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능력 주시옵소서! 아버지....
오 주여, 내게 능력 부어주시옵소서
오 능력, 능력, 능력을 충만하게 내려주시옵소서!“라고 했다.
“여러분, 이새벽에 저는 ‘능력 좋아하네!’라는 제목으로 설교합니다”라고 했더니 모두들 웃었다. 그 당시 유행어가 “…좋아하네”였는데 저는 그 앞에 능력을 넣었기 때문이다.
1964년 신입생들이 새벽기도회에 나와 거의 모두의 부르짖는 기도가 능력달라는 것이었다. 저는 신태원(정파)에 입학했는데 교도부장을 시켰다. 처음엔 큰 감투인가 했더니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종을 치고 기숙사 복도를 두어번 왕래하며 신학생들의 새벽기도회 참석을 알려주는 힘든 심부름꾼이었다.
“매일 능력달라고 기도하는 소리를 듣는데 능력받아 뭐할겁니까? 성경을 보니 ‘예수님의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고전1:18)이라고 했는데 조그마한 십자가도 안지고 어떻게 능력만 달라는거요? 내라도 능력 안 주겠구먼! 능력좋아하고 있네…!”
이런 시건방진 설교를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바로 나를 두고 설교한 내용이었다. 한동안 신학생들이 절보고 ‘능력 좋아하네’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는데 진정 십자가의 능력이 필요한 자는 저였다.
2. “멸망케할 이단”
-박씨와 추종자들의 실패한 예수의 십자가-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다. 사람을 재창조할 수 없어서 자기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게했다.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실패했으나 감람나무는 사람을 재창조하는 권세가 있다”
-문씨가 주장하는 원리강론의 십자가의 예수-
“구약시대는 인간 죄의 뿌리인 뱀으로 표시된 타락한 천사와 불륜의 관계로 이뤄졌다. 신약시대는 하나님의 예정에 없었던 예수의 십자가에 죽음으로 육적 구원은 실패로 갔고 영적 구원만 이룰 뿐이다. 그러나 아직도 혈통으로 유전되는 죄악은 계속되고 영육구원을 이루는 ‘원리강론’은 ‘성약(成約)’시대의 가장 알맞은 말씀이다.
구약시대는 소생기요, 신약시대는 장성기요 성약시대가 완성기이다”고 말했다.
예수그리스도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 구속을 짓밟고 구원을 자신에게 돌리는 오만하고 타락한 저들이 “멸망케 할 이단”(벧후2:1)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3. 십자가의 참 뜻과 능력
“한 목사님, 저는 대한민국에 들어올 때마다 저의 영혼이 날개를 치며 독수리처럼 승천하는 기분입니다”
“고다마 목사님 무슨 말씀인지?”
“한국에 올때마다 김포공항으로 비행기가 착륙준비를 할 때 창문으로 아래를 내려다 보면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 같은 것이 점점 하강할수록 수 많은 빨간색의 십자가로 온통 수놓아져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교단 국제복음선교회 선교교류로 오신 많은 목사님들 가운데 고다마 목사님은 예절바른 신사이다. 언제나 우리나라를 한국(강꼬구)라 하지 않고 “대한민국”이란 국호대로 불러주셨고, 설교하시기 전에 선조들이 저지른 죄악에 대해 사죄의 말씀을 하셨다.
“한 목사님, 한국에 올때마다 빨간 십자가의 광경뿐만 아니라 저의 가슴이 탁 트이고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그런데 일본으로 돌아가 동경의 하네다 공항에 내리면서 영적으로 얼마나 눌리고 답답한지 말할 수가 없어요!”
저는 유럽의 교회당, 종각대 위에 십자가 대신 장닭이 놓인 모양을 보고 십자가 없는 유럽교회의 쇠퇴를 예측해왔고 흰 페인트칠을 한 작은 십자가의 미국교회의 내일을 읽었으며 눈을 크게 뜨고 아무리 살펴도 보기드문 일본교회당과 십자가를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십자가 모양은 많고 빛나나 십자가의 의미와 능력을 상실해 가는 듯한 한국교회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4. 십자가와 보혈의 은총
초등학교 3학년, 10살쯤 될 때까지 공부엔 취미를 못 붙였으나 만화책을 좋아해서 읽곤 했었다. 하루는 외사촌이 만화책을 갖다주었는데 제목이 ‘예수 그리스도’였다. 공자나 석가모니 또는 다른 위인들의 만화책은 보았으나 당시 저는 저의 엄마따라 절에 나가는 소위 ‘불자’였는지라 조금 주저했으나 “만화책이니깐”하고 재미있게 보았다.
그런데 이 예수님께서 그렇게 좋은 말씀도 하시고, 수많은 사람들의 여러 가지 질병도 고쳐주시며 악귀, 귀신, 더러운 귀신, 흉악한 군대귀신도 쫓아내시고 5,000명 또는 4,000명에게 음식도 먹여주시고, 심지어 죽은 사람도 여러번 살려버리고 바람과 바다의 풍랑도 꾸짖어 잠잠케 하시며, 바다 위를 걸어오셨던 권능이 있는 선하신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달려죽으셨는가?
그 당시 만화책 종이는 갈색의 조잡한 종이위에 그려진 그림이었으나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양손과 양발에 대못이 박힌채 고개를 떨어뜨리고 피 흘리고 죽은 모습이 너무도 애처롭고 불쌍하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잊혀지지 않고 남아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저의 심령 깊숙히 신비로운 보혈의 은총이 인침으로 다가왔음을 느꼈던 것이다.
그 후 가끔 지금까지 선명하게 떠오르는 십자가상의 예수님은 저의 신앙생활과 목회의 중심이 되셨고 힘들고 고통스런 일이 있을 때마다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며 극복해 승리케 되었다.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벧전1:21)
한명국 목사 / 증경총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