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는 빈무덤 사건 후에 부활현현 사건들을 길게 또한 자세하게 제시한다.
공관복음서 저자 중 누가만이 부활현현 사건들을 자세하게 제시함을 통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특별한 존재성에 관해서는 물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담긴 결정적인 의미가 부활현현이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나타남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누가가 제시하는 부활현현 사건은 네 개의 단락으로 구성된다: 엠마오 현현(24:13~35); 제자들 앞에서의 현현(24:36~43); 마지막 명령(24:44~49);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24:50~53). 네 사건들이 모두 다른 복음서들에 나오는 부활현현 사건들과는 직접적인 연관성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엠마오 사건을 암시하는 요약적인 진술이 마가복음의 후기 전승(막 16:12~13)에 제시됐다.
누가가 제시하는 부활현현 사건들 중에서 가장 길며 자세한 사건인 엠마오 현현 사건에는 사도가 아닌 두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비록 엠마오 현현 사건에는 사도가 아닌 부차적인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누가는 그 이야기를 통해 제자들의 이해의 차원을 설명하며 또한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그들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표현한다.
누가는 무엇보다도 제자들의 이러한 변화가 부활현현이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이뤄지는 것임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누가는 이 사건에서는 부활하신 예수의 존재성에 관하여는 간략하게 다루는 반면 부활하신 예수와 두 제자 사이의 대화에 집중한다.
누가는 두 제자가 어떻게 부활의 예수를 알아보게 됐는가를 제시하는 것과 함께 두 제자와 부활하신 예수의 대화를 통해 어떻게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필수적인 요소가 되는가에 대하여 제자들이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들을 제시한다. 누가는 이 사건을 통해 누가 시대의 기독교인들을 향해 살아계신 주님으로 그들에게 전파된 부활의 예수를 어떻게 체험적으로 알 수 있는가에 관한 교훈을 전달한다.
누가가 엠마오 현현 사건을 통해 전달하려는 핵심적인 교훈은 이 사건 묘사에서 두 번 사용한 동사로서 ‘알아보다’(evpiginw,skw)로 번역된 단어(24:16, 31)에 의해 전달된다. 이 동사는 “확실히 알다,” “분명히 알다,” 혹은 “깨달아 알다”라는 확신을 갖게 하는 인식의 의미를 갖고 있는데, 어떤 사실을 체험적으로 확실하고 분명하게 알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누가는 이 동사를 사용하여 부활의 예수께서 현현하시어 제자들과 동행하고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처음에 그를 알아보지 못하던 제자들이 어떻게 그 부활의 예수를 알아보게 되었는가를 제시한다.
먼저 이 동사는 부활하신 예수의 현현 초기 장면에 나온다.
두 제자가 엠마오라 하는 마을에 가면서 예수님과 관련하여 최근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가고 있었다(24:14~15). 이 때 부활의 예수께서 친히 그들에게 현현하시어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고 계셨는데, 그들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24:16).
“그들의 눈이 가리워졌다(evkratou/nto)”라는 말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지만 지금은 부활하여 살아계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나타나신 분을 인식하지 못하는 그들의 어두운 내면 상태를 가리킨다. 제자들은 인자의 수난에 관한 예수의 말씀을 들었을 때에도, 그 말씀이 그들에게 가리워져서(parakekalumme,non) 깨닫지 못했으며(눅 9:45) 또한 그 말씀이 그들에게 감춰져서(kekrumme,non) 그 말씀하신 것들을 알지 못했다(눅 18:34).
제자들의 눈이 가리워짐은 그들이 예수의 죽음을 어떻게 이해해야할 것인가에 대하여 아직 알지 못하고 있고 또 알도록 준비되지 않은 상태를 가리킨다. 이 가리워짐이 그들이 부활의 주님께서 주시는 계시의 은혜를 통해 극복해야 할 핵심적인 부분이었다.
이렇게 두 제자가 처음에는 부활의 주님께서 곁에서 동행하고 계시는데도 그들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를 알아보지 못했는데, 그 주님과 대화를 나누고 함께 떡을 떼는 가운데 그들의 눈이 열려 그를 알아보게 됐다(눅 24:31).
