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수 장로의 옥중 “고난에 대한 유익”(시119:71) 의 간증을 전교인이 감격스럽게 들은 다음 주간 1989년 10월 16일 이른 새벽에 평생 처음으로 험악한 꿈을 꾸다 땀을 흘린 일이 있어 아침에 모인 사역자들에게 오늘은 좋지 않으니 연기하자고 했으나 송 목사를 위시해 모두 다 예약 준비되어 있는데 미루지 말고 가자고 독촉해서 억지춘향으로 끌려가다 싶이 했다.
우리 사역자들은 90년 목회계획을 세우고 기도하기 위해 강원도 인제 사이를 지나고 있었다. 들려온 황급한 전화는 유치원에 불이 나서 13명의 어린이가 중화상을 입어 서울시내 여러 병원에 흩어져 치료중이라 해서 우리는 차를 돌려 황급히 교회로 돌아왔다.
돌아온 우리는 이미 본당에 모인 30여명의 교인들과 저녁 특별기도회를 가졌다.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말씀으로 교회의 모든 모임마다 먼저 환란극복 위해 기도하기를 간곡히 부탁했다.
화재의 원인은 5가지로 추정할 수 있으나 검사는 학생의 방화로 결론을 내렸다. 1층 난로에서 일어난 불길이 2층으로 오를 때 겁이 난 담담 현OO 교사는 당황하여 출입문도 잠그지 않고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면 다시 데리러 온다”하고는 혼자 창문에서 뛰어내려 달아났다.
다른 반 아이들은 선생들이 잘 안돈시키고 사다리로 내려 구출했다. 책임감 없고 위기 훈련이 안된 현교사 한 사람 때문에 일어난 그 엄청난 비극은 마치 승객들을 배에 두고 도망친 세월호 선장의 경우와 비슷했었다. 현교사보다 더 잘못한 것은 이 담임목사라고 생각했다.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롬8:26)하시고 꿈도 악몽으로 지시하셨는데 불순종한 죄라고 생각이 들어 그 후 후회하며 다짐하고 성령님의 세미한 소리에 더욱 민감하게 목회에 임하기로 결단했었다.
화재 현장 이층에서 천국 간 최성희 어린이를 위시하여 김지수, 하이얀, 진세실, 라누리, 양상윤 여섯 어린이가 하루에 한명씩 꼴로 한 주간 정신없이 6명을 장사지냈다. 장례식마다 참석했으나 어떤 때는 쫓겨나기도 했고 말할 수 없는 심한 비난도 받았다.
라누리 어린이 장례식때는 스님이 장례식을 인도하고 화장막에는 도저히 갈 수가 없어 스님께 부탁하여 저가 장례식을 인도하고 대신 스님은 화장막으로 바꾸어 치루었다. 눈물로 장례식을 마친 것은 바로 아무런 잘못이나 죄없고 티없는 어린이, 착하고 귀엽고 아름다운 꽃같은 어린이가 연기불 속에서 타서 그 고통 속에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그만 주의 나라로 가고 시신은 냉장속에 얼음덩이가 되었다가 또 다시 그 무서운 화장막 불꽃 속에서 연기로 사라진다는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하고 어지러워 그 고통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내가 책임을 지고 감옥에 가고 없어 그날 저녁을 준비하는데 화상 아이들 생각이 떠올라 가스불을 켜고 두 손을 불속에 집어넣었는데 “오! 간사한 나여!” 2초도 못견디고 두손을 재빨리 꺼내어 물속에 집어넣었으니! ‘오, 주여, 그 아이들이 불속에서 얼마나 뜨거웠을까?’ 그날 저녁 이런 저런 생각 끝에 잠들 수가 없었다. 살아난 김민숙, 박성희, 박호용, 윤희, 라하나, 김지영, 전효민 이상 7명은 사도(4°)의 중화상을 입고 치료하게 되었고 성도들은 다섯 병원에 흩어진 어린이들 간호를 위해 편성표대로 자원봉사했다.
두 명의 검사가 배치되었고 한 주간 메스콤은 유치원 화재 사건관련 기사로 사회면을 메웠다. 6명의 어린이 장례식을 분노와 위협속에 마치고 광림수도원에 금식 기도하고 있는데 양회협, 최창용 목사가 찾아와 “금식기도 하고 있을 때냐?” 해서 저들의 손에 이끌려 내려왔으나 도저히 견딜 수 없어 할렐루야 기도원에서 한 주간의 금식중 조집사의 소천으로 교회로 돌아왔다.
