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뎀나무’는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대표적인 성경의 식물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현장에서 우리를 가장 놀라게 만드는 것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사람들 대부분은 로뎀나무를 소나무처럼 그늘을 제공하는 아주 커다란 나무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로뎀나무는 쉼, 안식, 평안, 여유, 휴식을 제공하거나 그런 것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나무, 또는 이미지로 우리에게 인식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로뎀카페, 로뎀쉼터, 로뎀양로원, 로뎀수목장, 로뎀푸드와 같은 이름들을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로뎀나무에 대한 이러한 인식이 과연 어디서 시작됐을까? 아마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열왕기상 19장 사건에서 기인한 것 같다.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로뎀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열왕기상 19:4~7)
엘리야 선지자가 로뎀나무 아래 앉고, 누워 자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그늘이 울창한 커다란 나무로, 그리고 빵과 물을 먹이시고 회복시켜 주신 것에서 쉼과 안식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성경이 기록된 현장에서 만나는 로뎀나무는 어떤 모습일까?
싸리과 나무로 1.5~3m까지 자라며, 지역에 따라서 1월 말부터 3월에 마치 아카시아 꽃과 유사한 모습의 흰 꽃을 피운다. 이스라엘에서는 해안지역의 모래 구릉지, 브엘세바 지역(남방), 그리고 건조한 광야(와디-건천주변)에서 볼 수 있다.
이쯤 되면 히브리어 ‘로뎀’의 의미가 궁금해진다. 놀라운 것은 우리의 이미지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히브리어 로뎀(white broom)은 ‘묵다’, ‘속박하다’를 의미하는 로테나(rotena)가 어근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로뎀나무를 우리말 성경은 아주 다양하게 번역해 놓았다. 그래도 번역해 놓은 성경을 유심히 보면 소나무처럼 커다란 나무를 상상할 수 있는 여지는 없어 보인다.
성경이 기록된 현장을 답사하다보면 로뎀나무를 만나게 되는데(그리스, 터키에서 노란꽃의 나무는 성경의 로뎀나무와는 다르다), 차를 타고 지나면서 도로변에 있는 로뎀나무를 보여줘도 어디에 있냐고 반문할 정도다. 우리가 생각했던 모양의 나무는 아무리 봐도 없으니 로뎀나무를 옆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이 기록된 현장과 우리 사이에 갭(Gap)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시간, 장소, 주체가 분명한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고 그 사건의 현장이 반드시 있다. 그 현장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의 현장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래서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는 성경이 기록된 현장을 통해서 말씀을 보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즉 현장이 성경을 보는 창이 돼야 한다. 우리가 현장이라는 창을 통해서 열왕기상 19장 사건을 보려고 했다면 로뎀나무가 커다란 나무로 그리고 쉼과 안식의 이미지로 각인될 여지는 좀 줄지 않았을까 싶다.
성경의 주인공들은 두 가지 특징적인 의미로 로뎀나무를 이해했는데 첫째는 히브리어 ‘로뎀’이 의미하는 것처럼 곤란한 상황이나 어려움 가운데 처한 사람 또는 상황을 상징하는 의미로 이해했다. 광야의 뜨거운 태양 빛을 피하기 위해서 변변치 않은 그늘을 제공하는 로뎀나무 밑에 앉아있는 사람을 상상해보면 알 수 있다. 그러니 광야로 도망친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 앉아 죽기를 청했던 그 모습과 상황이 어떠했는지 이해할 만하지 않은가?
로뎀나무는 쉼과 안식보다는 거기까지 오셔서 만나주시는 하나님을 보게 된다. 잊지 않고 99살이 되었을때 다시 찾아오시는 그 분, 사자굴 속에 나타나시는 그 분, 불구덩이 가운데서 버티고 서 계신 그 분.
감옥 깊숙한 곳까지 찾아가 철창을 깨부수는 그 분, 바울에게 찾아와 목회서신을 쓰도록 위로하고 격려하시는 그 분, 이렇게 보면 나의 가장 어려운 그 곳이 바로 로뎀나무 아래요, 거기까지 찾아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소망하는 장소가 아니겠는가?
김상목 목사
성경현장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