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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나무) - 왜곡된 진실

현장! 성경을 보는 창(5)

성경의 겨자씨 비유를 모르는 크리스천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 식물만큼 우리가 오해하는 것도 흔하지 않다. 겨자에 대한 오해는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잘못 번역해서 일어난 문제도 아니고 그저 성경이 기록된 현장에 대한 우리들의 무관심 때문에 벌어진 왜곡이다.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예루살렘 대학에 수학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선교사 한 분을 만났다. 하루는 그분을 따라 예루살렘 근처 베다니를 방문하는 행운을 얻었다. 베다니에 있는 나사로 무덤을 방문하고 밖으로 나오는데 아랍 아이들이 손에 무엇인가 들고 나를 상대로 열심히 호객행위를 하는 것이다. 난처해하는 나에게 선교사님은 그들이 파는 것이 겨자씨인데 한국에서 성지순례 오시는 분들이 많이 찾아서 이제는 기념상품으로 판매까지 한다고 말해줬다. 그때 내가 처음 보았던 겨자씨는 검고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았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작은 씨를 코팅해서 만든 책갈피가 한국에서 최고 인기 있는 성지순례 기념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학기가 시작된 후 그 작은 씨는 겨자씨가 아니라 나무담배 씨(학명: Nicotiana glauca, 원산지 남미, 현재 지중해 지역에 널리 분포)였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

 


2~3월이 되면 이스라엘에서 겨자 꽃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다. 갈릴리 지역을 비롯해 평지의 들녘과 같이 비가 많이 내리고 기온이 온화한 곳은 온 지역이 온통 겨자 꽃으로 뒤덮인다. 그 모습은 마치 제주도에서 볼 수 있는 활짝 피어난 유채꽃 밭과 같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겨자는 들에서 자생하거나 밭에서 재배됐다. 히브리어로 ‘하르달’, 헬라어로 ‘시나피’로 불리는 십자화과 1년 초이다. 주로 약용이나 식용유를 만드는데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겨자씨는 그 크기가 좁쌀만 하고, 종류는 크게 검정과 회색 계통으로 구분된다. 겨자나무는 노란색 꽃을 피우고, 보통 1m가 채 되지 않는 크기로 자란다. 하지만 토양이 좋고 기온이 따듯한 곳에서 겨자나무는 3m까지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겨자씨와 겨자나무를 한국 순례 객들은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는다. 주변이 온통 노란 꽃 겨자나무로 뒤덮여 있는 현장을 목격하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왜곡된 선입관 때문이다.

 


겨자씨에 대한 비유는 성경에 두 번 등장한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3:31~32절에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기 위해서 겨자씨를 비유로 사용하셨다.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그리고 누가복음 17:6절에 ‘믿음’에 대하여 가르치실 때 겨자씨를 사용하셨다.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우리가 알고 있는 겨자는 이 두 말씀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렇다면 성경이 기록된 그때 그 현장과 청중들을 고려하지 않고 기록된 말씀만을 근거로 우리가 이해하고 확신하는 겨자는 어떤 것인가.


첫째로 겨자씨는 씨 중에 가장 작은 씨라고 믿는 것이다(물리적 크기로만 접근한다). 둘째로 겨자는 나무라고 이해한다(식물학적 접근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셋째로 겨자 나무는 새들이 깃든다고 생각한다(이 표현은 겨자가 나무라는 이미지를 더욱 확고하게 만든다).


이 같은 선입견이 우리들에게 너무나 깊게 각인된 결과, 이스라엘에 가서 씨들 가운데 가장 작은 씨를 찾았고, 그래서 찾아낸 것이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땅에 자생하지도 않았던 나무담배 씨였다. 또 주변이 온통 노란 겨자 꽃으로 뒤덮여 있는 현장을 목격하면서도, 때로는 좁쌀만 한 겨자씨를 채취하고, 겨자 줄기를 입에 넣고 겨자 맛이 난다고 놀라면서도, 겨자 꽃밭 한복판에서 사진을 찍으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상상했던 겨자 나무와 현장에서 만난 겨자 사이에 너무나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갭(gap)을 줄이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처음 말씀이 선포됐던 현장의 언어, 생활, 자연환경, 즉 문화적 배경을 통해서 성경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올바른 소통이 가능하게 된다.

<계속>
김상목 목사
성경현장연구소 소장
신광교회 협동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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