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온 날들을 돌아 볼때 하나님은 나에게 많은 만남의 축복들을 허락하셨는데 앞으로 지면이 허락하는데로 내 삶에 선한 영향력을 끼친 분들도 소개하고 싶다. 이 분들을 생각하며 나 또한 누군가의 삶에 힘이 되어 주고 도움이 되어지는 삶을 사는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기를 기도하면서 살아 왔다.
<루이스 존스 의사 부부>
내가 간호학교 졸업반이 되자 부산 침례병원 간호 부장이었던 테이버의사 부인이 나에게 편지를 보내 왔다. 나의 3년간 학비를 장학금으로 보내준 분들의 이야기었다. 그 분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내드리면 기뻐할 것이라며 이름과 주소를 보내왔다.
이 부부는 2남 2녀의 자녀를 두고 있었고 남편은 미국 남 캐롤라이나주 그린빌에서 병원 개업의 이며 에드워드 로드 침례교회의 안수집사로 섬기고 부인은 교회의 적극적인 여선교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 분들이 부산 침례병원에 장학금 후원자가 된 경위는 다음과 같았다.
부인(돌로레스 존스)의 전 남편은 부인이 임신 중에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하였다. 부인이 혼자 아들을 낳아 키우고 있었는데 그 당시 부인의 시아버지와 존스 의사의 아버지가 중매를 하여 부인은 아들을 데리고 존스 의사와 재혼을 하였다.
부산침례병원 간호부장이며 남침례교 선교사였던 루시 라잇간호사가 안식년이었을때 그린빌의 에드워드 로드 침례교회에서 선교 보고를 하게 되었는데 부산 침례병원을 소개하며 침례병원에는 침례교인 간호사가 필요한데 침례병원에는 간호대학이 없어서 전주에 있는 장로교 선교사들이 세운 전주 예수간호학교(현 예수 대학교)에 장학생을 보내 위탁교육을 시킨후 침례병원에 와서 봉사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전주 예수 간호학교를 신뢰하는 이유는 이 학교 학생들이 전국 간호학생 경연 대회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받고 그 학교가 신앙교육을 철저히 시키기 때문이라고 했다.
루시 라잇 선교사는 이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후원자가 필요함을 호소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존스 의사 부인은 자신의 전 남편이 전사한 나라 한국의 침례병원의 필요에 대해 들으며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 집에 돌아와서 남편인 존스의사와 상의 하였고 부부는 장학금 후원자가 되기로 결정한 후 침례병원에 정기적으로 장학금을 보내왔다. 내가 그 장학금 수혜자 중 한명이었던 것이다.
루시 라잇 선교사는 1954년 전국여성선교연합회(전여회)의 전신인 부인전도회가 대전 대흥교회에서 조직될 당시 미국 여선교연합회의 자료를 번역, 전여회 창립에 큰 역할을 하신 분으로 전여회의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이때도 이미 하나님은 나에 대한 모든 계획을 가지고 일하고 계셨다.
나는 기쁨으로 감사의 편지를 죤스의사 부부에게 보냈다. 그리고 담대하게 나의 세가지 소원을 함께 써서 보냈다. 첫째는 언젠가는 미국을 방문하여 그 분들을 만나는 것이고 둘째는 세계적인 부흥사인 빌리그래함을 한번 만나 보는 것이고(지금 생각해도 참 엉뚱한 생각이었다) 세 번째는 영어로 된 찬송가 음반을 갖기 원한다는 것이었다.
<꿈은 이루어 진다>
곧 그 분들에게서 가족 사진과 함께 답장이 왔다. 자기들이 장학금을 계속 보냈지만 수혜자로부터 감사의 편지를 받은 것은 내 편지가 처음이라며 기뻐했다. 그 이유는 침례병원에서 장학생중 존스의사를 소개한 수혜자가 내가 처음이었고 그 후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도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아닐 수 없다.
1971년 2월 12일 저녁에 병원 실습을 마친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기숙사 방으로 돌아 왔을때 내 책상위에 외국에서 온 소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티브 테일러의 음반과 그분의 친절한 편지가 들어 있었다. 내가 존스의사 부부에게 보낸 편지에 썼던 세 번째 소원이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꿈많던 젊은 날 영어 찬송 듣는 것을 좋아 했던 나에게 그 선물은 너무나 나를 가슴 벅차게 했다. 스티브 테일러는 죤스 의사 부부와 같은 교회를 섬기는 절친한 친구였는데 내가 보낸 편지를 보고 음반과 격려의 편지를 보내 준 것이었다. 나의 기쁨과 행복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열흘후 또 하나의 소포가 도착했다. 클리프 베로우에게서 온 편지와 “하나님과 화목하는 길”과 음반이 들어 있었다. 바로 “주 예수보다 더 귀한 분은 없네”를 부른 죠지 베버리 쉐아의 음반이었다. 하나님께 순종한 나를 향하신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계속 계속 이어졌다.
클리프베로우도 그린빌에 살고 있었고 죤스 의사가 그 분에게도 내 편지를 보여주어서 편지와 함께 음반을 보내 온 것이었다. 클리프 베로우는 빌리그래함 전도팀의 유명한 음악 책임자였는데 그 때 당시한국에서 빌리그래함 전도 집회를 계획하고 그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한국을 몇 번 방문했다고 했다.
그 분은 편지에 2년안에 한국에서 빌리그래함 전도 집회를 개최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가능하도록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1973년 한국에서 개최된 그 역사적인 대회 개최를 위해 하나님은 나같이 작은 자의 기도도 사용하신 것을 믿는다.
나는 두 분이 보내준 영어 찬송 음반을 들으며 다른 학생들의 부러움을 사며 고된 실습가운데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었다.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느끼며- 나의 남은 두가지 소원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숙재 전 총무
전국여성선교연합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