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그리라하면 원숭이 그림이 되고 소를 그리라하면 말 그림을 그리는 온통 그림에 소질이 전무한 내가 저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작품에 비평적 유감의 일침을 가한다는 것은 여간한 용기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고 스스로 느낀다.
그러나 진리를 가진 자 이기에 그 진리를 손상시키는 장면을 보면 그냥 간과할 수 없는 이것이 곧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다 알고 있는 대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죽음을 당한 예수 그리스도를 무릎에 안고 있는 젊디 젊은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조각한 걸작 아닌가.
김형태씨가 “예술과 금융”(조선일보 2014. 6. 14일자 신문)에서 중력(重力)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조각을 물리적 중력 면에서 재미나게 다루고 있었다. 피에타 조각이 완전히 중력원리에 순응하고 있다고 했다. 즉 이 작품의 힘의 중심이 중력원리에 의해 모두 아래쪽으로 가울어져 있다고 했다.
성모 마리아의 무릎에 안긴 그리스도의 몸은 굴곡지게 밑으로 축 처져 있었다. 그리스도의 팔과 다리도 중력원리에 의해 힘없이 밑으로 쳐저 있었다는 지적. 순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중력의 법칙에 의해 밑으로 처져버린 시신이었고 그 시신을 무릎에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는 인자한 그리스도의 모친이라는 것인데.
이 조각에서는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모습을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데에 이 조각이 잘못하고 있다는 유감 천만한 일침을 꼽는다. 그 조각 그림을 보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가 아닌 성모 마리아의 연약한 아들로서 그의 어머니 무릎에서 생을 마치는 허약하기 짝이 없는 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이 한 여인의 무릎 위에서 마침을 맞는가? 그리고 그의 몸이 중력의 원리에 의해 밑으로 아래로 처져 있는 것인가? 미켈란젤로가 이 작품을 낼 때 과연 중력의 법칙을 의식하고 냈을까. 아니면 후대의 사람들이 내리는 단순한 해석일까. 그거야 아무래도 상관없다. 문제는 이 작품이 그리스도의 구속적 사건을 너무 퇴색시킨다는 데에 있다.
이런 생각의 연장으로 떠오르는 일침들이 마구 쏟아진다. 목사의 시(詩)가 시편을 퇴색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니 어떤 교회 주보에 보니 담임목사의 시를 거의 매주 싣고 있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목사의 설교도 성경보다 더 멋지게 들린다면 이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설교시간에 아예 성경본문은 덮어 놓고 목사의 설교소리에만 집중한다면 이게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람의 손 떼가 진리를 덮으면 그 손을 재빨리 거두어야 할 것이 아닌가?
水流(수류) 권혁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