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안교회와 이원교회에 이어 노영식 목사의 간청에 못 이겨 세 번째로 문을 닫을 지경이 된 남문구교회에 1970년 9월 첫 주에 부임했다. 3일간의 교회당 청소 후, 교회의 이름부터 남문침례교회로 고치고 장기간 금식기도에 들어갔다. 12명의 교인이 30명으로 늘어났고 또 누가 누구인지 잘 아는 터였는데, 주일 아침 김선영 자매가 친구를 인도해 옆자리에 앉힌 것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을 영적으로 직감했다.
김선영 자매는 전북 시골소녀로 부산에 와서 일했는데 동료 공장직공을 인도해 온 것이다. 예배 후 즉시 새신자 상담을 청했는데 삼교대 근무에 들어갈 시간이라 오늘은 안 되지만 오는 수요일 저녁에는 꼭 나오겠다고 하여 이름만 알고 보내었다. 그런데 수요일 기도회에 이 양은 나오지 않았고 금요일에 김선영 자매가 뛰어와 급보를 알리었다.
그 내용은 전셋집 주인이 3일만에 이상히 여겨 안으로 잠긴 문을 박차고 들어가 보니 이 양이 활활 타는 연단 두 개를 방안에 놓고 연탄가스에 질식사해서 송장냄새가 지독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긴 유서에 군수기지창고의 군인과 제대할 때까지 임시 계약으로 동거했는데, 그가 제대한 것을 숨기고 도망갔기 때문에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나는 유가족과 교인들과 함께 이 양의 장례를 잘 치러주었다. 이 사건은 내가 군에 있을 때 자살미수의 김익심 사건 못지않은 전도의 시급성에 대한 사건으로 큰 충격이 되었다. 그날 공장에 조금 늦게 가더라도 상담해 예수님을 영접시켰더라면 자살도 않고 새 생명을 얻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이 양의 죽음은 바로 내가 잘못해서 죽게 한 일종의 자살방조죄로 여겨져 통렬하게 느껴졌고, 그 후 목회에서 새신자에 대한 관심과 태도가 달라지게 되었다.
그 당시 같은 부대군인으로 윤 군도 공장 처녀와 동거생활 하다가 제대를 하고 도망갈 참이었다. 눈치를 알아차린 김 자매는 얌전하고 너무 착했으나 그래도 신앙심이 있어 망설이다가 나에게 털어놓았다. 윤군이 아기를 떼고 헤어지자고 위협하고 있어 죽겠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이 양의 충격이 남아 있는데 윤 군을 불러 엄중히 책망한 후 윤 군의 고향 수원에 예수 믿는 부모에게 연락하여 임신 중인 처녀에게 그렇게 하면 큰 저주를 받는다고 권고했다.
부모가 내려와 상담을 한 후 잘 살도록 타일렀으나 내키지 않았던 가정생활은 윤군의 방종으로 엉망이었다. 제대 후 운전을 하다가 부산 북부 경찰서에 투옥되었을 때 나는 출감도 잘 도와주었고 아이를 낳았는데 이름을 ‘윤요한’이라고 지어 주기도 했다.
하루는 잘 사는가 싶어서 심방을 하니 윤군은 운전해서 번 돈으로 매일 사우나를 하고 술도 먹고 들어오면서 아내를 두들켜 패고 밥상을 뒤집는다는 것이다. 생활비가 적어 아기에게 우유를 묽게 타서 달라는 대로 자꾸 많이 먹였더니 배가 톡 튀어나와 이상하다는 것이다.
시골교회에 있을 때 경험으로 “짜구”가 나면 그런 것을 알고 돈을 주어 긴급처방을 했다. 하지만 30년이 흘러 윤군의 전화를 받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한다니 매우 기뻤다. 아들 요한이는 미국 오클라호마(Oklahoma)주립대학원에 입학하여 공부를 잘하고 있고 김 자매는 경기도 화성 시청 앞에서 식당을 하고 있는데, 가끔 목사님 생각이 나고 너무 뵙고 대접하고 싶어서 이곳저곳으로 수소문해 이렇게 전화를 올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겔3:18)
외삼촌의 구원
둘째 외삼촌께서 위암으로 6개월간 투병하시다가 임종이 가까워서 나와 군 복무하던 막내 아들을 찾는다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급히 반송동으로 갔더니 그 좋던 풍채가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있으셨다. 누웠던 자리에서 일어나 베개를 벽 쪽에 붙이고 겨우 기대어 앉으셨다.
나는 임종을 맞는 사람에게 늘 하던 대로 특히 평생 동안 예수님을 모르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온 분이시기에 기도하고 정중하게 복음을 증거했다. 몸은 지탱하기 힘드시나 나를 부르신 목적은 바로 영혼구원임을 확신하고 간절히 전했다. 예수님의 복음이라곤 아무것도 모르던 한 영혼에게 구원이 임했다.
「하나님과 화목하는 길」이란 소책자에 나오는 제1단계 “하나님의 사랑”을 마치고, 제 2단계 “인간의 문제인 죄”에 대해 증거하니, “생질 목사야, 내가 무슨 죄가 있노! 나는 죄가 없다!”고 딱 잘라 응수했다. 나는 죄 문제가 회개로 해결되지 않으면 끝장이란 생각이 들어서 생각나는 대로 죄를 지목했다. "...노름하시다가 순사한데 붙잡혀서 주재소 영창에 들어갔는데, 순사를 두들겨 팬 것도 ..."하는데,
"야야, 니 뭐라카노? 일본놈 순사 두들겨 팬 것은 애국한 것인데, 어찌 죄꼬?" 순간 나는 말이 막혔다. 그러나 계속 죄를 지적하다 보니 끝도 안 나겠고 해서 나는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저는 죄가 너무 많아서 예수님을 안 믿고는 구원받을 수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보시더니 “한 목사, 세상에 니가 무슨 죄가 있노! 참새같은 니가!” 성경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가 제일 큰 죄(요16:9)라고 하셨고, 죄를 지은 대가는 사망, 곧 지옥으로 가는 것(롬6:23)이라고 설명했다. 반응이 없어서 조금 기다리니 그는 몸을 떨면서 흐느끼기 시작했고 “내가 참 ...죄를 많이 지었다. 우짜면 좋겠노?!”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사죄와 구원을 위해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도를 함께했다. 그의 얼굴을 초췌했으나 밝은 미소와 빛나는 눈에서 새 사람의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이틀 후 이른 아침 그는 자녀들에게 창문을 크게 열어 달라고 소리쳤다. 딸 순필이는 “아부지, 더워요? 아니면 답답해서 그래요?”라고 물었다.
이에 “아니다, 저기 창가에 천사가 날 데리러 왔다. 헛헛허허허.. 나를 일으켜라. 어서 가야지!”라고 말하자, 자녀들이 일으켜 앉혔더니 밝고 환한 얼굴로 뒤로 넘어지면서 소천하셨다고 했다. 십자가의 오른편 강도같이 임종 직전에 예수님을 믿고 천사의 인도로 하늘나라에 들리어 가셨다. 65년 한 평생 세상과 뒹굴며 살다가 임종 이틀 전에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아 천국에 간 것은 기적 중에 제일 큰 기적이 아니고 무엇인가!
한명국 목사
증경총회장 BWA전 부총재
예사랑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