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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한국교회의 성령운동(3)

오순절 성령운동의 이해 - 15
김한순 목사
홍성성산교회 전 총회신학교 교수

길진경은 이날의 집회로 인해 1907년 평양의 장대현교회를 비롯해 전국에 있는 한국 교회에 성령의 역사가 크게 일어날 조짐을 보여줬다고 적었다. 나아가 길선주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승리하도록 만드는 원동력은 바로 성령 충만임을 가르쳤고 이를 받을 수 있는 대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성신을 받는 것이 세 층이 있으니 첫째는 성신의 인도함 받고, 둘째는 성신의 감동함을 받고, 셋째는 성신의 충만함을 받으니 그런즉 성신의 인도함을 받은 후에야 성신의 감동함을 받고, 성신의 감동함을 받은 후에 성신의 충만함을 받나니, 성신을 충만히 받는 방식은 여섯이다. 첫째는 하나님의 명을 순종함이니 … 둘째는 형제자매가 마음을 합함이니 … 셋째는 겸손함이니 … 넷째는 마음이 조용함이니 … 다섯째는 주의 일을 위하여 힘쓰는 가운데 성신의 권능을 충만히 받는 것이니 … 여섯째는 간절히 기도함이니, 주 가라사대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라 하였느니라.


이에 박용규 교수는 길선주가 제시한 성령 충만함을 얻는 방책이 사도행전 1~2장에 나타난 오순절 사건에 근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그가 지식적으로 이 원리를 얻은 것이 아니라, 몸소 성령의 은혜를 충만히 받고, 또한 이 은혜를 사모하는 이들에게 임했던 성령의 역사를 통해 성경을 연구하며 체험적으로 정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진정한 부흥의 의미와 표준을 사도행전 첫 부분에서 찾았던 요나단 고포트(Jonathan Goforth)도 평양 대부흥운동은 여섯 가지 양상에서 오순절 표준에 맞는다고 평가했다. 첫째는 1세기 초기교회가 성령을 존귀하게 여기며 성령강림을 위한 기도를 지속했듯이, 한국의 선교사들도 수개월 동안 날마다 1시간 내지 5~6시간을 기도로 준비했다는 점이다. 둘째는 한국교회가 초기교회처럼 구주의 공로를 열심히 전달한 점이다. 셋째는 한국교회가 사도행전과 같이 장기간의 날을 정해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비용일체를 자비량으로 충당한 점이다. 넷째는 한국교회 안에서 고부간의 갈등이 해소되어 인간관계가 화목하게 되는 일들이 발생한 점이다. 다섯째는 사도행전의 가장 현저한 특징이 기도였듯이, 한국 역시도 학교에서든 가정에서든 모이는 그곳에서 기도하며 전도에 열심했던 점이다. 마지막 여섯째는 한국의 신자들이 초기교회 교인들과 같이 헌금하는 일에 인색하지 않았으며,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뜨겁게 사랑했다는 점이다.


길선주 성령운동의 한계점
길선주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세계 복음주의운동에서 심도있게 논의됐던 “성령침례”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글을 남기지 않았다. 웨슬리안들은 성령침례를 중생 다음에 오는 이차적인 은총인 성결과 동의어로 이해했고, 오순절 성령운동가들은 중생 이후에 주어지는 성령침례와 그 증거로서의 방언체험을 강조했던 반면에,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에서는 성령침례가 중생할 때에 주어지는 것으로 간주하는 전통적인 입장에서의 “성령침례”라는 용어조차 사용하지 않았다.


이점에 대해서 박명수 교수는 당시의 부흥사들이 신앙생활의 성숙을 위해서 성령침례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는 했지만, 성령침례 대한 특별한 정의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나아가 박 교수는 1907년 대부흥운동에 관한 문서들 중에서 방언에 대한 언급도 찾아볼 수 없는데, 이는 방언을 참된 부흥의 증거로 간주하지 않은 데에서 연유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는 게일(James S. Gale)이 “1907년 대부흥운동 중 중국인 신자들이 평양에 있는 길선주를 방문해 함께 기도회를 가졌을 때, 중국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단음절로 기도했고, 한국인들은 세계가 잊어버린 그들의 고대어로 기도했다”고 기록한 부분에 대해서, 이는 아주 흥미로운 기록이지만 그것이 방언을 가리킨 것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판단이 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길선주에 의한 한국교회 성령운동의 태동기와는 상당히 다르게 한국교회 수난기에 성령운동을 전개했던 김익두 목사(1874~1950)의 성령운동의 특징은 영력을 위한 금식기도 강조와 전도를 위한 기적과 신유은사 강조와 그리고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백 만인의 영을 그리스도께”라는 표어를 걸고 성령운동을 전개한 점이다. 그리고 이용도 목사(1901~1933)도 여기에 해당하는데, 그가 인도하는 예배는 항상 성령 충만해 통성기도 시간이 되면 여러 곳에서 방언과 예언이 터져 나왔다.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 재건기(1945~1950)에 사역을 했던 이성봉 목사(1900~1965)의 경우에는 수많은 병자를 고치고 귀신 들린 자를 치유하는 기적을 일으키기도 했다. 물론 그의 성령운동은 그가 속해 있었던 성결교의 4중 복음, 즉 중생, 성결, 신유, 그리고 재림을 토대로 한 체험적 신앙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한국교회 역시도 성령운동이 초기에는 미국의 제1기 오순절운동과 그 신학적 특징인 성령침례 면에서는 다른 점이 있었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방언과 신유가 나타나는 등 서로 유사한 성격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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