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필자 자신의 이야기이다. 신랑인 내가 22세 그리고 신부인 아내가 19세에 청춘남녀는 짝을 이루었고 금년 내 나이 78세인 즉 56년을 같이 살아왔다는 말이 정확한 것 아닌가? 은혼식이니 금혼식이니 하는 것은 말만 들었지 나와 아내 사이에는 결혼 몇 주년이니 하는 가족적 행사는 아예 없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언제나 결혼식이니까. 듣는 바에 의하면 부부 사이가 별로 좋지 않는 부부간에 생일이니 결혼기념일이니 해서 외식도 하고 선물도 주는 모양인데 우리는 긴 세월 같이 살아도 그런 것이 없이 잘도 살아오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사느라고 바빠서 못 챙겼다는 것도 이유는 될지 모르나 그것 보다는 언제나 청춘만세 결혼축제 신혼 생활(?)같이 살아가는데 굳이 뭘(?)하는 삶의 현장 때문이다. 그게 가능하냐 라고 혹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긴 한 되 나는 되묻는다. “당신에겐 그게 불가하더냐?”라고. 대답은 피하고 있었다.
지금 내가 한 우리 부부의 삶이 참인가는 것을 굳이 남에게 증거 해 보일 것은 없고, 단지 나와 아내가 어느 날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우리 두 사람만 알 수 있도록 증명된 사건이랄까 뭐 그런 것이 있었다.
아내는 자기 일로 시내로 먼저 나갔고 나는 나대로 집에 있다가 마침 시내에 있는 딸네 집으로 점심초대를 받고 있었다.
내가 탄 버스가 앞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저 멀리 까물까물하게 보이는 버스 정류소가 있었다. 이미 이곳 정류소에서 차가 발진할 때 “어머, 저기 아내 같은 여자가 서 있네” 하고 내 눈을 의심했다. 물론 우리는 딸네 집에서 만나기로 했었지 중도에서 만난다는 약속은 없었다. 차가 점점 앞에 있고 정류장으로 가까이 갈수록 그 여인은 나의 아내로 보여 졌고 마침내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나의 아내였다.
이 넓은 서울 땅에서 약속도 없이 아내를 만난다는 것은 수학 확률 상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그런대로 그 확률이 맞았다. 분명 그것은 아내였다. 차가 멈췄다. 아내는 허둥지중 사람들 사이에 끼여서 승차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 마침 앞좌석 맨 앞에 앉아 있었다. 아내는 나를 보지도 못한 채 승차에만 신경 쓰면서 승강기에 오르는데 나는 아내의 손을 덥석 잡았다.
아내는 승차카드 찍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나는 손을 꽉 잡고 여기 하면서 자리를 안내 했다. 아내는 그제서야 영감 남편인 줄 알고 좌정했었다. “여보, 누가 손을 꽉 잡으니 놀라지 않았소?” 라고 물으니, 아내의 대답인즉 “잡는 순간에 당신의 따스함을 느꼈어요” 였으니 56년 살아온 부부이야기는 이런것이련가 싶다. 交(교)는 그냥 交일뿐이다. 그리스도와 친교하자고해서 행해지는 행사가 교회 안에 너무 많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