교회의 중진들도 함께 중구경찰서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집사들은 아무런 책임이나 죄가 없고 모든 책임과 죄는 담임목사에게 있으니 어떤 처벌이든 투옥이든 감수하겠습니다”고 간청했더니 남OO형사는 “목사가 감옥에 들어가면 뒷수습을 누가 하겠어요?”하며 그는 검사의 지시로 목사대신 사모가 투옥되게 했었다.
화재수습위원회를 구성하고 화상부모들과 대화했으나 오히려 분노한 화상부모 가족들은 10월 28일 교회 입구 철문을 땜질하여 봉쇄하므로 교인들은 4주간 이웃 충무초등학교 교정에서 예배를 드렸다. 우선 교인들은 매일 특별기도회에 이어 특별헌금을 바치고 목사의 사택을 매도하고, 박팽수, 김신호 집사등은 집을 담보로 은행융자를 내었고 담임목사는 동전까지 헌금한 후 나아가 10, 11월 사례비도 봉헌했다.
11명의 집사들은 서명을 하여 담임목사가 모든 비용을 배상하든지 만일 아니면 책임을 지고 떠나가지 않으면 저축된 건축헌금 7300만원을 가용할 수 없다고 했다. 와중에 몇몇 중진 집사 모임에서도 사모님이 책임을 지고 투옥되어 안타까운데 목사님께 사퇴를 말씀드리기 죄송하나 도의상으로나 무마하고 달래는 뜻으로라도 담임목사의 사퇴를 요구해서 주일날 사퇴를 언급하려고 결심하고 사무처리회장 김경열 안수집사를 불러 말하니 그는 “목사님, 우릴 두고 어딜 가시렵니까?” 하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집사님, 미국 워싱턴 콜롬비아 한인교회와 침례신학교 학장인 김호식 목사가 두 자리를 나에게 맡기고 그리스도 신학교를 맡아 귀국하겠다고 연락이 이미 지난 5월에 연락이 왔는데 어떻게 할까 해요. 집사들의 말대로 정말 뒤돌아보지 않고 훨훨 멀리 떠나버리고 싶군요!”
그때 마침 부친께서 상경하셔서 사무실에 들어오시므로 뜻을 밝혔더니 “목사가 이 엄청난 재난 앞에 십자가 안지고 어딜 도망칠라카노? 주님 바라보고 끝까지 수습해야지. 누가 와서 수습할끼고? 목사가 강단에서 체면상 토해낸 말이라도 주서 담을 수 있나? 허참!” 하시며 크게 꾸짖으셨다.
서울교회 안제찬, 김원배 두 안수집사가 부산에 내려오셔서 전달한 부임초청장을 받고 감람산 기도원 돌바위에 끓어 앉아 몇 시간 기도중 마음이 편안해지며 응답을 받았다(시34:4)고 생각했는데, 그 다음주 6명의 집사들이 내려와 서울교회 오지 말 것을 강력히 소리치고 떠나간 다음날 (86, 11, 13 오후 5시경) 동래금식기도원에 올라 기도하다 일어나는데 달력 밑에 기록된 성구가 빛을 발하며 큰 입체글씨로 늘어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시편 34편 6절을 읽었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란에서 구원하셨도다” 이미 10일 후에 부임약속을 했었고 환란에서 부르짖어 구원해 주실 것을 응답으로 서울교회에 부임했는데 이제 그 말씀대로 그대로 되는구나! 후회한들 돌이킬 수 없는 참혹한 현실 앞에 광림수도원 금식기도에서 응답해 주신 말씀(사41:10)을 믿고 최선을 다해 수습하기로 결단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또한 3년 전 부임예배 설교 시에 “함대 사령관은 함대와 함께 전사하듯 서울교회와 생사를 함께 하겠습니다!”고 말한 것이 번갯불처럼 떠올라서 마음을 돌려 결사 각오로 수습에 매진키로 했다. 그동안의 모금으로 사망자 6명의 병원치료비와 보상금을 지불하였으나 생존입원자 7명의 치료비 조달과 미국 병원치료를 위해 담임목사는 충현기도원 및 강남금식기도원등에서 수 차례의 금식기도로 진퇴양난과 내우외환 속에서 가슴을 치고 울부짖으며 한 그릇의 눈물을 흘렸으리라!(계속)
한명국 목사
BWA전 부총재
예사랑교회 담임