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년으로 귀국한 선교사님이 퀴즈를 내면서 말했다.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러 왔던 동방박사들은 한국 사람이래요!”
“예? 동방박사들이 한국 사람이라고요?”
평소에 우스갯소리를 잘 하지 않는 분이라, 웃어넘기면서도 여러 생각이 들었다. ‘외국에서 무슨 엉뚱한 학설이 제기됐나? 아니면, 우리나라가 동방이라고 자칭 재림주 하나님이 몇 십 명이라더니 또 어떤 이단이 생겼나?’
4가지 증거가 있다는 것이다. 첫째는 동방에서 왔다는 것이고, 둘째는 무리지어 다닌다는 것이고, 셋째는 선물을 가지고 다닌다는 것이고, 넷째는 박사들이라는 점이 그렇다는 것이다.
어디서 누가 지어냈는지는 모르지만, 한참을 웃었는데, 마음 한 편으로는 씁쓸함이 가시지 않았다. 특히 한국이 엉터리 박사 천국이라는 부끄러운 이름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임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지 않은가!
교육과학기술부, 우리나라 박사학위 등록 등을 관리하는 곳에 의하면, 목사님들이 받은 목회학박사(D.Min) 중에 가장 엉터리가 많다고 한다. (‘가짜 박사’라는 명칭까지 써가면서 가짜박사를 남발한 학교 이름들까지 발표한 적도 있다). 물론 제대로 과정을 거쳐서 수여하는 곳이 더 많을 텐데, 억울하게 오해를 받는 곳도 있을 것이다.
또 목회학박사 자체가 학문적이라기보다는, 목회라는 실천적인 부분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분야의 박사 학위보다 좀 느슨한 감이 있다는 것은 인정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학기에 몇 번 특강 듣는 식으로 대충 얼렁뚱랑 넘기고 논문도 어설픈 짜깁기 식으로 시늉만 내고, 아니 어떤 곳에서는 등록금만 내고 얼굴만 몇 번 내밀면 알아서 거의 다 해결해 주고, 여차저차 논문도 대신 써 주는 등 해도 너무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박사 학위 문제로 한 바탕 몸살을 치렀다. 대형교회 목사님의 박사 학위 표절 문제가 회오리바람처럼 몰아쳤다. 얼마간의 징계로 회개의 기회를 주고 다시 강단에 서도록 해 주었지만, 아직도 한국교회 내면의 곪아있는 부위들이 언제 또 어떻게 불거질지 건들기만 하면 터질 뇌관으로 여전히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다.
‘왜 이렇게 목사님들이 박사 학위를 받으려는 걸까?’
좋은 의도를 가진 분들도 있겠고, 좋지 않은 동기로 추구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실력을 제대로 갖추어 성도들을 정말 잘 가르치고 싶어서 일까? 좋은(?) 담임 목회 자리를 얻기 위해 스펙을 쌓으려는 걸까? 아니면 나도 박사라고 박사 가운 입고 설교나 집례를 하고 싶은 명예심 때문일까?’ 좀 속되게 말하자면, 어디에 써먹으려는 것일까? 성도들이 존경하고 진짜로 알아주기라도 하는 것일까?(혹시 내게 박사 학위가 없어서 배가 아파서 이런 말하는 것은 아닐까?) 문득문득 마음이 산란해지곤 한다.)
목사는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종이 아닌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나 세속에 휘둘리지 않고, 때로는 선지자처럼 고고하게 하늘의 소리를 광야에서 외쳐야 하는 자가 아닌가! 마땅히 취할 수 있는 것까지도 기꺼이 버림으로써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사는 것이다!’고 세상의 탁류 속에서 몸소 본보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십자가의 은혜 가운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실제적인 나의 주(인)님이 되어 지금 나와 함께 살고 계심을 보여줘야 할 사람들이 아닌가!
각 교단의 총회장 선거도 다 끝났다.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지 말고, 정견 발표한 그대로 묵묵히 이행하고 내년에 마칠 때 진짜 평가를 받을 일이다. 도와 준 주위 사람들도 자리에 눈독 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 한 자리 차지했다고 우쭐하는 벌거숭이 임금님들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10여 년 전에, 여기에 성철과 청담 일화를 소개한 바 있는데, 다시 한 번 옮겨 본다.
“박정희 전 대통령 부부와 관련해서, 들은 이야기들입니다. 박정희 소장이 국가재건회의 최고의장이 된 때랍니다. ‘날던 새도 떨어뜨린다’는 그가 성철 스님을 만나려고 찾아갔답니다. (‘스님’은 스승님을 줄인 말이라고 하는데, 이 용어에 대해 말이 많지만, 편의상 양해를 구합니다). 그의 첫 부인이 비구니로 있었으니 불교에 마음이 많이 끌렸겠지요.
따라서 당시 불교를 대표하는 인물을 만나고 싶은 마음도 당연했을 것이고, 난폭한 힘으로 세상을 뒤엎었으니 마음 한 켠이 편치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때 성철 스님은 시자를 시켜 ‘당신과 나는 서로 길이 다른 사람인데, 만나서 뭐 하겠습니까?’ 하고 만나기를 거절했답니다. 몇 번이나 청했지만, 성철 스님은 끝내 만나주지 않았답니다. ‘아니, 이 분이 누구신데 감히 저 중놈이 죽을라고 환장을 했나?’ 생각하는 수행원이 있었을 법한 상황입니다.
또 하나는 영부인 육영수 여사 이야기입니다. 육 여사가 대통령 부인이 된 후에, 잘 알고 지내던 청담 스님께 인사를 하러 갔답니다. 절을 받고, 청담 스님이 묻더랍니다. “늬 잘 있었나?”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당황한 시자가 얼른 귀띔을 해 주었습니다. “스님, 저분은 이제 영부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늬라니요?” 청담 스님의 말이 이어졌습니다. “그럼, 늬 내 제자 아니나?”
그때 육 여사가 완전히 거꾸러졌다고 합니다. 세상이 바뀌어서 서슬 퍼런 권좌에 앉으니, 그 전까지 반대를 하고 코웃음을 치던 사람들도 찾아와 넙죽넙죽 절을 하며 아부를 하던데, 청담 스님만은 한결같더랍니다. ‘아, 역시 이분은 다르구나!’라며 세속에 초연한 그를 받들고 불심이 더욱 깊어졌으리라는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진정한 구원의 복음을 가진 우리의 교계 원로들은 어떨까? 자기 자식에게 담임목사의 기득권을 물려주려 하지 않고, 교회의 규모가 커질수록 교황이 아닌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을 모든 교회에서 볼 수 있다면 복음이 얼마나 더 확장될까?
‘꿩 잡는 것이 매’라는 진화론적 원리와, 외형 불리기와 슈퍼맨의 명성을 꿈꾸는 자본주의적 가치관에 찌든 혈기왕성한(?) 목회자들이, 양들을 잡아먹지 않고 그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선한 목자의 향기를 그윽이 풍기는 때는 언제일까?
김효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