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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성경이 우리 손에 오기까지(8)

조선의 “새빛” 선교사들-9
백정수 목사
더가까운교회

조선선교를 준비하는 존 로스는 조선의 무역상을 찾고 있는 시점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궁금한 것이 있다. 개신교단 중 세계에서 주류 교단인 침례교단은 한국에서 왜 이리 교세가 약할까? 왜 한국에는 장로교단이 득세할까? 이것에 대한 이유들은 여러 가지 난무하다.

 

이에 대표적인 몇 가지를 간단히 열거하자면, 
첫째는, 일제 강점기 때 장로교단은 신사참배를 했는데, 침례교는 신사참배를 하지 않아 일제의 탄압을 받아 교세가 줄어들었던 점. 


둘째는, 침례교의 정신을 가지고 있던 펜윅 선교사가 타교단 선교사와는 다르게, 한양에서 활동하지 않고, 지방 및 외각에서 활동했던 점. 


셋째는, 침례교 선교사들이 한양 외 지역에서 활동했을 뿐더러, 타교단 선교사에 비해 의료 등 특별한 기술이 없었던 점. 그래서 한양에 병원이나 학교 등을 세워 기관사역을 하지 않았던 점. 때문에 당시 고종을 비롯한 조정 관리들과 친분이 없어 조정의 여러 지원을 받지 못했던 점. 


넷째는, 침례교의 개교회주의 때문에 조직력이 약했던 점.


다섯째로는, 침례교의 전신인 대한기독교회(동아기독교 1921년 명칭 변경)의 설립이 1906년이라, 타교단보다 조직형성이 늦어졌다는 점.


이외에도 여러 가지 설과 이유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과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에서 조선의 선교사들을 연구했던 필자의 견해는 미국 남침례교가 조선을 위한 선교사를 직접 파송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 말은 조선에 선교적 지원을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안타깝지만 침례교의 아버지라는 펜윅도 남침례교에서 정식으로 파송 받은 선교사는 아니었다. 강경교회를 세운 에드워드 폴링(파울링) 선교사 부부 역시 남침례교 해외선교부가 아닌 보스턴에 있는 엘라씽기념선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였다. 이들은 언더우드나 알렌, 아펜젤러, 스크랜턴 등 교단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파송된 선교사와는 배경이 달랐다.


당시 미국은 1872년에 영국을 넘어 초강대국의 위치로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특히 미국 남침례교는 미국에서 주류 중의 주류교단(한국 장로교에서 흔히 말하는 장자교단)이었다. 그런 남침례교의 동북아시아 선교적 전략과 관심은 중국과 일본이었다. 조선은 그들에게 있어 존재감이 없는 나라였다.


서양인들의 눈에는 조선은 중국의 속국으로 알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왜냐하면 조선이란 이름이 명나라 황제 홍무제(주원장)가 지어준(선택한) 이름이기 때문이었다. 1392년 조선의 왕위에 오른 이성계는 새로운 나라에 걸맞는 국호 제정을 논의했고, 조선(古조선 계승)과 화령(이성계의 고향, 오늘날 함경북도 영흥)으로 명칭 후보를 정하게 된다. 이후 명나라 황제인 홍무제에게 이 둘 중에 국호를 선택해달라고 사신을 보냈다. 홍무제는 과거 중국 은나라 시절, 기자란 사람이 세운 조선이란 영토(기자 조선)를 떠올리며, 새로운 나라의 국호를 조선으로 하자고 정해줬다. 이런 이유들로 조선은 중국의 속국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조선이라, 남침례교의 선교사들과 선교적 지원은 중국과 일본 곳곳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장로교와 감리교 등 타교단의 선교사들은 남침례교가 선점한 중국과 일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사역적으로 겹치는 등, 여러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서양 문물을 더 많이 받아들이고, 영어가 어느 정도 통하는 중국과 일본에서 사역하기가 선교사들 입장에서는 좀 더 수월했지만, 당시 여건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주류 교단이라고 불리는 장로교 선교사들이 이미 선점한 해외 선교지를 피해, 다른 지역에서 선교 사역을 감당하는 한국 침례교나 다른 교단 선교사들이 얼마나 많은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것이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야기의 요지는 이렇다. 장로교나 감리교의 신학 등이 뛰어나서 한국에 주류로 자리 잡은 것이 아니란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다시 말해 장로교나 감리교 선교사들은 남침례교의 선교사들을 피해 조선에 온 것뿐이다. 그런데 그 가난하고 인정받지 못했던 조선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이렇게 영적으로 산업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성장하여 대국이 될 줄을 당시에 누가 알았겠나? 이건 ‘어부지리’라는 표현보다는 ‘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격’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만약 미국의 남침례교가 조선을 전략적인 선교지로 정하고, 선교사와 선교적 지원이 있었더라면, 아마도 한국 주류교단은 장로교단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말에 대해 장로교단 등이 상당히 불쾌할 수 있지만, 이것은 팩트다. 팩트인 것에 감정을 느낀다면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다. 


따라서 장로교단은 한국의 장자교단이니 어쩌니 하면서 우쭐되며 교만할 필요도 없고, 침례교단은 괜한 자괴감이나 열등감을 가질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 1:18)는 바울의 고백처럼, 당시 상황이 어땠고, 어떤 방법으로 하던 간에, 생명의 복음만 잘 전해진다면, 그것이 그리스도의 기쁨이고 영광인 것 아닌가?
당시 조선에 복음을 전했던 선교사들이, 그 가난하고 황폐하고 힘겨운 땅이 이렇게 복음으로 변화되어, 세계 선교 사역에 앞장을 서고 있으니, 이 환골탈태한 모습을 본다면 참으로 그들의 심정과 감회가 어떨까 싶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