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내 차를 몰고 나가 사고를 냈다. 좁은 골목길 사거리에서 일어난 경미한 접촉사고 인데 9:1의 가해자란다. 상대방이 병원에 입원하면 골치 아프니 우리 쪽에서 다 수리해주는 조건으로 일단락 지었다.
신호등도 없는 좁은 골목길에서 일어난 접촉사고에 9:1의 판결이 좀 억울한 면이 있지만 이렇게 처리하는 게 현명하다니 어쩔 수 없다. 내 차에 여러 군데 흠집이 생긴 것은 아내가 내 곁에 있다는 증거로 생각하며 산다.
월드컵 축구는 운동이라기보다는 예술에 가깝다.
어떻게 그 작은 틈바구니 사이로 통렬한 골을 성공시키는지 슬로우 비디오로 다시 보면 더 기가 막힌다. 그렇게 피 땀흘리며 기량을 갈고 닦았는데 심판의 잘못된 오심으로 패배를 당하고 짐을 싸게 하는 것은 한 개인이 아니라 열광하는 그 나라 온 국민의 가슴에 대못질이나 진배없다. 그래서 금번 월드컵에서는 골 판독기를 도입했다.
순식간에 골대를 맞고 골라인 안쪽으로 떨어졌다가 튕겨져 나온 공을 14대의 고속 카메라가 공의 위치를 파악해 1초 안에 골 여부를 판명해 심판이 착용하고 있는 손목시계에 “Goal”을 선언한다. 코스타리카와 프랑스의 골이 그렇게 선언되었다.
지난 주 신문은 10개월이나 복역을 마치고 출소한 국회의원이 대법원에서 물증이 없다며 원심을 파기했다. 그는 출소하면서 “나는 정권 교체에 누구보다 앞장섰으나 이 정부 내내 불행했다”고 했다. 그는 다시 국회의원신분이 회복됐지만 지난 10개월 동안 얼마나 억울했을까?
이건 약과다 지난 5월12일 미국 뉴올리언스에서는 34년간 살인혐의로 감옥살이하던 중 진범이 잡혀 풀려난 사람도 있다. 이런 기사를 읽으면 내 피가 거꾸로 솟는다. 얼마나 억울할까? 온갖 협박과 거짓증거로 자신을 살인범으로 몰아넣은 그 검사가 얼마나 미웠을까? 젊은 나이에 장인으로부터 신혼의 행복을 빼앗긴채 10여년을 망명자로 살아야 했던 다윗은 인생의 말년에 이렇게 고백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23:5) 주님은 십자가에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내 입에선 언제쯤 이런 기도가 나올까?
김용혁 목사 / 대전노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