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성도 5명 중 1명 이상이 현재 우울이나 불안 등 정신건강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목회데이터연구소와 기아대책, 월드비전이 공동 기획한 ‘한국교회 정신건강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교회는 더 이상 정신질환을 개인의 신앙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이번 조사는 전국의 교회 출석 성도 1000명과 담임목사 5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 경험, 치료 태도, 교육 수요, 교회 대응 체계 등을 폭넓게 살펴봤다.
성도 5명 중 1명 “최근 우울·불안 경험했다”
조사에 따르면, 성도의 23%가 최근 2주 이내 ‘우울감으로 고통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고, 22%는 ‘불안감으로 고통받았다’고 했다. 자살 충동을 경험한 성도도 7%에 달했으며, 중독 문제(알코올, 도박, 성중독 등)로 고통받는 이도 11%로 나타났다. 성도뿐 아니라 목회자 가정에서도 정신건강 이상 징후가 드러났다. 목회자 응답자의 44%는 “주변에 정신질환을 겪는 목회자 자녀가 있다”고 답했다.
돌봄 체계 갖춘 교회 7%뿐
교회의 정신질환 대응 체계는 매우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신질환자 돌봄 체계(상담실 등)를 갖춘 교회는 전체의 7%에 불과했고, 61%는 전문 인력조차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도 중에서도 교회에서 정신건강 관련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11%에 그쳤다.
여전히 강한 편견… 인식 변화도 가능성 보여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식에서는 여전히 강한 편견이 존재했다. 성도의 76%는 ‘정신질환자는 위험하고 예측 불가능하다’ 73%는 ‘정신질환자와는 결혼하면 안 된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정신질환을 교인에게 알렸을 때 ‘도움이 됐다’는 응답이 63%로 나타나, 편견을 넘는 교회의 기도와 지지가 현실에서 가능함도 확인됐다.
한편 정신질환을 ‘의학적 질병’으로 보는 인식은 성도 81%, 목회자 89%로 높았지만, ‘귀신 들림 같은 영적 현상일 수 있다’는 응답에도 절반 이상이 동의해 여전히 이중적 시각이 공존하는 모습도 보였다.
성도와 목회자 모두 “교회가 적극적으로 돌봐야”
성도의 84%, 목회자의 96%는 교회가 정신질환을 겪는 성도를 돌보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특히 목회자의 98%는 ‘정신건강에 대해 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고 밝혀, 목회자 교육과 전문 상담 인프라 구축에 대한 요구도 커지고 있다.
가장 교육받고 싶은 정신건강 질환으로는 ‘우울증’이 61%로 가장 높았고, ‘치매’(51%), ‘불안장애’(46%)가 뒤를 이었다. 연령별로는 20~50대는 우울증에, 60대 이상은 치매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교회, 회복의 공동체로 다시 서야”
목회데이터연구소는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정신질환은 신앙이 약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인간의 문제”라며, “교회가 신학적 편견을 넘어 회복의 공동체로서 역할을 감당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성도와 그 가족을 위한 자조모임 운영, 교회 내 정신건강 교육 체계화, 목회자 대상의 기초 교육과 상담 네트워크 구축 등을 교회 차원의 실천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범영수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