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새해를 맞았다. 지나온 수많은 세월 속에 역어진 과거가 된 달력을 보고 온고지신으로 아쉬운 한 해를 또 뒤돌아보면서 대망의 새해를 잘 설계하며 후회 없는 삶이 되길 희원한다. 인생은 셈하는 것과 같다. 셈을 잘하는 사람은 성공하고 잘못하는 사람은 실패한다. 얼마만큼의 인생길에 수 싸움에서 더 많이 그리고 더 잘 셈하는가에 따라서 승리하고 패배한다. 마치 바둑 뜨기와 같다.
로마의 현인 세네카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우리들의 것이 없다”고 말한 것처럼 정작 시간은 우리의 것이지만 사용하지 않는 자에겐 고귀한 시간마저 잃어버린다. 시간은 시한부로 주어진 선물이며, 잠깐의 시간이라도 우리가 창조해 낼 수 없으며, 적은 분량이라도 빌려 쓸 수도 빌려 줄 수도 없으므로 시간을 낭비하든지 선용하든지 그것은 주어진 시간을 최선으로 사용하는 자의 것이다. 성경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5:18)고 말씀했다. 영국 속담엔 “Time is money”라고 했으나 어찌 시간을 돈과 비교하겠는가!
사람이 가령 80년을 산다고 하더라도 유년시절 10년, 잠자는 시간 25년, 노년의 마지막 10년, 먹고 마시는 10년, 또 차타는 시간, 미장원과 이발소. 목욕, 면도, 화장실, 기타 멍하니 보내는 또 10년, 이렇게 빼고 나면 15년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의 생각이 무엇인지? 정말 짧은 시간을 사는 우리에게 허송세월을 보내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으로 더불어 시간을 선용하고 자신은 물론 남을 위해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
성경의 전도서에서 말한 인생의 노경의 풍유를 묵상하자.
"너는 청년의 때에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다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새의 소리로 말미암아 일어날 것이며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며 또한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정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객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니라 은 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지고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1~8)
3절에서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는 손발의 떨림,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짐은 등뼈의 구부러짐, 맷돌질하는 자의 적음은 치아의 빠짐, 창으로 내어다 보는 자는 눈 시력의 감퇴, 길거리의 문들이 닫혀짐은 항문의 노인성 변비와 노인의 양음생식기 위축, 맷돌소리가 적음은 우물거리며 먹는 것, 새의 소리로 인하여 일어남은 노인성 불면증, 음악 하는 여자들의 쇠함은 안 들리는 귀, 높은 곳을 두려워함은 두려움이 높아져서 사소한 일에도 좌절,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은 백발이 성성해짐으로 「상악두변한내하」, 메뚜기도 짐이 됨은 노인의 무기력, 원욕이 그침은 의욕 없이 보내는 나날, 자기의 영원한 집은 무덤으로 가는 길에는 조객들이 따른다는 말로 종국을 말한다.
그러므로 “너는 청년의 때에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전12:1)
무두셀라처럼 969세를 의미 없이 늘어지게 살아본들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에 어찌 비길 수 있으랴! 아브라함의 175년, 모세의 120년, 우리의 년 수가 70이요 강건하여 80을 (시90:10) 산다 해도 “우리의 평생이 일식 간에 다하고 신속히 가고 날아가나이다”라고 모세의 기도에서 언급했다.
애굽의 바로 왕이 야곱에게 나이를 물었을 때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이니이다...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47:8~9)라고 술회했다.
실로 사무엘의 “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걸음뿐이니라”(삼상20:3) 어떤 사람도 “죽는 날을 주장할 자가 없다”(전8:8)
돌이켜 보면 결혼 주례는 500쌍, 장례주례는 100회 이상했지만 문상을 합하면 500회 참석한 셈이 된다. 장례식과 추도예배는 우리의 마음에 영원의 문제를 언제나 알려준다.
슬픔 넘어 죽음 이후 저 넘어 세계에 대해 생각게 한다. 이 세상의 꿈결 같은 짧은 삶 후에 영원의 하늘나라를 사모하게 한다. 돌아갈 본향의 천국예약은 우리에겐 되었으나. 허공을 방황하다 저주의 지옥으로 떨어질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우리가 새해에 해야 할 급선무를 일깨워 준다.
천국의 영원한 영광 곧 새 예루살렘에 영광으로 입성하는 그날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충성된 청지기로서 복음에 빚진 자로서 영혼구원에 최선을 다해야겠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15:55~58)
수산나 웨슬리의 기도
빛속에서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영혼은
지옥의 모든 권세라도
두렵게 하지 못하니
그는 넘어질 수가 없네
그는 분명하게 보고 자기 길을 찾으며
한 낮의 태양처럼 빛을 발하며
모든 정복자보다도 더욱 늠름하리!
세상의 빛, 주님의 빛줄기를 찬양하네
밝은 의의 아들이신 당신에게
나의 신앙은 눈길을 모았네
나의 가는 모든 길에 당신의 인도를 받으며
발아래 사망도 두렵지 않으리
주님이 언제나 내 가까이 계심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