 하고, 성경은 ‘하나님의 뜻’이라 한다. 묻는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상에 우연이란 게 있을까? 사실 다 하나님의 계획이나 손바닥 안에 있는 일 아닌가? 만일 코로나 같은 엄청난 재앙이 정말 하나님과 무관하다면 이게 더 큰 일이 될 수 있지 않나? 왜냐하면 하나님의 통제 밖의 세상이 되기 때문이다.


성경은 불합리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고 말씀한다. 애굽의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힌 것도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드셨다고 했다. 하나님의 결정이라 아무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일이든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래야 더 빨리 벗어날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반면에 만약 악이 원인도 없이 우연하게 벌어지거나 실제 악마가 그렇게 충동하고 조장한다면 우리는 더 절망적이다. 그저 운명과 맞서 싸우다 산산이 부서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전쟁이나 기근이나 역병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고 믿는 것이다. 본문도 하나님이 다윗에게 어떤 벌을 받을 것인지 선택하라고 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제시하셨던 재앙마저 하나님이 다 콘트롤하신다는 뜻이다.


그런데 16절 말씀이 좀 어색하다.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리심을 뉘우치시고”, 하나님이 뉘우치셨다고 했다. 코로나 팬데믹에 대해 하나님이 뉘우치셔야 하나? 우리가 뉘우쳐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성경은 재앙을 만드신 것에 대해 후회하신다고 한다. 그래서 16절을 이어서 보면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고 명령하신다. 그렇다면 불합리한 운명을 극복하는 방법이 있는 셈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는 것이다. 운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설득하면 이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재앙을 일으키고 또 거두기도 하신다는 이 불합리성에 집중하기보다 하나님을 통해 이 기가 막히는 운명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간절함에 더 집중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인구조사를 왜 했나?
인구조사는 다윗만 한 게 아니고 고대국가는 물론, 현대국가에서도 다 한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당연히 해야 할 필요한 조사다. 그런데 성경은 죄라고 했다. 당장 인구조사를 담당했던 요압도 죄로 여긴다(3). 다윗 안에 있는 불신앙을 꿰뚫어 본 것, 꼼수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다윗도 이 죄에 대해 회개한다(10). 


통상 인구조사는 두 가지 목적으로 행했다. 하나는 전쟁에 필요한 군인 확보였고, 또 하나는 인두세를 통한 세금징수였다. 처음 한 것도 아니다. 출애굽 때 광야에서 모세도 한 적이 있다. 그것도 두 번이다. 그 기록이 민수기(Numbers)다. 그렇다면 인구조사가 문제가 아니라 인구조사를 하는 다윗의 마음이 문제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왕위를 견고히 하고 권세를 과시하며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강행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자세가 아니다. 그 속마음을 보신 것, 하나님보다 군대, 곧 사람을 의지하려 한 것을 보신 것이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때도 숫자가 많아서 이겼나? 기드온이 300명의 군사를 데리고 싸울 때도 그랬나? 아니다. 그런데 다윗이 지금 사람을 의지하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 한다. 말년이라 불안했을까? 군대에 나갈 사람들을 계수하려는 유혹에 빠지고 말았다. 


그동안 예언자들은 누누이 경고했었다. “애굽의 말이나 마병을 의지하지 말고 여호와를 신뢰하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왕을 세우는 것조차 싫어하시며, “내가 왕이니 자신만 신뢰하라”고 하셨다.

 

결과는 역병이었다
인구조사를 한 다윗에게 하나님은 그 벌로 7년의 기근이나 석 달의 전쟁이나 사흘의 전염병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셨다(13). 말도 안 된다. 벌 받을 사람이 옵션을 갖는다니. 벌마저도 하나님의 긍휼이고 은혜라는 것, 이러실 거면 그냥 못 본 척하시든 용서하셨어야 하지 않나?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냥 지나치시지 않은 것은 다윗을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다윗을 존경받는 성군으로 세우려고 그러신 것이다. 


다윗은 셋 중에 가장 짧은 사흘의 전염병을 선택한다. 그저 기간 때문만이 아니다.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노라”(14), 적의 손에 죽는 것보다, 기근으로 사회가 어려워지는 것보다, 하나님의 손에 맞는 것이 좋겠다는 말이다. 사람에게 매 맞기보다 하나님께 직접 맞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것, 그런데 결과가 끔찍하다.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 명이라”(15) 요압이 9개월 20일 동안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조사한 숫자가 칼을 쓸 수 있는 장정이 130만 명이었는데(8~9) 그 중 7만 명이 죽임을 당했다. 비율로 보면 코로나보다 치사율이 더 높다. 급기야 다윗은 납작 엎드린다.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17). 이게 다윗의 위대함이다.


다윗이 자기 죄를 고하자 선지자 갓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18)고 했다. 회개에 대한 여호와의 자애로운 응답이요 화해의 선언이다. 다윗이 선지자의 말대로 하자 재앙이 멈추었다. 회개에 이은 예배가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을 그치게 한 것이다(23~25). 그리고 놀라운 것은 바로 이곳이 예루살렘 성전 자리가 된 것이다(대하3:1). 하나님께서 이곳을 화해와 자비의 장소로 지정하고 성별케 하셨다. 재앙의 땅이 신성하고 거룩한 성전 자리, 생명의 터전이 되었다. 벌이 축복이 된 셈이다.


그 성전에서 드린 솔로몬의 기도다. “만일 이 땅에 기근이나 전염병이 있거나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나 황충이 나거나 적국이 와서 성읍을 에워싸거나 무슨 재앙이나 무슨 질병이 있든지 막론하고 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을 깨닫고 이 성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하시며”(왕상8:37~39) 3일간의 짧지만 강력한 재앙이 만민이 기도하는 영원한 성전을 선사했다. 그래서 코로나 팬데믹 때 줄곧 회개의 기회로 삼자고 한 것이다. 


오래 전 우스개 소리가 생각난다. 한 가족 네 명이 고층아파트에서 뛰어내렸지만 한 사람도 죽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아버지는 제비족, 어머니는 날라리, 아들은 비행소년, 딸은 덜 떨어졌기 때문이라 했다. 우리는 다 부족하다. 그래서 불안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불황의 터널도 이어진다. 그러나 제네바의 정신과 의사인 피에르 렌치니크 박사는 1975년 ‘의학과 위생학’이란 학술지에 ‘고아가 세계를 주도한다’(Orphans Lead the World)는 논문을 발표했다. 알렉산더 대왕, 줄리어스 시저, 찰스 5세, 리슐리 추기경, 루이 14세, 조지 워싱턴, 나폴레옹, 빅토리아 여왕, 골다 메이어 총리, 히틀러, 레닌, 스탈린, 에바 페론, 피델 카스트로가 고아 아니면 사생아였다는 것이다. 징계는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시지 않았다는 증거다. 인구조사라는 죄를 범했지만 여호와의 손이 회개하고 예배하는 다윗을 영롱한 보석처럼 빛나게 하신 것처럼 회개와 예배를 통해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의 손을 굳게 잡고 빛나는 인생으로 회복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