그때서야 그들의 영적인 눈이 열리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의 비밀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있어서 그의 죽음과 부활이 차지하는 역할에 관하여 제자들의 내면의 눈을 가리고 있었고 또 그들에게 감추고 있던 내면의 휘장(비늘 혹은 수건)같은 것이 벗어지면서 부활하신 분의 존재가 밝히 인식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부활현현의 목적은 제자들로 하여금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던 나사렛 예수께서 하나님의 권능으로 부활하시어 살아계신 분임을 인식할 뿐 아니라, 그들의 마음에 믿는 부활신앙을 갖게 하려는 것이었다(cf. 롬 10:9). 이렇게 제자들이 부활의 예수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되고 그들의 마음에 부활신앙을 갖게 되었을 때, 부활의 주님은 더 이상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되었다.
누가가 엠마오 현현 사건을 기술한 목적은 바로 어떻게 제자들의 눈이 열려 부활의 예수를 알아보게 되었으며 또한 그들의 눈을 여시기 위해 주님께서 무슨 일을 행하셨는가를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이 사건에서 부활의 예수께서 제자들의 영적인 눈을 여시기 위해 하신 일이 세 가지로 제시된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마음에 믿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셨다(눅 24:25~26). 엠마오로 가던 두 사람 중 글로바라 하는 자가 말한 내용이 길게 제시되었다(눅 24:18~24). 그의 말에는 예수의 공생애 사역에 대한 요약적 진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 여인들이 무덤을 방문했던 일, 그리고 그 무덤이 비어있던 것을 확인한 것이 포함되었다.
나사렛 예수에 대한 그들의 인식은 한 마디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며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로서 그들은 예수를 이스라엘의 민족적 희망을 실현시켜 줄 위대한 예언자적 인물로 알고 있었던 것을 보여준다.
그들에겐 아직 부활신앙이 없었으며 또 그 부활신앙에서 나오는 부활신학이 없었던 것을 보여준다. 글로바의 말을 듣고 난 후에 부활의 예수께서 그들에게 책망의 말씀을 하셨다: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눅 24:25~26). 부활의 예수께서는 먼저 제자들이 선지자들이 그리스도에 관하여 말한 모든 것들을 마음에 믿지 않고 그 결과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것을 책망하셨다.
‘미련하다’(avno,htoi)는 말은 “알지 못하고 있다”(unintelligent)는 것이며 또 “더디 믿는다”(bradei/j)는 것은 “믿는데 느린(slow)” 곧 아직도 마음에 믿지 않고 있는 것을 가리킨다. 그들이 부활의 예수를 알아보기 위하여 그들이 먼저 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에 관한 말씀들을 마음에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예수의 말씀(눅 24:26)에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에 담긴 필연성을 나타내는 조동사(e;dei)가 사용되었다. 그리스도가 반드시 이런 고난(십자가에 못박혀 죽임을 당하는 처참하고 처절하며 불명예스럽고 고통스런 죽임당함)을 받은 후에는 반드시 부활하여 자기의 영광(부활과 승귀의 주님)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그리스도가 가야할 길이었다(눅 9:22, 44; 18:31~33). 누가는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이와 같은 필연적인 죽음과 부활과 연결시켰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예언의 성취로 이루어진 필연적인 일이었다는 것이다.
누가는 또 이러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그들의 마음에 믿어야 함을 부각시킨다. 그리스도의 필연적인 죽음과 부활을 마음에 믿어야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하여 마음의 눈이 열리는 것은 물론 하나님의 구원이 바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진정으로 확실하게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예언의 말씀을 마음에 믿어야 한다는 것은 부활의 예수를 마음에 믿는 믿음과 입으로 시인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한 사도 바울의 교훈과 연결된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롬 10:9). 우리가 입으로 예수를 ‘주님’으로 인정하고 고백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는 믿음의 결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마음에 믿는 신앙이다. 그런데 이 신앙조차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부어주시는 선물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레마)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복음이 레마(감동의 말씀)가 되어 우리 마음에 다가올 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우리 마음에 주어진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다.
김광수 교수 / 침신대 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