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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침례에 대한 신오순절주의와 복음주의간의 갈등

오순절 성령운동의 이해 - 16
김한순 목사
홍성성산교회
전 총회신학교 교수

이제 제2기 신오순절주의가 주장하는 성령침례에 대한 신학적인 문제로 살펴보고자 한다. 실제로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오순절운동에 참여하지 않은 복음주의자들은 신학적으로 그 어떤 망설임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신오순절주의의 신학의 핵심적인 부분에 뜻하지 않은 약간의 교리적인 기형이 생성됐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양자 사이에 가로 놓인 담을 헐고 동시에 상호간의 성경적 연관성을 모색하여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정확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 교리상의 발전을 시도하기 원하는 복음주의자들이 점차 생겨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요약해본다면, 신오순절주의신학의 근복적인 요소는 신자가 기독교의 봉사를 수행하고 충분한 능력을 가져다주는 카리스마적인 은사의 풍부한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회심한 이후에 성령침례를 받을 수 있도록 추구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즉 중생한 이후에 주어지는 제2차적인 은혜 체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2의 은혜를 위한 성령의 역사에 대한 강조는 역사적으로 감리교의 성결운동으로부터 유래되어 정통적 오순절주의에 의해 계승된 내용이었다. 그러나 신오순절주의자들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복음주의자들은 그같은 개념이 예수를 믿는 믿음을 통해 주어지는 성령과의 첫 만남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에 따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미 앞장에서 언급했듯이, 오순절파가 주장하는 성령침례는 성도가 구원받은 이후 어느 시점에서 제2의 은혜인 성령의 특별한 경험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 경험을 가리켜 성령침례라고 부르고, 이 성령침례는 본인이 느낄 수 있도록 발생해야 하는데, 그 증거가 바로 방언의 은사로 뒤따르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후기 신오순절주의의 가르침에서는 성령침례의 선행조건으로서 성화의 역사를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예컨대, 하나님의 성회는 “모든 믿는 자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과 불의 침례를 간절히 기다릴 자격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해야 하며 또한 열렬히 구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 체험은 신생과 구별되며 신생 다음에 일어난다고 보았던 것이다. 한국의 조용기 목사도 “중생은 새 생명을 얻기 위하여 반드시 체험해야 하며, 성령침례는 하나님의 사역을 행하는데 있어서 성도들이 반드시 체험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신오순절주의자는 “성령침례는 하나님과의 두 번째 만남”이기에 기독교인은 초자연적인 성령의 능력을 그의 삶 가운데로 끌어들여야 하며 이것이 성령침례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 논리에 의하면, 첫 번째 하나님과의 만남은 회심을 의미하지만, 성령침례는 이미 믿고 있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확실한 현상으로 간주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복음주의의 견해에 의하면, 모든 기독교인은 진정으로 회심한 자로서 이는 회심과 동시에 성령의 침례를 받았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러기에 회심한 이후에 성령침례라는 부가적인 성령의 역사에 대한 여지나 그 필요성조차 거기에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통적 오순절주의자들은 기독교인들이 회심했다할지라도 동시에 성령침례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복음주의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모든 기독교인들은 성령침례를 받은 것으로 간주하는 반면에, 정통적 오순절주의 사고방식으로는 그리스도인과 성령침례 받은 그리스도인이 따로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두 가지 관점이 서로 상반된 채 존재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이러한 오순절주의의 관점을 처음 접한 복음주의자들은 이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여 질 때가 많았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자칫 이른바 “명목상의 기독교”에 관한 논쟁으로 발전할 수도 있고, 또한 이에 따른 불쾌감 같은 것도 발생할 여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복음주의자들은 거듭나지 못하면 진정한 기독교인이 된 수 없다고 믿기 때문에, 거듭난 이후에 성령침례를 주장하는 오순절주의의 견해는 복음주의자들의 적대감을 야기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순절운동과 신오순절 은사운동은 그리스도인의 회심과 성령침례 이 둘 사이를 구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오순절적 사고와 체험에는 두 가지 중요한 실체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사건이요, 다른 하나는 성령의 침례이다. 그들은 전자에 의해 죄사함을 받게 되고, 후자에 의해 능력을 받게 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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