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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도 (1)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3
김진혁 목사 뿌리교회

중학교 3학년, 1반 교실에서는 아침부터 선생님께 혼나는 소리가 납니다.


“야이 새끼야, 똑바로 앉어. 똑바로.”


삐딱하게 앉아있는 제 정강이를 구둣발로 힘껏 차며 소리를 지르는 분은 담임선생님이십니다. 중학교 1학년 때도 담임이셨는데, 그 때의 착실한 김진혁을 생각하고 부반장이 된 것을 한껏 축하해 주신 분이기도 합니다. 학기 초, 서명운동을 주도하고 퇴학 위기를 한 번 넘기고 나니, 제 자신부터 학교를 다니기 싫었지만, 담임 선생님 또한 그런 저를 못마땅해 하셨습니다. 


그래서 3학년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부터 저는 이미 학교를 떠나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공부도, 친구들과의 관계도, 선생님들과의 관계도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고입 연합고사, 체력장 20점에 총 200만점으로 진행되는 시험에 40점을 맞아 어느 고등학교도 입학하지 못했습니다. 농땡이를 피우지 않고서야, 누구나 20점을 유지 시켜주는 체력장 점수가 10점, 한 줄로만 쭉 찍어도 50점을 맞는 시험점수가 30점이니 고등학교 입학은 이미 물 건너갔습니다.


시험 점수를 받으러 학교에 간 날, 다른 녀석들과는 달리 이미 수준을 알고 있는 나는 점수표를 받자마자 미리 아르바이트를 신청해 놓은 인근 예식장으로 향했습니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나면 4만 원을 주는데, 그 돈이면 집을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런데 그 수많은 사람들을 다 상대하고 나니 몸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온몸이 불덩이같이 뜨겁고 그대로 길바닥으로 쓰러질 것만 같아 우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인문계를 갈 것이냐 공고를 갈 것이냐 입시원서를 작성하는데, 담임 선생님의 폭언이 점점 더 심해집니다. 


“너는 새끼야, 공고도 못 들어가. 그냥 학교가지마. 아버지 모셔 와도 소용없어. 할 말도 없으니까 모셔 오지도 마.”


아버지 또한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하신 상태였습니다. 


“니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았냐? 어쩌다가….”


기역, 니은이야 초등학교를 들어가야 가르쳐주고, 중학교 때 알파벳을 시작하던 당시에는 글씨 하나만 잘 읽어도 싹수 있는 놈이 됐지만, 제법 공부에 맛을 느꼈던 저는, 외삼촌이 공부하시던 한자책을 들춰 주자십회 같은 것을 쓰고 외웠으며, 형이 중학교를 들어가자마자 형의 영어책 맨 앞에 있는 발음기호를 스스로 외워 읽기 시작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5종 교과서 통합단어장을 사다가 몽땅 외워, 영어 시험날이 되면, 친구들은 시험지를 받아들자마자 모르는 단어부터 찾아 금새 한 두 단어씩 물어보고 시험을 치르곤 했습니다. 


그게 독약이었습니다. 별다른 노력 없이 그냥 나하고 싶은 대로만 해도 충분히 학교 공부에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던 것 말입니다. 중학교 1학년 첫 시험 때 한 자리 등수가 꾸준히 하향세를 타더니, 큰 사고에 맘이 떠나있던 중학교 3학년 졸업할 때가 되니, 뒤에 몇 명 남지 않게 됐습니다. 한 학기 두 번, 무표정한 얼굴로 하나같이 떨어진 등수만큼 때리는 선생님의 매타작 외에는 제 성적과 관련해 조금이라도 자각케 하는 것은 없었습니다. 


차라리 ‘어쩌다가 그렇게 됐냐’고 던지시는 아버지의 물음이 시기는 좀 늦었으나 선생님들의 그것보다 정신을 더 바짝 차리게 했습니다. 이전 같았으면 어찌된 일이냐고 묻는 것보다 주먹이나 발길질이 나오거나, 안방으로 불러 매타작부터 나왔어야 할 일인데, 잔뜩 찡그린 얼굴로 ‘어찌된 일이냐’니,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차라리 좀 때려주면 반발을 해서 집을 나갔으면 좋겠는데, 한마디도 없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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