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의 군목 시절, 항공부대에서 사역할 때다. 어느 부대나 다 그렇지만, 항공부대 역시 그들의 비행훈련에 군목이 함께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군종활동 중 하나였다. 게다가 조종사들도 언제든지 나의 탑승을 환영하였다.
이유는 딱 하나. “목사님이 비행에 함께 하면 안전하다”는 심리적 요인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목사의 동승을 귀찮아했다는 기억은 없다.
그래서 한 날도 시간을 내어 그들과 함께 몸을 실었다. 해군의 대잠초계기인 P-3C. 오후에는 남해바다 선박검색 임무를 수행한 후, 저녁에는 서해 군산 앞바다로 날아가 우리 고속정 야간사격훈련에 조명탄을 지원하는 임무였다.
예상비행시간은 6시간. 난 그들과 함께 오늘도 무사히 훈련을 잘 마치기를 기도했고, 서로 엄지손가락을 곧게 펴며 멋진 비행을 다짐했다. 그래서인지 초계기의 동체는 이륙부터 가벼웠다.
그런데 문제는 하늘 위였다. 남쪽 바다 날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악천후를 만난 것이다. 두꺼운 먹구름을 통과할 때면 동체는 심하게 요동쳤고, 결국 4개의 엔진 중 왼쪽 엔진 하나마저 멈추게 됐다.
난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목사로서 내색은 못했지만, 몸과 마음은 여지없이 오그라들었다. 항공기가 구름 위를 향하여 고도를 급상승시켜 두꺼운 먹구름을 뚫고 날아오른 다음에야 마음은 안정됐다.
그런데 바로 그때, 조종사가 내게 말을 건넨다. “이런 날 우리만 있었다면 좀 불안했을 텐데 오늘은 목사님이 타셔서 마음이 너무 편안하네요. 앞으로도 자주 동승해주세요.”
나는 정작 불안해 죽을 지경이었는데, 저들은 오히려 나 덕분에 편안했다니…. 난 그 비행기를 못 믿겠는데, 저들은 오히려 날 믿었다니…. 지금 생각하니 우습고도 부끄럽다.
그렇게 무사히 비행을 끝내고 포항공항 활주로에 무사히 랜딩을 마치자, 그들은 또 한 번 감사의 말을 잊지 않는다. “오늘 비행은 순전히 목사님 덕분입니다.”
관사로 돌아오며 그날 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도대체 ‘목사’라는 직분이 뭐기에, 그게 다 나 덕분이었단 말인가? 이것이 이렇게도 귀한 것이었던가? 정말 신기하고 고마웠다. 그러니 과연 이렇게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직업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지난주엔 교회 장례식이 연이어 세 군데나 있었다. 졸지에 슬픔을 당한 유가족 입장에서 보면 정말 정신 나갈 만큼의 큰일을 당한 것이다. 슬픔은 말할 수 없이 크고, 뭐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때다. 바로 그때 목사가 방문해보라. 위로해보라. 기도해보라. 말씀으로 소망을 드려보라.
그러면 그들은 날 보자마자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며 내 가슴에서 실컷 운다. 그리고는 금세 평안을 찾는다. 힘을 얻는다. 위로 받는다. 소망 얻는다. 진정 신기하고 고마운 일이다.
병원에 아픈 이들을 찾아 심방하는 일도 그렇다. 몸은 여전히 아프지만 병실에 들어서는 날 본 그들의 얼굴은 금세 펴진다. 목사의 방문이 더 없이 좋은 진통제가 된다. 거기에 기도까지 더해지면 이미 마음은 다 나아버린다. 참 신기하다.
도대체 목사란 무엇인가? 그것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고 위로가 될까? 전화 한통에도 고마워하고, 언제라도 가면 반가워하고, 안 가면 되레 토라지는 직업이 목사 말고 또 있을까? 난 너무도 부족한 사람인데, 그들에겐 전혀 부족하지 않으니 신기할 뿐이다.
그러니 무조건 감사하자. 돌보는 성도가 많든 적든, 사례가 많든 적든 하나님이 날 목사로 불러주셨다는 것에 매일 감사하자. 긍지를 갖자. 정말이지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직업(?)은 없다.
김종훈 목사 / 오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